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적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려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비대면 확산으로 디지털 경제로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대전환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경제 원리를 세울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7월 14일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극복과 경제·사회 전반의 구조적 대전환을 위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마련한 한국판 뉴딜 추진 전략은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강조한다.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강력 추진하고, 이를 사람에 대한 투자와 사회안전망 강화로 뒷받침한다’는 것이 핵심 전략이다.
앞으로 5년 동안 160조 원을 투자해 추진되는 한국판 뉴딜에서 미래형 산업을 선도할 프로젝트인 디지털 뉴딜과 함께 정부가 또 다른 한 축으로 내세운 것이 그린 뉴딜이다. 그린 뉴딜은 기후변화에 대응해 친환경 에너지 생산·소비·활용의 혁신을 이끌 프로젝트다. 석유 등 화석연료 의존형 경제구조에서 저탄소·친환경 녹색경제로 전환을 가속화해 선도 100대 유망기업을 육성하고 그린 스타트업 타운 조성 등으로 혁신 생태계 구축을 추진한다. 주력 제조업의 녹색 전환을 위해 그린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스마트 생태공장 등도 만든다. 정부는 태양광·풍력·수소 등 신재생에너지 확산 기반을 구축하는 동시에 친환경 차량·선박 확대 등 온실가스를 줄이는 사업들을 그린 뉴딜에 담았다.
‘그린 뉴딜이 그리는 미래’를 주제로 이창훈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기고문을 보내왔다. 또 안세창 환경부 기후변화정책관을 만나 그린 뉴딜을 중심으로 한국판 뉴딜의 성공을 위해선 무엇이 필요하며 향후 추진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박순빈 기자
▶안세창 기후변화정책관이 7월 23일 정부세종청사 환경부에서 그린 뉴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세창 환경부 기후변화정책관 인터뷰
2018년 10월 인천 송도에서 열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48차 총회에서는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가 최종 승인됐다.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1.5℃ 이하로 제한하려면 2050년까지 전 세계 탄소 순배출이 0이 돼야 한다(탄소중립)는 내용이다. 온난화가 2℃에 이르면 기상이변이 오고 육상·해상 생태계가 돌이킬 수 없이 훼손돼 곧 인류의 생존과도 직결된다.
한국판 뉴딜의 한 축인 그린 뉴딜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와 기후·환경 위기를 동시에 극복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은 기후·환경 변화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린 뉴딜은 2025년까지 총 73조 4000억 원(국고 42조 7000억 원)을 투입해 65만 9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1229만 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7월 23일 정부세종청사 환경부에서 안세창 기후변화정책관을 만나 그린 뉴딜의 의미와 목표, 향후 과제 등에 대해 들었다. 환경부는 각 부처가 제출한 사업들이 탄소중립을 지향하는지 여부 등을 검토한다. 한마디로 그린 뉴딜의 방향성과 범위를 조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유럽연합 등과 달리 세부계획 포함해 추진
안세창 정책관은 “그린 뉴딜은 탄소중립으로 가기 위한 중간 지점이다. 다시 말해 ‘녹색 전환을 위한 지렛대’라고 할 수 있다”며 “2025년까지 목표를 세웠지만 5년으로 끝나지 않고 5년 단위로 계획을 진행해 탄소중립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2025년까지 1229만 톤의 온실가스 감축을 기대하지만 2023~2024년께 사업 시행 효과를 분석해 2030년 이후 목표를 좀 더 높일 수도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안세창 정책관은 “환경부는 규제와 함께 관련 산업 증진도 염두에 두고 있다”며 “지속가능한 발전, 사회경제구조 전반에서 온실가스 감축과 환경 개선을 염두에 두고 활동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탄소중립 사회를 실현하려고 하면 그 사회에 맞는 새로운 산업을 통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방자치단체와 협력에 대해서는 “자치단체의 자율성은 인정해야 한다. 다만 사업을 수립하는 단계에서 중앙정부 차원에서 상담해줄 수 있고 그린 뉴딜의 범주 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협업할 수도 있다”며 “지역 소통협의체를 구성해 지역민들의 의견을 듣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안세창 정책관과 일문일답이다.
-그린 뉴딜의 의미는 무엇인가?
=단기적으로 대규모 재정투자를 해서 경제회복과 일자리 창출을 도모하고, 중장기적으로 사회경제구조를 저탄소 사회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탄소중립 사회로 가기 위한 첫발이라고 할 수 있다.
-해외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나?
=유럽연합(EU)은 코로나19 이전에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와 분야별 법률·전략 수립 일정을 제시한 ‘그린딜’을 발표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자 경제회복 계획이 포함됐다. 다만 유럽연합은 얼마의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정도이지, 연도별 구체적으로 어느 분야에 투입할지에 대한 계획은 없다. 반면 우리는 세부 이행계획이 포함돼 추진하는 ‘실행적 그린 뉴딜’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은 180조 원 규모의 재건 계획 중 56조 원을 녹색 분야에 배정했고, 프랑스는 137조 원 중 27조 원을 그린 리모델링 등 기후 분야에 배정했다. 미국은 2019년 그린 뉴딜 결의안이 상원에서 부결됐지만,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 7월 14일 2년간 2400조 원의 청정에너지 인프라 투자를 공약했다.
▶1 7월 17일 전북 부안군 해상풍력 실증단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그린 뉴딜 및 해상풍력비전 선포식’이 열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린 뉴딜 효과 분석해 온실가스 목표 조정”
-기존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과는 어떻게 다른가?
