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산업 기초체력 키워 경제 주춧돌 지킨다

2020.07.27 최신호 보기

▶6월 1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에서 컨테이너선이 하역작업을 하고 있다.│연합

기간산업 지켜낼 안정기금 출범
코로나19 사태는 기업들이 예상하지 못한 변수다. 방역을 위한 사람과 물자의 이동 제한이 처음에는 내수를 위축시켜 서비스업 중심으로 충격을 주다가 세계적 대유행 이후에는 제조업 등 산업 전반으로 위기가 전이되는 양상이다. 기업이 돌발적인 악재로 충격을 받으면 유동성(자금) 위기가 찾아온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유동성 압박을 해소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표상으로는 아직 기업 자금시장이 평온해 보인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기업에 대한 금융권의 대출과 보증의 만기를 9월까지 연장해놓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만기 연장이 끝나는 9월 이후의 상황이다.

항공·해운업과 협력업체부터 지원 대상
특히 항공, 해운 등 취약 업종 중심으로 핵심 대기업마저 생존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주력산업 대기업의 유동성 압박은 해당 산업 상태계를 위태롭게 하고, 기업 전반의 비용 감축과 고용 불안으로 이어져 경기 침체를 가속화한다. 이는 다시 기업의 경영 환경과 자금 사정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는 악순환을 낳는다.
정부가 이런 악순환이 전파되지 않도록 ‘방파제’ 구실을 할 장치를 마련했다. 바로 5월 28일 출범한 ‘위기 극복과 고용을 위한 기간산업안정기금’(이하 기안기금)이다. 산업은행에 설치된 기안기금은 국가가 보증하는 채권 발행으로 40조 원 규모의 재원을 마련해 코로나19 사태로 경영난을 겪는 기간산업을 지원한다.
정식 명칭에서 알 수 있듯 기안기금의 취지와 핵심 가치는 기간산업의 경영 위기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파급 영향을 최소화해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기금의 채권 발행 한도가 40조 원이지만, 기금에서 구조조정펀드나 특수목적기구(SPV) 출자 등을 통해 민간자본을 유치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기안기금의 지원 규모는 ‘40조 원+알파(α)’로 예상된다.
3차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해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금융지원 예산을 배정받은 금융위원회가 기업들에 대한 금융지원에 다시 시동을 걸고 나섰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7월 7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금융리스크 대응반 회의’에 참석해 “3차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해 정책금융기관에 4조 7000억 원의 재원을 추가로 확충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추경으로 실탄을 채운 만큼 기존에 발표했던 프로그램들을 본격적으로 시행할 방침이다. 우선 기안기금 지원 신청을 정식으로 접수받기 시작했다. 기안기금의 지원 대상 업종과 기업에 대한 법적 요건은 산업법 시행령에 담겼다. 정부는 당초 입법예고안에서 ‘국민경제, 고용안정 및 국가안보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업종’으로 항공·해운·기계·자동차·조선·전력·통신 등 7개 업종을 열거했으나 부처 간 의견 수렴을 거쳐 1차 지원 대상을 항공과 해운, 두 업종으로 한정했다.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업 요건은 ‘총 차입금 5000억 원 이상이며 직접 고용 인원 300명 이상’이다.
시행령은 그러나 지원 대상 업종과 기업을 언제든 확장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뒀다. 방위사업법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정한 방산업체가 속하는 업종, 외국인투자 촉진법에 따라 외국인투자가 제한되는 업종은 기본적으로 지원 대상에 포함된다. 또 핵심기술 보호와 산업생태계 유지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기획재정부 장관과 금융위원회가 기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지원 대상 기업 요건의 예외로 인정한다.
기금을 활용해 기간산업의 ‘협력업체 지원 특화 프로그램’을 추진할 수 있는 근거도 시행령에 들어 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기금의 설립 취지를 고려할 때 지원 대상 업종은 시간이 문제일 뿐 중요한 기간산업은 모두 담기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3차 추경 통과로 신청 및 심사 본격 가동
협력업체 지원을 위한 특화 프로그램은 6월 19일 열린 정부의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 확정됐다. 기안기금에서 1조 원을 따로 떼어내 SPV를 설립한 뒤 코로나19 사태로 타격을 받은 기간산업의 중소·중견기업 협력업체에 총 5조 원 규모의 유동성을 지원한다는 게 확정된 내용이다.
시중은행이 보유한 협력업체 대출 채권을 모아 이를 담보로 SPV가 프라이머리 유동화증권(P-CLO)을 발행해 협력업체에 대한 대출을 확대하고, 수익과 위험은 고루 배분하는 방식으로 구조화 금융이 실시된다. 협력업체 대출에 수반될 수밖에 없는 위험을 기안기금과 정책금융기관, 시중은행, 원청업체와 협력업체가 함께 분담하는 구조다. 정부는 이 프로그램이 기간산업 내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 공존과 상생을 지원함으로써 산업 생태계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프로그램은 7월부터 연말까지 6개월 동안 운영하되, 기간산업 협력업체의 자금조달 여건과 대출 규모, 지원 성과 등을 평가해 정부가 기간 연장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3차 추경의 국회 통과로 기안기금도 기업 신청과 심사 절차 등을 거쳐 본격 가동한다. 기금의 구체적인 관리 및 운용 방식, 지원 대상 기업 선정과 지원 절차 등은 기금 출범 때 발족한 기금운용심의회에서 심의해 결정한다. 기금운용심의회 위원으로는 국회 여야 추천과 기재부, 금융위, 고용노동부, 대한상공회의소, 산은 회장이 각각 1명씩 추천해 총 7명으로 구성됐다.
산은은 기안기금의 본격 가동에 맞춰 시중은행과 긴밀한 협업체계도 구축했다. 기안기금 지원 신청 기업에 심사와 지원 방식을 결정할 때 무엇보다 민간 주채권은행의 정보와 의견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신청 기업의 자금난과 경영 애로가 코로나19의 영향인지, 자금 지원이 이뤄지면 일시적 위기를 극복하고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지 여부는 주채권은행의 이해와도 밀접한 사안이다.

