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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동화는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21세기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 보물창고다. 어릴 때 엄마와 할머니에게 잠자리에서 들었다가 거의 잊고 지내는 이야기다. 요즘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휴대전화에 빠져 사느라 그런 소중한 동화를 잊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옛이야기 백가지 1>을 읽으면서 무릎을 치게 만드는 얘기를 여러 개 만났다.
아무리 배고파도 돈을 먹을 수는 없다
옛날에 구두쇠 부자 양반과 그 집에 머슴 사는 총각이 있었다. 부자는 돈 모으는 것이 낙이었다. 돈이 생기면 커다란 자루에 넣었다. 누가 훔쳐갈까 봐 잘 때도 돈 자루를 베고 잤다. 돈 자루에서 돈을 꺼내 쓴다는 것은 그의 사전에 없었다. 머슴 총각은 새경도 받지 못하고, 밥도 옥수수떡만 먹어야 했다. 머슴이 아파 일을 못하면 옥수수떡마저 없었다. ‘무노동 무임금’이었다.
머슴은 떡을 먹으면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햇볕에 말려 모았다. 주인은 머슴을 멍청하다고 비웃었다. 머슴은 아랑곳하지 않고 떡 부스러기를 커다란 자루에 가득 채웠다.
그러고 나자 비가 엄청 왔다. 논과 밭은 물론 길과 집마저 모두 침수됐다. 부자는 돈 자루를 메고, 머슴은 떡 부스러기 자루를 챙겨 산으로 피난 갔다. 빗물은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머슴은 끼니때마다 떡 부스러기를 한 줌 듬뿍 꺼내 먹었다. 며칠이 지나자 부자가 머슴에게 사정했다. 떡 부스러기 한 줌 값이 닷 푼, 한 냥, 닷 냥, 열 냥, 백 냥, 천 냥으로 높아졌다. 그래도 머슴은 꿈쩍하지 않았다. 결국 부자는 돈 자루를 통째로 머슴에게 안기고 떡 부스러기 한 줌을 얻어먹었다.
돈은 소중한 재산이다. 하지만 돈은 먹을 수 없다. 떡 부스러기처럼 사용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돈을 소중하게 여기되, 떡 부스러기 같은 사용가치를 무시해 인심을 잃어서는 큰코다친다. 돈만 좇으며 모든 것을 버리는 사람들은 돈의 허망함을 깨닫는 날이 반드시 온다.
축소균형의 가난과 확대균형의 부
어느 큰 부잣집에 5대 독자가 있었다. 귀하디귀한 아들인지라 애지중지 키우니 암사내가 됐다. 아버지는 똑똑하고 당찬 며느리를 얻어 자신이 일군 재산을, 아들이 잃지 않고 지켜 더 불리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리 집에 와서 쌀 한 말로 세 식구가 석 달을 먹고 살면 며느리로 삼겠다’는 방을 붙였다.
많은 양갓집 처녀들이 응모했다. 하지만 처녀들은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포기했다. 아무리 아껴 먹어도 한 말로는 세 사람이 석 달을 살 수 없었다. 이웃 동네에 가난한 농부의 딸이 도전했다. 그는 쌀 한 말을 받자마자 한 되를 퍼내 밥을 지어 종 내외와 함께 배불리 먹었다. 이튿날도 그렇게 지냈다. 사흗날 아침도 쌀 한 되로 밥을 지어 먹은 뒤 그는 종 내외에게 말했다.
“밥도 든든히 먹었으니 이제부터 나와 아주머니는 들에 나가 나물을 캐고, 아저씨는 산에 가서 나무 한 짐을 해와 그것을 팔아 양식을 사다 먹읍시다.”
셋이서 그렇게 나물과 나무를 해다 팔아 양식을 사니 처음에 받았던 쌀 한 말을 다 먹기 전에 오히려 양식이 불어났다. 며느리 시험에 당당히 합격한 것은 물론이다.
쌀 한 말로 석 달을 살라고 하면 대부분은 아껴 쓸 생각만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부족한 쌀을 적게 쓴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가난한 집의 처녀는 전혀 다른 접근 방법으로 종 내외의 신뢰를 얻었다. 먹을 것은 제대로 먹되, 더 많은 식량을 확보하는 확대균형 사고와 행동이 해법을 만들어냈다.
고루 나누는 부다익과가 해법
살림이 넉넉지 않은 홀어미가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살았다. 큰아들이 열두 살, 작은아들이 열 살이 됐을 때 어머니가 말했다. “큰일을 하려면 넓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내가 그동안 절약해서 모은 돈을 나눠줄 테니 10년 동안 공부한 뒤 돌아오거라.”
10년 뒤 섣달 그믐날에 두 아들이 돌아왔다. 큰아들은 ‘도둑질하는 술수’를, 작은아들은 ‘부처님의 힘을 빌리는 재주’를 배웠다고 했다. 어머니는 이렇다 할 대꾸를 하지 않고 “설음식을 장만하지 못했다”고 걱정했다. 그러자 두 아들이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큰아들은 그 동네에서 가장 잘사는 집 대문에서 중얼중얼 주문을 외고 난 뒤 가난한 집 앞에 가서 중얼중얼하다가 자기 집 앞에서도 중얼중얼댔다. 그러자 가난한 집과 자기 집에 쌀 한두 말과 돈이 뚝 떨어졌다. 그 쌀과 돈으로 설을 푸짐하게 쇨 수 있었다. 큰아들이 술수를 부려 부잣집의 쌀과 돈을 가난한 집에 나눠준 것이다.
작은아들도 동네 한 바퀴를 돌다 돌아왔다. 어머니가 솥뚜껑을 열어보니 커다란 대구 한 마리가 있었다. 어머니는 작은아들을 꾸짖었다. “그 대구는 부모도 없이 늙은 할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아이가 할아버지 병을 고치려고 장에서 사온 건데, 우리가 먹자고 그것을 훔친 것이 부끄럽지도 않느냐”고 호통쳤다.
홍찬선_ <한국경제> <동아일보> <머니투데이>에서 28년간 기자를 지냈다. 저서로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임시정부 100년 시대 조국의 기생충은 누구인가>, 역서에 <비즈니스 경제학> <철학이 있는 부자> <부자가 되려면 부자에게 점심을 사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