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K-스포츠 바람 몰고 온 지도자들

2020.06.29 최신호 보기

▶훈련 중인 베트남 태권도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모습

2021년 동남아시안(SEA)게임 개최와 도쿄올림픽을 맞이하는 베트남 국가대표팀에 ‘태극 열풍’이 불고 있다. 과거 ‘외국인 감독’ 하면 러시아·중국 출신 감독이 일반적이던 베트남에선 현재 7명의 한국인 감독이 왼쪽 가슴에 금성홍기를 달고 국가대표팀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박항서(축구)·박충건(사격)·신무협(펜싱)·김선빈(양궁)·김길태(태권도)·박지운(골프)·조성동(체조) 감독이다. 코로나19 여파에도 베트남 국가대표팀 선수촌은 한국 감독과 베트남 국가대표 선수들의 기합과 땀으로 가득했다.
박항서 감독 열풍이 불기 전, 한국인 베트남 국가대표 감독으로 첫 역사를 쓴 이는 사격의 박충건 감독이다. 박 감독은 2007년 당시 경북체육회 실업팀 감독을 맡아 베트남으로 전지훈련 왔던 것을 계기로 베트남과 연을 맺었다. 틈틈이 한국으로 훈련 온 베트남 선수들을 가르치다 2014년도부터 베트남 사격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한국의 박 감독에게 보낸 베트남 선수들의 기량이 크게 향상돼 돌아온 것을 본 베트남 측의 제안이었다. 그리고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에서 호앙 쑤언 빈은 10m 사격에서 베트남 스포츠 역사상 첫 금메달을 따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태권도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역도에서 은메달을 딴 것이 전부였던 베트남에 첫 금메달을 안긴 이는 첫 한국인 감독이었다. 박 감독은 베트남 스포츠계에 “한국 사람이 맡으면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고 전했다. 박 감독은 “선수가 아프면 감독이 직접 찾아가 챙기는 등 한국 감독들에겐 당연한 것들이 여긴 아직 그렇지 않다”며 “한국 지도자들이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선수들의 경조사를 손수 챙긴다. 박 감독이 맺어준 선수 커플도 나왔고, 박 감독의 이름에서 ‘건’을 따 예명을 지은 선수 자녀도 둘이나 된다.
 
자신감과 애국심 불어넣는 한국인 감독들
한국인 감독들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자마자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바로 정신훈련이다. 감독들은 모두 부임 초기 ‘잠재력이 충분한데도 자신감이 없고 지레 포기하는 경향이 강했던 선수들’을 마주했다. 선수들의 시야를 넓히고 자신감을 불어넣는 것이 시급했다.
김길태 태권도 감독은 “체력보다도 가장 먼저 정신교육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베트남 선수들은 점수 차이가 조금만 벌어져도 졌다고 생각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김 감독은 “모든 스포츠가 마찬가지지만 정신(멘털)이 약하면 체력적으로도 약해지고, 그러다 부상을 입기도 한다”며 “태권도라는 종목의 특성도 그렇고, 베트남이 한국과 같은 유교문화권이라 태권도 5대 정신과 예절을 강조하며 훈련을 꾸려나갔다”고 말했다.
골프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박지운 골프 감독은 “대표팀 골프 선수들은 대부분 집안에 여유가 있는 편이라 정부 지원이 부족하면 다들 개인 경비로 대회를 다닌다. 경기를 위해 본인 경비로 해외 훈련을 다녀오곤 하니 책임감과 자긍심이 한참 부족했다”고 회고했다. 박 감독은 선수들에게 끊임없이 “베트남 국기를 달고 나가는 만큼 책임감을 갖고 나라를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공을 칠 것”을 주문했다.
한국인 감독들이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자 선수들의 시야도 넓어지고 있다. 박충건 감독과 김길태 감독은 “베트남 선수들이 과거에는 SEA게임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은 지레 포기하고 생각지도 않았으니 욕심도 안 냈다”고 말했다. 한국인 감독이 부임하고 한국팀과 함께 전지훈련을 하고, 점차 훈련 성과가 나자 베트남 선수들의 자신감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제 선수들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라는 큰 목표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박충건 감독 부임으로 첫 올림픽 금메달을 건 사격팀은 2021년 베트남 홈에서 열리는 SEA 게임에서 사격 강호의 자리를 유지하며 도쿄올림픽을 노린다. 김선빈 감독이 지휘하는 양궁 국가대표팀도 2021 도쿄올림픽 진출을 확정 지었다. 최근 한국 체조 역사의 산증인이자 신화인 조성동 감독을 맞이한 베트남 체조팀도 2021 도쿄 올림픽과 함께 2024 파리올림픽을 목표로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5월 박노완 주 베트남 대한민국 대사(아래 가운데)가 박항서 감독(아래 왼쪽에서 세 번째) 등 베트남 국가대표팀 한국 감독·코치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주 베트남 한국문화원