=기후 위기에 대한 대처는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녹색산업 증진 등 세 개의 축으로 이뤄지는데, 사실상 제도나 정책 중심이었다. 온실가스 감축만 보더라도 온실가스나 에너지효율 기준을 강화하고, 배출권제도처럼 기업체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할당하고 관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온실가스 감축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이번에는 재정투자를 해서 온실가스 감축 사업이 돌아가게 하고 이를 통해 민간 시장도 창출하겠다는 게 그린 뉴딜의 큰 방향이다.
예를 들면 그린 리모델링은 이중창 설치와 벽면·옥상녹화 등으로 기존 건축물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겠다는 정책이다. 하지만 실제 시행하는 주체가 없었다. 이번에 공공 건축물에서 먼저 재정투자를 하고 그 과정에 민간도 참여하면서 성공 사례를 보이면, 자연스럽게 민간 시장도 창출될 수 있을 것이다.
-환경부는 2019년에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4.3% 줄이겠다고 했다. 그린 뉴딜을 계기로 감축 목표를 높일 의향은 없나?
=2019년에 시민사회는 50% 감축하라고 요구했고 산업계에서는 24.3% 감축마저 쉽지 않은 과제라며 난색을 표했다. 2019년 세운 계획은 법정계획으로 시행령에 반영돼 있기 때문에 그린 뉴딜이라는 재정정책에 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협의 과정도 필요한데 시간도 촉박했다. 2023~2024년께 그린 뉴딜의 시행 효과를 분석해 2030년 이후 목표는 좀 더 상향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2050년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계획은 수립됐나?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 당사국들은 2020년 말까지 ‘2050년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을 수립해 제출하도록 돼 있어 현재 부처 안에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유럽연합은 2050년까지 전체 전력량의 80%를 재생에너지가 담당하는 등 탄소 순배출량 0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는 2019년 관계부처 전문가들이 모여 지금까지 보유하고 있는 기술과 제도, 산업을 토대로 5개 안을 마련했다. 이 가운데 가장 강한 시나리오가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17년 대비 75% 삭감한다는 안이었다. 탄소중립과는 간극이 있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부터 논의해야 한다.
“환경부는 규제와 함께 관련 산업 증진도 염두”
-그린 뉴딜 유망기업을 선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온실가스 감축과 환경 개선하는 기업을 선정해 육성하겠다는 뜻이다. 그렇게 해야 환경 개선할 수 있는 수단이 생긴다. 환경부는 규제만 하는 곳이 아니다. 지속가능한 발전, 사회경제구조 전반에서 온실가스 감축과 환경 개선을 염두에 두고 활동하도록 하고 있다. 환경부는 오래전부터 규제와 함께 관련 산업 증진도 염두에 두고 정책을 펼쳐왔다.
-그린 뉴딜에 전기차·수소차의 비중이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린 모빌리티는 2025년까지 20조 3000억 원(국고 13조 1000억 원)이 투입되는 등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2022년 전기차·수소차 대중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린 모빌리티 보급사업은 국민에게 지급하는 구매 보조금 등이 포함돼 있어 모두 대기업 혜택은 아니다. 그린 리모델링의 경우 국고 6조 원을 투입하고 있고, 녹색생태계 회복에 2조 원, 깨끗하고 안전한 물관리 구축에 3조 원 등이 투입되는데 이런 분야는 대기업에 해당하지 않는다.
자동차는 화석연료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되지 않는 탈내연기관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현대·기아차의 경우에도 2023년 이후 내연기관만으로 작동하는 자동차는 만들지 않겠다고 한다. 산업 전환이 이뤄질 수 있도록 수요처를 발굴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자율주행과 배터리 등 관련 산업을 육성하고 내연기관 자동차 전문인력에 대한 재교육도 필요하다.
▶‘친환경 수소전기버스’라고 적힌 경찰버스가 국회 앞에 서 있다. 현재 정부는 낡은 경찰버스를 수소버스로 교체하고 있다. 수소버스 1대는 경유차 50대가 배출하는 미세먼지를 정화할 만큼 공기 정화 효과가 크다. | 한겨레
“무엇보다 자치단체·지역 주민과 소통이 중요”
-그린 뉴딜과 관련해 자치단체들의 요구가 많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자치단체는 그린 뉴딜 사업의 시행 주체이며 그린 뉴딜이 이뤄지는 현장이기도 하다. 당연히 지역 특성에 맞고 지역 주민들이 요구하는 바를 반영해야 속도감 있게 추진될 수 있다. 다만 자치단체가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에서 중앙정부 차원에서 상담과 조언을 해줄 수 있고, 그린 뉴딜의 범주가 어디까지인지 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협업할 수도 있다.
-자치단체·시민단체 등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지역과 소통협의체를 구성할 예정이다. 시민사회 청년들도 포함해서 구성하고, 지역이 주도하지만 중앙정부가 어느 정도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협업하는 구조를 만들 생각이다. 사업계획은 매년 국회 심의를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좀 더 진화한 사업들이 담길 수도 있다. 다만 탄소중립을 지향하고 그 과정에서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있거나 기후·환경 위기에서 안전한 사회를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업, 또는 녹색산업의 범주에는 들어가야 한다.
전국 5개 권역별로 자치단체 공무원들에게 그린 뉴딜 설명회도 할 예정이다. 광역·기초 자치단체 부단체장들과 회의체를 꾸려 제도 개선을 위한 제안을 받을 수도 있다.
글·사진 이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