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중심 경제, 전 국민 고용안전망 구축 방안’ 토론회
왜, 전 국민 고용안전망 구축인가?
한국판 뉴딜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인 ‘전 국민 대상 고용안전망’은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해당사자 대표들과 전문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댔다.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위원장 홍장표)와 경제사회노동위원회(위원장 문성현)는 7월 8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대회의실에서 ‘사람중심 경제, 전 국민 고용안전망 구축 방안’을 주제로 공동토론회를 열었다.
홍장표 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코로나19 위기 대응을 위한 핵심과제로 전 국민 고용안전망 구축을 내세우는 이유에 대해 “과거 IMF 외환위기 때 대규모 실업 사태는 인적 자본의 훼손과 소득 불평등의 심화로 이어졌는데 우리는 다시 이런 전철을 되풀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홍 위원장은 “고용보험 가입 범위를 확대하고 자영업자까지 취업안전망으로 포괄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 정책 과제”라면서도 “하지만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국민 공감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었고, 여기에 우리나라가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기술(ICT)과 사회보험 및 조세 행정 역량을 총결집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사람중심 경제, 전 국민 고용안전망 구축방안’ 토론회에 앞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첫 번째 주제 발표에 나선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장은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의 전제 조건으로 ‘소득 기반의 고용보험으로 전환’을 제안했다. 특정 사업장에 전속 고용계약을 맺은 임금노동자만 의무 가입 대상으로 하는 현행 고용보험제도에서는 수혜 대상이 전체 취업자의 절반가량에 불과하다.
이 본부장은 “전 국민 고용보험은 노동시장의 변동성, 고용 형태의 다양화에 대응해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실업에 따른 생계 위험을 막아주는 소득 지원과 적합한 일자리 선택, 더 나은 일자리로 이동, 취업 취약계층의 고용 촉진과 직업 능력 제고, 일과 생활의 균형 등을 국가가 지원하자는 것”이라며 “이런 취지를 살리려면 일정 금액 이상의 과세소득을 얻는 모든 취업자의 고용보험 가입이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임금노동자 중심의 고용보험은 노동 장소와 시간, 노동 일수 등에 따라 보험료 적용 및 기여 요건을 설정하고 있다. 그런데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예술인, 자영업자 등 새롭게 고용보험으로 보호해야 할 계층은 취업과 실업의 경계가 모호하고, 노동 시간과 일수를 파악하기 어렵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파악되는 소득에 따라 고용보험료를 부과하고, 급여 지급 기준도 실업 여부가 아니라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로 하자는 게 이 본부장 제안의 핵심이다.
소득 기반의 고용보험을 시행하려면 보험 가입자의 소득 파악이 관건이다. 소득 정보가 매달 파악돼야 하고 객관적인 증빙 절차도 필요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현행 조세 행정의 소득 파악 체계를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수의 사업장에 노무를 제공하는 프리랜서의 소득은 당사자가 국세청에 신고하는 소득과 사업자가 해당 프리랜서에게 지급하는 노무(용역) 비용의 신고 내용을 비교하면 된다.
이 본부장은 “국세청의 납세자와 고용보험 적용 대상자를 일원화하고, 국세청 소득신고 주기를 분기 또는 반기에서 매달로 단축하면 고용보험의 전면적 확대가 가능하다”며 “이를 위해 신고 내용을 단순화하고, 신고 절차를 국세청으로 일원화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용보험 가입자 확대에 따라 전체 보험료 수입이 증가하겠지만 취약계층의 실업 위험이 기존 피보험자에 비해 높기 때문에 지출 소요도 그만큼 클 것”이라며 “보험료 인상이나 재정을 통한 대규모 고용보험 지원 등 고용보험 재정의 늘어나는 부담을 어떻게 공유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보편적 고용안전망의 하나로 직업훈련에 대한 지원 확대 중요”
‘직업훈련과 국민내일배움카드의 발전 방향’을 주제로 발표한 최영섭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새로운 보편적 고용안전망의 하나로 직업훈련에 대한 경제적 지원 확대를 강조했다. 현재 고용보험의 고용안정·직업능력개발 보험료를 재원으로 하는 직업훈련 지원 사업은 2020년부터 ‘국민내일배움카드’라는 이름으로 지원 대상자와 한도, 기간 등을 크게 늘려 실시되고 있다.
