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고용직 3개 업종 종사자들 목소리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을 선언한 정부가 특수고용직의 고용보험 적용을 현재 산업재해보험 가입이 가능한 직종부터 추진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는 5월 18일 “국내 220만 명 규모로 추정되는 특수고용직 가운데 이미 산재보험 적용 대상인 9개 직종의 고용보험 가입을 우선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에 따라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9개 특수고용직은 보험설계사, 건설기계 운전원,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택배 기사, 퀵서비스 기사, 대출 모집인, 신용카드 회원 모집인, 대리운전 기사다. 한국노동연구원 추계에 따르면 이들 9개 직종 종사자 규모는 77만 명(2018년 기준)에 이른다. 특수고용직 종사자들은 고용보험 적용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 특수고용직 가운데 3개 업종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2019년 9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고용보험 도입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문화예술연대
보험설계사 ▶▶
“부담 있겠지만 업계 공동체 위해 필요”
“대통령 연설을 통해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최근 뉴스에서도 관련 소식을 많이 접한다. 보험설계사 개인마다 입장이 다를 수 있지만, 업계 공동체를 위해 고용보험 도입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사회안전망 속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시행해야 하는 일 아닌가.”
서울시에 거주하는 양 모(49) 씨는 보험설계사로 일한 지 1년 정도 됐다. 그동안 직장생활, 자영업 등을 두루 경험한 그는 “자영업 할 때는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한 고용보험 임의가입 제도가 없었고, 직장생활 했을 때만 고용보험에 가입했었다. 무엇보다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자영업을 거쳐 현재 보험설계사까지 고용보험 적용이 안 되는 상황에서 일하다 보니 실직 등에 대비할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 경우는 2019년과 비교할 때 2020년 초 매출이 오른 상황이라 코로나19 특수고용직 대상 긴급고용안정지원금을 받지 않았지만, 이런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은 맞다고 본다.”
양 씨 주변 동료 가운데에는 고용보험 적용을 선뜻 반기지 않는 이들도 있다. 양 씨는 “전에는 내지 않던 보험료를 매달 내는 게 부담스럽다는 이들도 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경우에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 설계사가 여러 개 보험을 들기도 하는데 그런 이들은 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특수고용직 종사자와 함께 고용보험 가입비용을 내야 하는 보험업계 반응에 대한 우려도 없는 건 아니다. 양 씨는 “영업을 기반으로 삼는 이 업계 속성상 실적이 좋은 설계사들에게 유리할 수 있다”며 “실적이 좋지 못한 이들은 보험사 입장에서는 보험료만 더 지출시켜 감축 대상으로 몰릴 거라는 얘기도 나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양 씨가 고용보험 적용이 추진돼야 한다고 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보험설계사 업계 전체를 생각하면 변화해야 하는 게 맞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보험설계사는 일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는 대표적인 직종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10년 이상 이 일을 한 뒤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으려면 이런 제도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선진국은 세금을 내고, 그만큼 사회복지 등 여러 혜택을 누리는 걸 당연히 여기는 문화가 있다. 우리도 점차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다만 보험료를 함께 내야 하는 회사 측에서 무리한 실적 압박이나 인원 감축 등을 하지 않도록 정부가 제도 취지에 대한 공감대를 충분히 마련하고, 혹시라도 제도가 악용되지 않도록 해줬으면 한다.”
학습지 교사 ▶▶
“대의에 공감, 직업별 특수성 고려했으면”
“학습지 교사 가운데 아직 고용보험 적용에 대한 정보를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법안이 어떤 방향으로 구체화되는지 상세한 ‘조건’을 봐야 의견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사회안전망을 구축한다는 대의에 대해선 동의한다. 다만 업계의 현실적인 목소리가 잘 담겼으면 한다.”
