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압적 통제와 훈련량 늘리는 방식은 안 돼 인권·성적 위해서도 엘리트 장벽 허물어야”

2020.07.27 최신호 보기

▶김상범 교수가 7월 15일 중앙대 안성캠퍼스 체육대학장 사무실에서 체육계 폭력의 원인과 해결방안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김상범 중앙대 체육대학장
2018년 말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의 용기 있는 고발은 스포츠계 전반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이듬해 스포츠혁신위원회(위원장 문경란)를 구성해 ‘체육계 인권침해 대응 시스템의 전면 혁신’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 개선’ 등 7차례 권고안이 발표됐다. 1년여가 지난 2020년 6월 26일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의 고 최숙현 선수가 가혹 행위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달라진 게 없었다.
7월 15일 중앙대학교 안성캠퍼스에서 김상범 체육대학장을 만나 체육계 폭력의 원인과 해결 방안 등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김상범 교수는 국가인권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여러 차례 활동했고, 현재 체육 분야 비정부조직(NGO)인 체육시민연대 대표를 맡고 있다.
김 교수는 “체육계가 단기간의 성과를 위해 소수 엘리트를 선발해 어려서부터 혹사하는 국가주의적, 승리지상주의적 시스템이 작동하는 한 불행한 일은 끊임없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하고 올림픽 메달을 위해 모든 것이 희생되고 메달을 따면 모든 것이 용납되는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 시스템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바꿔보자고 말하면 ‘엘리트 체육 죽이기’라는 프레임이 작동한다”며 “그 시스템의 벽을 넘기가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상급단체의 느슨한 관리감독이 문제
스포츠는 공정한 규칙을 전제로 해 그 결과 역시 공정하다고 믿는다. 선수의 승리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스포츠는 이기기 위해 경쟁하는 만큼 승리가 중시될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스포츠에는 도전과 극복 정신이 있다. 항상 한계를 뛰어넘으려 하고 잠재력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게 인간의 본질이다. 하지만 여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라는 잘못된 단서가 붙어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혼자서 운동 삼아 5km를 달린다 해도 다음에는 단 1분이라도 줄여보고 싶은 게 인간의 기본 욕망이라는 것이다.
그는 “선수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강압적 통제와 훈련량 늘리기 방식은 더 이상 안 된다”며 “인간의 몸은 매일 7~8시간씩 운동할 수 없다. 기존 방식이 아니어도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고 최숙현 선수는 여러 차례 피해 사실을 호소했지만 그를 구제해준 곳은 없었다. 인권침해 대응 시스템의 전면 혁신은 스포츠혁신위 1차 권고안의 주된 내용이었다.
김 교수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라는 게 다 비슷할 것이다. 대한체육회에 가면 다시 밑으로 내려보낸다. 조사할 인력도 없다. 평소 자신의 행동반경에서 벗어나 시민단체 등에 피해를 호소했다면 해결됐을 수도 있다”며 독자적인 시스템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각종 규정은 구비돼 있지만 상급단체의 느슨한 관리감독이 주된 이유라는 지적이다. 시체육회-도체육회-대한체육회 등이 줄줄이 ‘아는 사람 봐주기’를 하니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고 했다. 폭행 등 피해자가 생기면 스포츠공정위원회 규정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하고, 그 이행 결과를 반드시 상급단체에 보고하도록 하는 절차를 명문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0년 8월 스포츠윤리센터를 출범시킨다.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 등을 통합해 신고를 접수하고, 법에 근거한 조사권을 통해 독립적으로 관련 사항을 조사·결정한다.
 
학생선수-일반 학생 이분법적 사고 벗어나야
체육협회 등 조직 운영의 투명성도 시급히 확보해야 할 과제다. 고 최숙현 선수 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안 아무개 경주시청 운동처방사는 의사 면허나 물리치료사 자격증 없이 버젓이 트라이애슬론 팀닥터로 활동했다.
“비인기 종목 등 소규모 협회의 경우 대부분 찬조금을 낼 수 있는 지역 유지들이 협회장을 맡고 사무직원 한두 명을 두고 운영한다. 아무도 협회 운영에 대해 말할 수 없는 구조”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스포츠 선진국들은 많은 자원봉사자가 조직 운영을 돕고, 회비를 내는 회원들도 많아 조직을 함부로 운영할 수 없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선수들의 인권과 성적을 모두 잡기 위해서도 엘리트의 장벽을 더 허물어야 한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미국 등에서는 어릴 때 운동했던 경험이 70~80%가 넘는다. 엘리트나 생활체육 영역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잘하는 사람을 뽑아 국가대표 마크를 달아주면 그가 엘리트 선수”라며 “우리는 엘리트 코스가 따로 있고 이들 소수 인원으로 빠른 시간 안에 경기력을 만들려 하다 보니 무리가 생긴다”고 했다.
스포츠 선진국에서는 학생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스포츠를 통해 많은 경험을 하게 한다. 그리고 진로를 택해야 할 특정 나이에 다른 사람보다 특출난 재능이 발견되면 그때 자기의 길을 선택한다.
우리나라에도 초·중학교 시기에는 운동을 전문으로 하는 선수보다 기량이 뛰어난 학생들이 있지만 선수 등록 등 엘리트의 장벽에 막혀 있다. 김 교수는 “학생선수와 일반 학생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뛰어난 스포츠 인재를 발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합숙소 통해 위계질서 만들어져
학교 스포츠는 본질적으로 교육 활동이다. 하지만 학생선수들은 ‘스포츠 외길’ 인생을 강요받으면서 인권침해 환경에 노출된다. 학생선수를 둔 학부모들은 자녀가 그곳에서 승부를 내야 하기 때문에 담당 코치 등의 폭언·폭력을 알면서 묵인하기도 한다.
합숙소 역시 학생선수들이 일반 학생과 분리된 특별한 잣대로 운영되며 그들만의 폐쇄적 공간이 된다. 합숙소는 사실 학부모나 학생들에게도 필요한 부분이 있어 법적으로 강제하기 어렵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올라온 학생 등은 숙소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운동부 합숙비와 식비 등은 학부모들이 부담하고 있다.
문제는 합숙소를 통해 위계질서가 만들어지고 과도하게 통제된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합숙소를 자신들만의 공간으로 정하고 작위적으로 운영하면서 온갖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감독이 관리를 위해 학년별로 책임을 지우면서 위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초·중학교는 어렵지만 고등학교의 경우 운동부 학생들도 일반 학생들과 함께 기숙사를 이용하는 등 정상적인 교육시스템 안에서 운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생활지도와 감독은 기숙사의 사감이 일반 학생과 동일한 방식으로 하게 된다.
김 교수는 “스포츠 분야에 직접 종사하는 사람은 30만~50만 명 수준이지만 이런저런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을 포함하면 훨씬 많다”며 “스포츠 대회만 보지 말고 정부가 이번 기회에 이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모니터링하고 어떻게 개선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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