최 연구위원은 “2020년 국민내일배움카드제의 시행으로 비정규직, 특수고용직과 플랫폼 노동자, 영세자영업자까지 포함하는 직업 능력 지원시스템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하면서도 “그러나 좀 더 폭넓은 인적 역량 개발을 위한 고용서비스 구축, 직업훈련의 품질 제고와 지원액 상향, 재원 조달의 안정을 위한 체계 개편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원 조달 체계의 개편과 관련해 그는 “부담의 주체와 수혜 대상이 일치해야 하는 보험 원리에 얽매이면 기업 외부의 핵심 인력에 대한 역량 개발이 불가능해진다”며 “직능보험료 또한 특정한 정책 목적을 이루기 위한 특수목적세와 같은 성격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직업훈련 재원을 고용보험의 일부에서 주로 조달하는 방식은 직업훈련과 인적 역량 개발의 일관성 유지에 불리하고, 다른 고용정책과 연계성 확보도 어려운 만큼 일정 규모 이상의 모든 사업주가 부담하는 임금 기반의 조세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정흥준 수석전문위원은 ‘고용안전망 확충을 위한 노사정의 역할’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고용 충격이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수준을 이미 넘어섰고, 지금까지 취약계층에 집중된 피해가 앞으로 전체 노동시장으로 확산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3월부터 고용 지표가 급격하게 나빠져 5월 현재 실업자 127만 8000명에 일시 휴직자와 잠재 구직자, 구직 단념자 등을 모두 합하면 435만 명에 이르는데 이는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15.4%에 해당하는 규모”라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현행 사회안전망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진 재직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어,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충격이 노동시장 내부의 ‘부익부 빈익빈’을 더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 전문위원은 “사회안전망 강화의 핵심은 노동시장 내 사각지대를 줄이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전 국민 고용보험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면 고용보험 미가입자와 특수고용직→청년 구직자→1인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한 비임금 근로자 등의 차례로 우선순위를 제시했다.
▶7월 8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 대회의실에서 열린 ‘사람중심 경제, 전 국민 고용안전망 구축 방안’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위기 극복 위해선 정부의 의지와 노사의 적극적 동참과 협력 필요”
이날 토론회에서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고용위기를 극복하려면 정부의 의지와 정책적 노력뿐 아니라 노동계와 경영계의 동참과 협력이 절실하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종합 토론은 유길상 한국기술교육대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고, 주제 발표자들과 함께 김동욱 한국경영자총협회 사회정책본부장, 이태희 중소기업중앙회 스마트일자리본부장, 정문주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정책본부장, 이성종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플랫폼노동연대 대표,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 정미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책실장이 토론자로 참여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김동욱 경총 사회정책본부장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와 고용위기가 심화하는 현실을 고려해 고용안전망 강화에 대한 경영계의 입장이 최근 전향적으로 바뀌었다. 국무총리 주재의 노사정대표자회의를 통해 특수고용직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고용 인프라와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역에서 일하는 상담원들의 업무가 폭주하고 있다. 고용안전망을 강화·확대하기 이전에 이런 공공서비스의 인력 확충부터 정부가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성종 플랫폼노동연대 대표는 소득 기반의 고용보험 전환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면서 “플랫폼 운영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는 플랫폼 운영 사업자에게도 과세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토론에 앞서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위기 속에서 어떻게 하면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그리고 불가피하게 일자리의 어려움을 겪더라도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생계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며 “코로나19로 국민 모두가 어렵지만 청년,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더욱 크다. 이들이 절망하지 않도록 실질적 대안을 만들고 양극화 해소의 관점에서 고용안전망에 대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기 위해 노사정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 위원장은 국무총리 주재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 고용안전망 강화에 대한 합의가 이미 어느 정도 이뤄졌다는 점을 상기하며 “이제 노사정이 할 일은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면서 일하는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사회적 보호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며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를 열기 위한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로드맵’을 2020년 연말까지 마련하고 2021년부터는 특수고용직도 고용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글 박순빈 기자
사진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