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사체 고체연료 사용제한 해제
우리나라의 우주발사체에 대한 고체연료 사용 제한이 7월 28일부터 완전히 해제됐다. 이에 따라 고체연료를 활용해 우주발사체를 연구·개발, 생산, 보유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이날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열고 “2020년 7월 28일 오늘부터 우주발사체에 대한 고체연료 사용 제한을 완전히 해제하는 (한미 간) 2020년 개정 미사일 지침을 새로 채택한다”고 밝혔다. 한미 미사일 지침은 ▲군사용 탄도미사일 ▲군사용 순항미사일 ▲우주발사체 등 3개 분야로 나뉘는데, 이번에 개정된 것은 고체연료 사용을 제한해온 우주발사체 분야다.
김 차장은 “1979년 정부가 ‘한미 미사일 지침’을 채택한 이래 대한민국은 우주발사체에 고체연료를 충분히 사용할 수 없는 제약 아래 있었다”며 “하지만 28일부터 대한민국에 있는 모든 기업과 연구소, 대한민국 국적의 모든 개인은 기존의 액체연료뿐만 아니라 고체연료와 하이브리드형 등 다양한 형태의 우주발사체를 아무런 제한 없이 자유롭게 연구·개발하고 생산·보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로켓 개발은 상업용이든 군사용이든 한미 미사일 지침의 통제를 받았다. 한미 미사일 지침은 미국이 박정희정부에 미사일 개발 포기를 압박하던 1970년대 말 노재현 당시 국방부 장관이 존 위컴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사거리 180km, 탄두중량 500kg 넘는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면서 만들어졌다. 이후 세 차례 개정을 통해 한국의 로켓 개발에 대한 제한 사항이 점차 완화됐으나, 우주발사체의 고체연료 로켓 사용 등에 대해선 여전히 제한이 남아 있었다.
우주발사체 개발에 탄력 붙을 듯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으로 우주발사체 로켓의 고체연료 사용 제한이 풀리면서 다양한 형태의 로켓 개발과 생산이 가능해졌다. 인공위성 발사 등 우주개발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할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기존 미사일 지침은 우주발사체의 고체연료 로켓의 총 충격량, 즉 로켓엔진의 총 에너지양을 ‘100만 파운드·초’로 제한했다. 발사체를 우주로 보내려면 5000만~6000만 파운드·초에 이르는 총 충격량이 필요한데, 이를 50분의 1~60분의 1 수준만 사용할 수 있도록 묶어둔 것이다. 이런 제약 아래서 의미 있는 고체연료 발사체를 개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추력 7톤 규모의 소형 로켓밖에 만들 수 없었다. 2013년 1월 발사된 ‘나로호’의 2단 고체연료 로켓 수준이다.
이런 제약이 조속히 해소돼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10월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직접 협상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지시했고, 이후 9개월 동안 미국 측과 집중적인 협의 끝에 고체연료 사용 제한을 완전히 해제하는 성과를 이뤘다.
이번 미사일 지침 개정으로 고체연료 사용 제한이 해제되면서 우주발사체 개발에 탄력이 붙을 것이란 기대가 높다. 액체연료 로켓과 고체연료 로켓을 각각 사용할 수도 있지만, 기존에 개발한 액체연료 로켓에 연료탱크 양옆에 있는 ‘고체로켓 부스터(SRB)’를 추가할 경우 더 손쉽게 로켓의 힘을 키울 수 있다.
또한 고체연료 로켓 기술은 군사용 탄도미사일에도 활용될 수 있어 이번 지침 개정은 군의 미사일 개발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차장은 “연구·개발을 가속화한다면 가까운 시일 안에 우리가 자체 개발한 고체연료 우주발사체를 활용한 저궤도(500~2000km) 군사정찰위성을 언제 어디서든 필요에 따라 우리 손으로 쏘아 올리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라며 “한반도 상공을 24시간 감시하는 일명 ‘언블링킹 아이(unblinking eye·깜빡이지 않는 눈)’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깜빡이지 않는 눈’ 한반도 상공에
그는 “우리는 세계에서 인정하는 강력한 군대가 있고 50조 원에 가까운 국방 예산을 투입하는데도 눈과 귀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며, 주변국에 비해 정보·감시·정찰 능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었다”며 “하지만 계획대로 2020년대 중후반까지 자체 개발한 고체연료 발사체를 이용해 저궤도 군사정찰위성을 다수 발사하면 우리의 정보·감시·정찰 능력은 비약적으로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미사일 지침 개정은 우리 민간기업들과 개인, 특히 우주산업에 뛰어들기를 열망하는 젊은 인재들을 우주로 이끄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차장은 “이번 개정으로 우주 인프라 건설의 제도적 토대가 마련됨으로써 한국판 뉴딜 정책이 우주로까지 확장되는 길이 열렸다”며 “외국 발사체가 아니라 우리 과학자들이 개발한 한국산 우주발사체로 우리가 제작한 위성을 쏘아 올리고, 세계 각국의 위성과 우주탐사선을 한국산 우주발사체로 우주로 쏘아 올리는 서비스를 제공할 날도 곧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주발사체 산업은 한 국가의 경제 전반에 미칠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20세기 자동차 산업, 조선 산업이 한 국가 경제와 운명을 바꿔놓았듯 우주발사체 산업은 21세기 우리 미래를 바꿔놓을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차장은 “우주발사체 산업은 우주 접근과 개발의 근간이 되는 만큼 위성 등 탑재체 개발과 생산, 그리고 우주 데이터 활용, 우주과학 등 다양한 관련 분야의 시장을 창출할 것”이라며 “우리나라 우주산업 생태계가 구축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체연료 사용 제한이 풀리는 것에 중국이나 북한,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의 반응에 관해서는 “우리나라가 군사력이 굉장히 강한 나라인데 당연히 이 정도 판도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는 국내 문제로 우리가 결정하면 될 일”이라며 “문 대통령도 언급했지만 차세대 잠수함과 경량 항공모함 등도 (갖추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낙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