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 타워는 고양이의 침대이자 의자 구실을 하며 동시에 사람들에게 고양이의 귀여움과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 세상의 가구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그 위에 사람이나 물건을 놓는 가구다. 침대, 의자, 소파는 대개 그 위에 사람을 놓을 목적으로 만든다. 그곳에 놓인 것은 대부분 잠시 있다가 사라진다. 사람은 침대 위에서 잠을 자거나 쉬다가 일어나 침대에서 벗어난다. 의자도 마찬가지다. 일을 할 때 잠시 점유했다가 일이 끝나면 그곳에서 떨어진다. 침대와 의자가 사람을 놓을 목적으로 만든 것인 반면 책상과 식탁, 작업대 등은 물건을 올려놓으려고 만든다. 이들 가구 위에 놓인 물건들 역시 잠시 놓였다가 사라진다.
사람이 아니라 물건을 놓는 가구는 디스플레이(진열, 전시)가 중요하다. 책상 위에는 컴퓨터와 책, 노트, 작은 책꽂이, 서류함, 필기구를 담은 상자, 가족사진 등을 일의 효율성에 맞게 적절히 배치해야 한다. 다년간의 경험이 쌓여 이런 물건들이 배치된다. 식탁 위에는 그릇과 접시, 숟가락과 젓가락 등이 놓이는데, 여기에는 식사의 효율성은 물론 전통적인 배치 형식과 예절을 따른다. 그것은 마치 판 위에 무엇을 펼치는 것과 비슷하고, 백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닮았다.
▶조 콜롬보가 디자인한 토털 퍼니싱 유닛(Total Furnishing Unit), 1972년. 이것은 작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시스템 가구로, 침대는 사용하지 않을 때 안쪽으로 사라진다. 반면 옷장과 수납장은 특정 공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수평적 가구와 수직적 가구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따라서 이 첫 번째 범주의 가구는 평면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물론 모든 가구는 입체적이다. 탁자도 다리가 있기 때문에 직육면체의 형태를 갖는다. 하지만 탁자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은 그 위에 뭔가를 올려놓는다는 데 있다. 그 점에서 탁자는 넓고 평평한 면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침대도 마찬가지다. 의자만이 예외적으로 기울어진 면을 허용한다.
두 번째 범주의 가구는 그 안에 뭔가를 담는 것이다. 우리말로 장(欌)과 농(籠), 함(函)과 궤(櫃) 등은 대부분 무엇을 담아 가두려고 네모난 상자 모양으로 만든 가구를 일컫는다. 영어로는 ‘캐비닛(cabinet)’에 해당하는데, 유럽에서는 가구 장인을 ‘캐비닛메이커(cabinetmaker)’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니까 침대나 의자, 탁자보다 장과 함이 더 일찍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잠은 바닥에 누워서 자도 되지만, 중요한 것을 담는 용도의 물건은 먼저 그 필요가 찾아왔을 것이다.
▶식탁은 그것이 담는 물건을 배치하는 것이 주요 기능이므로 평면적인 특징을 가지며, 그 위의 물건들은 잠시 있다가 사라진다.
물건을 놓는 가구와 담는 가구의 차이
담는 가구는 부피를 가지며 사방이 막혀 있다. 이 가구들은 대부분 문이 달려 있어서 그 안의 물건을 감춘다. 반면에 담은 물건을 노출하는 장이 있다. 장식장과 책장이 그것이다. 장식장과 책장은 담은 물건을 자랑해야 하므로 문이 없이 개방되어 있다. 또 대개 수직적인 특징을 갖는다. 이것은 모니터와 스크린이 수직적인 것과 같은 이치로 보여주는 것이 본질적인 기능이기 때문이다.
침대와 탁자를 차지한 사람이나 물건은 잠시 있다가 사라진다. 이것이 수평적인 가구의 특징이다. 반면 장과 궤는 그 안을 점유한 물건이 오랜 시간 보관된다. 따라서 늘 무겁다. 이것이 두 범주의 가구가 갖는 근본적인 차이다. 침대와 의자는 주인을 맞이했다가 잠시 헤어져야 하는 운명이다. 이건 무슨 뜻이냐 하면, 쓸모가 항구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이런 가구는 늘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사라지는 게 더 좋다. 공간 활용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주거 문화를 살펴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과거 한국의 집에는 침대와 의자가 없었다. 침대를 대신하는 요는 방바닥에 폈다가 주인이 일어나면 다시 장롱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하여 그 공간, 즉 잠을 잤던 방은 밥을 먹는 장소가 되기도 하고 공부를 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의자는 방석이 대신한다. 이렇게 시간에 따라 쓸모가 있고 없고를 반복하는 가구인 침대와 의자는 한국에서는 딱딱한 재료인 나무가 아닌 부드러운 재료인 천으로 만들어 공간의 낭비를 줄이고 융통성 있게 사용했다.
현대의 가구에서도 탁자와 의자는 가볍고 이동이 좀 더 쉽다. 사무용 가구의 경우, 사용하지 않을 때는 쌓을 수 있도록 만들거나 밀착되게 해서 한쪽으로 치워 공간 활용도를 높이기도 한다. 침대도 어떤 경우에는 이동한다. 서양에서도 작은 공간에서는 침대를 세로로 세워 공간 활용도를 높이도록 한다.
하지만 장이나 책장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과거 전통 한옥에서도 장이나 궤짝, 장식장 기능을 한 사방탁자는 움직이는 경우가 드물고 어쩔 수 없이 공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단, 서양에서는 이들 물건을 이동용으로도 활용했다. 여행용 트렁크가 그것이다. 서양의 커다란 트렁크는 움직이는 캐비닛에 가깝다.
▶서양의 여행용 트렁크는 일종의 ‘움직이는 캐비닛’이다. 가구인 셈이다.
반려동물이 불러온 새로운 개념의 가구
집 안의 가구를 살펴보면 이렇게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두 가지 범주의 특징이 하나로 합쳐진 가구가 최근에 우리 집 안으로 들어왔다. 2019년 말부터 고양이를 키우면서 생긴 일이다. 반려동물이 가족이 되면서 한국의 가정에도 새로운 개념의 가구가 추가되었다. 예를 들어 예전에 개집은 집 밖에 있었고, 사람의 집과 대등한, 개의 독립된 집이었다. 지금은 개를 집 안에서 키우면서 개집은 실내의 가구가 되었다.
고양이는 개보다 더 많은 가구가 필요하다. 고양이집, 고양이 화장실, 그리고 캣 타워가 그것이다. 캣 타워는 참 묘한 가구다. 이것은 고양이를 위한 침대와 의자이며 놀이기구다. 그것은 말하자면 잠시 사용하다 쓸모가 사라지는 가구다. 인간들에게 그런 범주에 속하는 가구들인 침대와 탁자는 수평적이다. 반면에 캣 타워는 수직적이다. 높은 곳에서 자신을 숨긴 채 사방의 정보를 살피는 고양이의 본능을 따라 그렇게 디자인되었다. 수직성 때문에 캣 타워는 장식장이나 책장을 닮았다.
이 수직성은 고양이의 본능을 따른 것이지만,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좋다. 캣 타워에 올라간 고양이는 마치 사방탁자에 놓인 아름다운 도자기처럼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양이는 관상용품과 달리 살아 있는 생명체이지 않은가. 그러니 쓸모가 일시적이더라도 캣 타워는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물 것이다.
김신_ 홍익대 예술학과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하고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 대림미술관 부관장으로 일했다. 현재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