인천광역시에서 학습지 교사로 일하는 김 모(52) 씨는 고용보험 적용과 관련해 “만약 추진된다면 구체적으로 보험료를 얼마나 내고, 어떤 보장과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또 “특수고용직 9개 직업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각각의 특수성을 꼼꼼히 파악했으면 한다. 일반적으로 고용보험 실업급여 대상자가 되려면 일정 기간 근무 등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 한데 학습지 교사 분야는 퇴사한다면 자발적으로 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덧붙였다. “적은 보수에 고용보험료까지 내며 2~3년 열심히 일하던 학습지 교사가 일이 너무 힘들어서 자발적으로 퇴사한 뒤 다른 직종으로 재취업을 준비할 때 고용보험 보장을 받을 수 있을까? 경력 1년이 채 안 된 학습지 교사들은 보수가 매우 적은 편인데 그들한텐 특히 고용보험료 내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일 거다.”
학습지 교사 분야는 회사 측에서 다수의 교사를 확보하기 원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진입이 쉽다. 김 씨는 “직업의식이 덜 갖춰진 이가 이 일을 시작했다가 몇 달 만에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자칫 고용보험 수혜 기준에 맞춰서 일하고, 퇴직해 혜택만 받는 이들이 나올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열심히 일한 이들 입장에선 내가 다른 이들을 위해 보험료 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1년 정도 일하고, 몇 달 실업급여 받으며 쉬다가 다시 취업하는 등 악용 사례가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모든 국민이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든다는 방향성은 좋은데, 어떻게 해야 열심히 일한 이들이 비상 상황이나 노후 등을 대비할 수 있는 제도가 될지 충분히 고민했으면 한다. 관건은 법안을 어떻게 가다듬느냐에 있다.”
퀵서비스 기사 ▶▶
“코로나19로 고용보험 필요성 더 크게 느껴”
“코로나19로 일이 많이 줄어서 힘들다. 특수고용직 대상 고용안정지원금을 신청하려고 한다. 이런 시기여서 고용보험 필요성에 더 절실히 동감한다. 고용보험 등에 가입돼 있으면 굳이 지원금 신청 증명 서류를 준비하는 절차 없이도 소득이 잡혔을 거다. 한 군데 이상 회사와 일하고 있는데 특정 시기 기준으로 수입이 줄었다는 걸 증명하는 게 쉽지 않았다. 퀵서비스 기사들 가운데 돈을 모을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신용불량자도 많고, 본인 이름으로 통장 하나 못 만드는 이들도 있다. 코로나19 같은 상황이 또 갑자기 닥친다면 정말 큰일이다.”
서울시에서 퀵서비스 기사로 20년을 일한 50대 최 모 씨 이야기다. 그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고용보험을 비롯해 사회안전망 구축의 필요성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가 퀵서비스 기사로 일하며 고용보험 적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이 직종 특성상 법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는 “보험료 내는 게 부담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텐데 내 경우엔 산재보험 가입을 계기로 사회보장의 필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산재보험으로 매달 3만 원 정도 낸다. 그 전엔 정말 불안했다. 퀵서비스 업무 특성상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위험성에 대한 보장이 돼야 병원 갈 일이 생겨도 그나마 덜 힘들어진다.”
“계약서 없이 일하는 분야 특수성 고려하길”
일반적으로 특수고용직 9개 직종 가운데 퀵서비스 기사, 대리운전 기사 등은 명시적인 계약 없이 일하는 경우가 많다. 김 씨는 “법안이 최종 통과된 상황이 아니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처럼 계약서 없이 일할 경우에도 고용보험 가입 대상이 될 수 있을까? 만약 사업주 측에 계약서 쓰자고 하면 ‘그럼 다른 데 알아보세요’라고 싸늘한 대답이 돌아올 거 같다”고 말했다. “계약서를 쓰더라도 3개월 등 쪼개기 계약을 많이 하는데 그런 경우도 고용보험 적용이 될까? 제도가 시행된다면 플랫폼 노동자(노무 제공자가 사용자에게 종속되지 않은 자영업자)가 고용보험에 가입할 경우, 계약서 유무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일을 했는지 등 내용을 보고 판단하는 쪽으로 정리됐으면 한다. 제도 자체와 취지엔 동의하지만, 이런 이유로 당사자들이 가입하기 어렵다면 그건 아무 소용 없지 않겠나? 정부가 제도 시행과 보완을 할 때 이런 업계 특성을 잘 고려해서 반영하면 좋겠다.”
김청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