기금 지원의 중요 조건은 고용안정 노력
기안기금의 기업당 지원 한도는 정해지지 않았다. ‘충분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되도록 한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자금난 해소에 그치는 게 아니라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하게 지원한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매출 감소폭이 크고, 앞으로 1년여 동안 예상되는 매출 흐름 또한 부진할수록 지원을 많이 받을 수 있다.
다만 코로나19 사태와 상관없이 오래전부터 부실이 쌓여 구조조정이 필요한 기업은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다. 기존 금융권 차입금의 만기 연장이나 상환을 위한 소요 자금도 지원 대상이 아니다. 지원 방식은 대출과 채무보증은 기본이며,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매입, 자산 매수, 기금의 자본 확충 참여 등으로 이뤄진다.
기안기금 지원을 신청한 기업에는 의무와 조건이 뒤따른다. 먼저 고용안정 노력이다. 기존 고용 총량의 최소 90% 이상을 기금 지원 개시일로부터 6개월 넘게 유지해야 한다. 불가피한 인력 감축 사유가 생기더라도 전환 배치나 근로시간 단축, 순환 휴직 등으로 최대한 고용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노사가 함께 기울여야 한다.
기금 지원 기간에는 기업이 노사 공동의 고용유지 노력 사항을 정부와 산은에 제출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한다. 협력업체의 고용 안정을 위한 상생협력 노력도 자사 누리집에 공개해야 한다. 이익 공유와 도덕적 해이 방지도 기안기금 지원의 중요한 전제 조건이다. 전체 지원액의 최소 10%는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같은 주식연계 증권의 취득 형태로 약정을 맺어야 기금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국가 보증으로 이뤄지는 기업 지원인 만큼 경영 정상화에 따른 이익도 일부나마 국가에 돌려줘야 한다는 취지다.
또 기금 지원이 이뤄지는 기간에는 주주에 대한 이익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이 금지되고, 2019년 기준 연봉이 2억 원 이상인 임직원은 임금을 동결해야 한다. 지원을 받는 기업이 재벌 계열사일 경우 모회사나 다른 계열사 지원으로 기금 지원을 우회 활용하는 것도 철저히 차단된다. 금융당국과 기안기금은 지원을 받는 기업의 약정 의무나 지원 조건의 미이행을 적발할 경우 즉시 지원 자금 감축이나 회수, 가산금리 부과 등의 불이익을 줄 방침이다.



첫 지원 대상으론 대한항공이 유력
금융권과 재계에서는 기안기금의 첫 지원 대상에 관심이 쏠려 있다. 기금이 처음으로 지원할 기업은 대한항공이 가장 유력하다. 대한한공은 지원 신청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지만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이미 집행한 1조 2000억 원의 유동성 지원금을 기안기금으로 이관하기로 했기 때문에 사실상 기안기금 지원 대상 1호를 예약해둔 것이나 다름없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여객 수요 급감에 따른 매출 부진이 지속되는 가운데 매달 5000억~6000억 원의 고정비와 채무 상환이 벅찬 상황이다.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차입금과 회사채 등이 무려 4조여 원에 이른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HDC현대산업개발과 인수합병(M&A) 절차가 먼저 마무리돼야만 기금 지원 여부가 논의될 수 있다.
저비용항공사(LCC)들은 기안기금 대신 정부가 마련한 다른 금융 지원 패키지를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해운업에서는 2개 업체가 기안기금 지원 신청에 관심이 있다는 의사를 최근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자금 사정이 당장 급한 상황은 아니어서 기안기금의 구체적인 기금 지원 조건과 방식을 확인한 다음에 움직이겠다는 게 해운업계의 기류다.
해운업계에 대해서도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이미 1조 8100억 원 규모의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는데, 업체들로서는 이 프로그램과 기안기금의 지원 조건 차이를 비교해가며 신중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항공, 해운업의 기안기금 지원 신청이 마무리된 다음에는 지원 대상 업종과 기업의 확대를 검토할 방침이다.
기안기금은 정부의 국책금융기관 출연과 기금 채권에 대한 지급보증 등으로 재원이 마련된 공적 기금이다. 기업 지원의 성과가 부진한 가운데 오히려 부실만 키우면 최종적인 부담은 국민에게 돌아온다. 코로나19 사태로 위기에 빠진 우리 주력산업의 기초체력을 뒷받침하는 게 기금의 기본적인 역할이지만 운용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담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코로나19 사태와 무관한 부실기업의 생명 연장 수단으로 활용돼서는 더욱 안 된다. 대규모 채권은행들이 기금 운용을 통한 기업 지원에 함께 참여하는 만큼 금융시장의 건전성과 구조적 위험 요인에 대한 끊임없는 점검도 병행해야 한다.

박순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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