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나는 모든 사람이 죽지 않고 반드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은 자신의 삶과 단절이자 삶이 맺어주는 관계와 단절이다. 관계는 비단 사람과 관계만은 아닐 것이다. 죽음은 내가 살면서 접촉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분리한다. 나는 자신이 태어나는 것을 선택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음 또한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것에 의문을 품고 있다. 따라서 스스로 선택해 존엄하게 삶을 마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이런 생각을 사람들에게 주장할 마음은 없다. 지금으로서는 말이다. 스스로 존엄하게 죽음을 택하는 것을 논의할 수 있는 사회가 오거나 오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죽고 난 뒤에 그것이 시작될 수도 있고 인류가 삶을 영위하는 동안 끝내 시작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존엄사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활발히 전개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우리는 대체로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죽어 마땅하다고 여긴다. 실제로 그런 범죄에 대해 사형제도를 두고 법의 이름으로 실행해왔지만, 사형제도가 가진 당위가 그 자체로 무결하지 않다는 것을 인류가 이해하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각 사회가 규정하는 범죄 또한 불변하는 것이 아니며, 어제만 해도 폭력으로 규정되지 않던 행위가 내일은 명백한 범죄로 규정될 수 있다.
나는 사형제도에 반대한다. 법은 사람에게 죽음을 선고할 수 없다. 죽음을 선고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다. 그 외 무엇도 개인의 죽음을 결정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죽지 않고 반드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선 나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이다. 나는 내가 죽지 않고 반드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내가 나의 죽음을 결정하고 그것을 선택해 존엄한 방식으로 실행할 수 있는 장치가 있기를 소망할 따름이다. 그것이 없는 한 죽음은 비극 자체이며, 나의 존엄을 지킬 수 없게 하는 가장 파괴적인 행위일 뿐이다.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매일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매일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에 속한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끔찍한 범죄로 인한 죽음을 제외하고, 나는 행복하게 죽고 싶다. 행복하게 죽고 싶어서 매일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더는 살아가지 않기로 오랫동안 숙고해 신념을 가지고 결정했을 때,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죽을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 스스로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든 죽음을 비극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죽음이 삶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라 여기는 사람에게 존엄을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죽음이 주어질 때, 비로소 죽음이 유일한 선택지가 아닌 삶을 계속 살아가기 위한 건강한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실제로 지금 당장 나에게 존엄을 지키면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죽음을 택할 수 있는 방편이 있다면, 나는 내가 가진 용기보다 더 큰 용기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용기와 신념을 가지고 세상이 가져다주는 여러 문제와 맞서 살아간다 한들 그 끝에서 맞닥뜨리는 죽음이 비극이라 생각하면, 서서히 병들어가는 마음을 무엇으로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계속해서 용기와 신념을 가지려면 내게 마련된 건강한 죽음이 필요하다. 내가 이룬 성취나 물질적 보상은 내가 살아가는 데 끊임없이 잊지 않고 잃지 않고 매일 새롭게 만들어야 할 용기와 신념에 아주 잠깐의 위로가 될 뿐이다. 성취나 보상, 명예와 권력은 죽지 않고 살아가는 동력이 결코 되지 못한다. 나는 나의 존엄과 안전과 건강한 죽음을 동력 삼아 매일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그러한 세상이 오지 않는다 해도, 언젠가는 반드시 존엄하고 건강한 죽음이 인간에게 주어지기를 바란다.
유진목_ 시인. 2016년 시집 <연애의 책>을 낸 이후 시집 <식물원>, 산문집 <교실의 시> <책이 모인 모서리 여섯 책방 이야기> 등을 썼다. 부산 영도에서 서점 ‘손목서가’를 운영하고 있다.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