▶(왼쪽부터) 17세기 후반 독일의 포크와 나이프. 포크가 생긴 뒤 나이프의 끝은 부드럽게 변했다./ 1851년, 아이작 싱어가 발명한 초창기 재봉틀은 산업용 기계처럼 생겼다./ 싱어의 가정용 재봉틀은 부드러운 형태에 장식이 추가되었다./ 산업용이 아니라 가정용으로 디자인한 올리베티의 발렌틴 타자기
지인들과 식당에 가서 불고기를 먹고 있었다. 종업원이 가위를 가지고 불고기를 잘랐다. 그때 함께 온 지인이 가위의 날카로움에 대해 지적했다. 음식을 자르는 도구가 너무 날카롭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날카로운 도구가 많다. 언제든지 그 날카로움을 인지할 수 있다. 날카로움은 늘 사람을 심리적으로 위협한다.
주방의 칼조차도 나는 가끔 섬뜩할 때가 있다. 설거지를 한 뒤 끝을 위로 향한 채 건조대에서 마르고 있는 칼을 볼 때 그렇다. 고양이가 하루에도 몇 번을 싱크대에 올라가서 방황하는데 저기 찔리기라도 하면 어쩌지? 그런 걱정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의 편리를 알기 때문에 날카로움에 점점 무뎌지는 것이지 그 위협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의 음식 문화에서 날카로운 칼은 반드시 주방이라는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다스렸다. 오늘날의 주방은 개방되어 있으며, 거실보다 중요한 집 안의 중심 공간이 되었다. 과거 한국의 주거 문화에서 주방은 다른 방들과 단절된 폐쇄적인 공간이다. 재래식 주거 문화에서 그곳은 ‘부엌’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칼은, 정확히 부엌칼은 반드시 부엌에만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그곳에서 밥상이 차려지고 방으로 이동한다. 뭔가 잘라야 하는 음식이 있다면 부엌에서 완전히 자르고 해체한 뒤 밥상에 올라갈 수 있다.
▶고기자르는 가위의 디자인에 대해 비판한 월간 <디자인> 1985년 기사
동양의 젓가락 문화와 서양의 포크·칼 문화
흔히 젓가락 문화와 포크·칼(나이프) 문화를 비교할 때, 동양의 젓가락 문화에서는 고기 같은 음식이 잘게 잘린 상태로 나오는 것은 식사할 때 칼을 사용하지 않고 젓가락을 쓰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롤랑 바르트는 일본을 다녀온 뒤 <기호의 제국>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렇게 말한다. “음식물은 젓가락으로 집을 수 있도록 잘려질 뿐만 아니라, 젓가락도 음식물이 작게 잘려 있기 때문에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동양에서는 칼, 즉 사람을 위협하는 날카로운 도구가 긴장을 풀고 행복과 평화를 느껴야 할 식탁에 오르는 것을 막고자 젓가락을 발명한 건 아닐까? 물론 이것은 역사적 근거가 없는 그냥 나의 추측일 뿐이다.
반드시 칼을 사용해야 하는 서양의 음식 문화에서 칼의 존재가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낸 걸 보면, 나의 추측이 전혀 엉뚱하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과거 유럽에서는 개인이 각자 자신의 음식용 칼을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악수는 자신의 손에 칼이 들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일이다. 포크만 사용할 때는 다른 손에 칼이 있지 않다는 걸 증명하고자 다른 손, 대부분 왼손을 식탁 위에 올려놓는 것이 예절이었다고 한다. 칼을 식탁에 올려놓을 때도 칼끝이 자신을 향하도록 하는 것이 예절이었다.
포크는 17세기 무렵 전 유럽에 보편화되었다. 포크가 없던 시절에는 끝이 날카로운 칼 두 개를 양손에 쥐고 식사를 했다. 포크가 생기자 칼 디자인에 변화가 일어났다. 칼이 고기를 고정하는 구실로부터 해방되자 칼의 끝이 부드러운 곡선 형태로 변한 것이다. 이것으로도 안심이 되지 않아 식사용 나이프에 한해 날을 무디게 했다. 이 모든 예절과 디자인의 탄생은 언제든 무기로 돌변할 수 있는 식사용 나이프를 경계한 것이다.
이렇듯 식탁 위 날카로운 도구의 존재는 함께 밥 먹는 이들을 심리적으로 불안하게 했다. 따라서 식당에서 고기나 냉면을 자를 때 사용하는 가위를 보고 불안이나 위협을 느끼는 사람을 전혀 수긍하지 못할 일이 아니다. 필자가 예전에 근무했던 월간 <디자인>에서는 1985년에 ‘냉면 자르고 불고기 자르는 가위가 원 이래서야…’라는 기사를 실으며 식당의 가위 디자인을 비판했다. 기사에서 보면 가위가 재봉사들이 쓰는 가위인 것이다. 1980년대에는 음식 자르는 가위가 따로 분류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요즘에는 식당에서 이런 공장용 가위를 더는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딱히 재단용 가위와 크게 달라 보이지도 않는다. 왜 그럴까?
▶핀란드 브랜드 피스카스의 주방용 고기 절단 가위들
숟가락은 삽, 포크는 삼지창의 축소형
공학자들에 따르면 도구는 바깥일의 요구로 탄생한 뒤 집 안으로 들어와 진화한다. 숟가락은 삽의 축소형이다. 포크 역시 뜨거운 국물 요리에서 끓는 고기를 젓거나 꺼낼 때 쓰는 조리용 포크가 먼저 태어났다. 이 조리용 포크는 두 개의 갈고리를 가진 크고 자루가 긴 도구였다. 또 농기구인 삼지창이 있었다. 이것이 축소된 것이 포크다.
삽이나 조리용 포크가 숟가락과 식사용 나이프가 되면 반드시 그 디자인은 좀 더 순한 모양으로 변한다. 부드러운 형태가 되고, 기능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장식이 붙는다. 재봉틀과 타자기 같은 현대적인 기계들 역시 처음에는 산업의 필요로 태어나 디자인이 대단히 기계적이고 투박하고 거칠었다. 산업용 기계에 대해서는 예쁘게 다듬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산업의 수요가 포화상태에 이르면 이런 기계들이 가정용으로 보급된다. 이때 비로소 부드러운 형태, 밝은 색상을 입는다. 에토레 소트사스가 디자인한 ‘발렌틴 타자기’는 이렇게 예쁘게 된 대표적인 타자기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이렇듯 똑같은 기능을 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장소와 사람에 따라 도구의 껍데기를 바꾸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산업현장의 노동자들이 쓰는 도구와 가정의 식구들이 쓰는 도구를 구분해주는 것이다. 더 나아가면 똑같은 기능의 물건을 어린이용, 남성용, 여성용, 귀족용 등으로 바꿔준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 도구의 기능은 바뀌지 않는다.
여기서 위에서 언급한 의문으로 돌아가보자. 왜 식당의 고기 자르는 가위는 여전히 큰 차이가 없을까?
차이가 나는 디자인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핀란드의 유명한 피스카스 가위는 가정의 주방용 가위를 생산하는데, 오렌지색의 손잡이와 부드러운 형태, 짧은 날로 최대한 그 날카로움을 다스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디자인을 업소에서 쓰기에는 역시 너무 비싸다는 결론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가정용인 것이다.
김신_ 홍익대 예술학과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하고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 대림미술관 부관장으로 일했다. 현재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