신뢰와 위로 나누는 한국 감독-베트남 선수
박충건 감독,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스포츠계에 아버지처럼 선수들을 챙기는 ‘파파 리더십’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그러나 박충건 감독은 “한국 지도자들에겐 당연한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두 감독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 감독들은 선수들을 수시로 직접 찾아 챙긴다. 아프거나 부상으로 누워 있는 선수를 찾아 살펴주는 감독의 모습에 현지 코치들은 물론 선수들도 처음엔 당황하고 놀랐다. 그렇게 한국 감독들은 베트남 선수들에게 감독이자 때로는 아버지, 형, 오빠이기도 하고 친구인 존재가 됐다. 선수들이 먼저 나서 김치를 찾기도 하고 감독이 내는 삼겹살 회식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독특한 공동체가 됐다.
때로는 감독들이 선수들에게서 큰 위안을 받기도 한다. 김길태 태권도 감독은 “지난 아시안게임 때 결과가 좋지 않았고 자만해서 실패했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울기도 했다. 그런데 가장 속상했을 선수들이 와서 위로해줘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며 “집으로도 찾아와 위로해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심지어 은퇴했던 선수들까지 감독인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줬다”고 말했다. 선수들에게 ‘가장 깊은 위로와 큰 힘’을 얻은 덕분에 그다음 해 SEA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베트남 태권도팀은 태국과 인도네시아를 제치고 새로운 태권도 강국으로의 도약을 노리고 있다.
베트남 스포츠 역사에 획을 그은 박충건 감독과 박항서 감독은 모두 “베트남의 꿈이 이뤄졌다고 하지만 우리 꿈도 이뤄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 감독들에게 베트남은 이제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한국 감독들 중 최연소인 박지운 골프 감독과 최고령 조성동 체조 감독에게도 베트남은 함께 꿈꾸는 곳이다. 골프 불모지인 베트남에서 대표팀 감독을 맡은 박지운 감독은 ‘제2의 박항서’를 꿈꾼다. 선수 생활을 마치고 해외로 나오는 것을 꿈꿨던 박 감독은 대표팀 감독을 맡아 선수들에게 욕심과 새로운 목표를 심어주며 자신도 “감독으로서 제2의 박항서가 되고 싶단 꿈을 꾸게 됐다”고 말했다.
박노완 주 베트남 대한민국 대사는 “스포츠 경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정과 땀방울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것도 드물다”고 말했다. 박 대사는 “박항서 감독의 눈부신 활약에 베트남 국민이 환호하고, 그 환호가 다시 한국에 대한 관심과 호감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스포츠가 지닌 이러한 특성을 잘 설명해준다”며 스포츠 공공외교(정부 간 협상 과정을 일컫는 전통적 의미의 외교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문화·예술·스포츠 등을 활용해 외국인에게 감동을 줘 긍정적 이미지를 만들어가는 외교 활동)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정리나 <아시아투데이> 하노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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