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강성진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인터뷰
한국판 뉴딜은 튼튼한 고용·사회안전망 위에 데이터,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뉴딜과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등 그린 뉴딜의 두 기둥이 서 있는 형태다. 한국판 뉴딜의 디딤돌인 고용·사회안전망 강화에 정부는 2025년까지 28조 4000억 원을 투자해 일자리 33만 9000개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고용 충격으로부터 취약계층을 보호하고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탄탄하고 촘촘한 고용·사회안전망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에는 문재인정부의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 국정철학이 녹아 있다. 한국판 뉴딜에 대해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무엇보다 안전망 강화에 집중해줄 것”을 당부했다.
-한국판 뉴딜의 첫인상은 어땠는가?
=세 축으로 언급된 디지털과 그린 경제로 이행, 그리고 안전망 강화는 세계적인 큰 흐름이다. 한국판 뉴딜은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다. 다만 고용·사회안전망 강화와 관련해 조금은 서둘러 발표했다는 느낌이 있다.
-어떤 부분에서 그러한가?
=발표한 항목에 관련 예산이 첨부돼 있으나 조금 치밀하지 못한 느낌이다. 예를 들어 전 국민 고용안전망 구축에 2022년까지 8000억 원, 2025년까지 3조 2000억 원이 사업비로 책정되어 있다. 그 기간 동안 왜 그만큼 사업비가 드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보였으면 더 좋지 않았겠나 싶다.
안전망 강화 중도하차 땐 국민 큰 충격
-안전망 강화는 한국판 뉴딜의 디딤돌이다.
=안전망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야 할 일이다. 민간이 나서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은 일종의 투자 개념이다. 설령 하다가 멈추더라도 국민에게 직접 피해가 가진 않는다. 하지만 안전망은 정책을 만들어놓고 중도 하차하면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준다. 이를테면 최저생계비를 모두에게 지급한다 해놓고 예산 부족으로 80%에게만 주면 문제가 커진다. 그래서 안전망은 굉장히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민간에 좀 더 맡기고, 정부는 그 여력까지 ‘안전망 강화’에 집중하면 좋겠다.
-먼저 고용안전망 분야에서는 전 국민이 고용보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현재 1067만 명인 고용보험 가입자 수를 2025년 2100만 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자영업자는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비용 부담으로 가입을 꺼리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취업자의 20% 이상이 자영업자인데 고용보험 미가입 자영업자는 500만 명이 넘는다. 정책에 따른 비용 부담을 정부와 민간으로 나눴을 때, 정부는 세금으로 책임지면 되지만 민간은 부담이 클 수 있다. 사실상 고용을 꺼리게 만들 수도 있다. 특히 자영업자가 제일 걱정이다. 자영업자는 본인이 돈을 투자해서 본인이 노동하기 때문에 자본가면서 노동자다. 이들에게 고용보험 부담을 모두 책임지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고용안전망과 사회안전망, 어느 쪽에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가?
=사회복지정책으로 접근하면, 고용안전망보다는 사회안전망에 좀 더 중점을 두기 바란다. 고용안전망은 취업자들의 안전망이다. 실업자나 구직자를 고려하지 않는다. 고용안전망만 강화하려면 임금을 올려주는 게 고용자에게는 가장 좋다. 하지만 이럴 경우 고용하려는 입장에선 채용을 꺼리게 되고 결국 노동시장으로 들어가는 문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양면성을 봐야 한다. 취업을 안 한 사람에겐 고용안전망 강화가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다. 또 실업자 100만 명 시대, 이들의 안전망 강화도 중요하다. 기초생활수급자 조건인데 보호를 못 해주는 경우도 많다. 고용안전망도 중요하지만 전반적인 사회안전망이 아직은 우리에게 더 시급하다고 본다.
정부가 너무 많은 역할 떠맡으려 하지 말아야
-이제 첫발을 떼었다. 한국판 뉴딜을 완성본으로 만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코로나19로 정부 입장에서는 서두를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코로나19가 방향을 제대로 잡게는 해줬다고 생각한다. 다만 풀어가는 과정에서 정부가 너무 많은 역할을 떠맡으려 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부가 모두 다 하겠다는 사고를 버리고 규제 정비를 통해 민간이 부담할 수 있는 범위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단계별로 차근차근 풀어가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 16일 21대 국회 개원연설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걸림돌이 되는 규제 혁파에 힘을 모으고 변화된 환경에 맞는 제도개선에 속도를 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판 뉴딜의 성공이 규제 혁파에 달려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규제만 풀어도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많다. 한국판 뉴딜의 양대 축인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은 4차 산업혁명이 제기되면서부터 논의되었다. 기업들의 미래 먹거리인 것이다.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은 기업들이 가야 할 길이다. 정부는 시장 참여자들의 자유로운 진입과 퇴출이 가능한 생태계 구축을 위해 규제 정비에 집중해야 한다.
심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