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 굵은 붓질, 광기를 예술로 승화

2020.06.29 최신호 보기

▶빈센트 반 고흐, ‘까마귀가 나는 밀밭’, 50.5×103.0cm, 캔버스에 유화, 1890,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소장│ⓒ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37세의 피 끓는 나이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빈센트 반 고흐는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불우한 천재화가다. 지금이야 고흐라는 이름이 전 세계적인 우량주(블루칩)으로 폭발적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리지 않아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아야만 했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지하에 있는 고흐가 이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할까?
2020년은 고흐가 사망한 지 130년 되는 해다. 고흐가 묻혀 있는 곳은 파리 북쪽 교외의 작은 시골 마을인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공동묘지. 그곳에 자신보다 네 살 아래의 동생 테오 반 고흐(1857~1891)와 나란히 잠들어 있다. 테오는 동생이라기보다 평생 고흐에게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후원자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을 받아서일까, 테오도 고흐가 세상을 떠난 지 6개월 후인 1891년 1월 만성신장염으로 고흐 곁으로 갔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고흐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정착했던 곳이다. 광기와 정신병을 앓았던 고흐는 1890년 5월 중순 생 레미의 요양병원을 떠나 이곳으로 와 7월 29일 숨을 거둘 때까지 머물렀다. 2개월 남짓 짧은 기간이었지만 고흐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생과 사를 넘나드는 예술혼을 불사르며 70여 점의 위대한 작품을 빚어냈다. 놀라운 투혼이자 엄청난 다작이다.
 
고흐가 죽기 전 그린 최후의 작품
흔히 고흐의 자살 직전 최후의 작품으로 일컬어지는 ‘까마귀가 나는 밀밭’도 이때 나온 그림이다.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밀밭, 그 위로 금방이라도 폭풍우를 몰고 올 듯 무시무시한 기세의 검푸른 하늘, 암청색 하늘 위에서부터 밀밭 가운데로 날아오는 일련의 까마귀 떼, 밀밭 중앙과 양옆으로 뻗어 있는 탁한 핏빛을 닮은 세 갈래의 길. 7월에 그린 것으로만 알려졌을 뿐, 이 작품이 고흐가 마지막으로 남긴 그림인지는 확인된 바 없다. 그럼에도 그림 전반에서 엄습해오는 암울하고 우울하고 칙칙하고 슬픈 기운, 불길한 징조인 까마귀 떼의 등장, 사망한 달에 그린 제작 시기로 인해 여전히 고흐의 자살을 잉태한 그림으로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고흐의 원래 꿈은 목사였다. 신학대학 입학 대신 전도사로 방향을 튼 고흐는 1878년 벨기에 남부의 탄광촌 보리나주에서 가난한 주민들을 상대로 선교 사업을 펼쳤으나 파격적이고 전위적인 전도 방식이 물의를 일으키는 바람에 이마저도 포기해야 했다.
1880년 어느 날, 고흐는 결심한다. 비록 목회 활동의 포부는 접게 됐지만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인간을 구원한다는 점에서 예술과 선교는 일맥상통한다는 깨달음 아래 화가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순전히 독학으로 창작의 발걸음을 내디딘 고흐는 네덜란드 에덴과 헤이그, 드렌터, 누넨에 이어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그림 공부에 전념하다 1886년 2월 동생 테오가 있는 파리로 날아가 그곳에서 1888년 2월까지 머문다. 이때 툴루즈 로트레크 등 기성 작가들과 교류하며 회화적 시각에 눈을 뜬 고흐는 돌연 프랑스 남부의 2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도 아를로 향한다. 고대 로마 유적으로 유명한 아를에서 고흐는 15개월 동안 머물렀는데 ‘해바라기’ 연작, ‘별이 빛나는 밤’ ‘카페 테라스’ 등 명작이 쏟아져 나온 곳이다.
 
“나의 슬픔과 고독을 표현한 것”
10년 동안 800여 점의 작품을 남긴 고흐가 자살을 감행할 무렵에 그린 유화 그림으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고흐의 작품으로는 보기 드물게 가로(103cm)가 세로(50.5cm)보다 두 배가량 길다. 아를 시대 후 생 레미 정신병원에서 1년 가까이 요양을 끝내고 생애 마지막 정착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본능적으로 내재된 고독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은유(메타포)의 방식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소수설이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삶에 대한 희망의 의지를 암시한 그림이라는 해석도 있다.
거친 바람에 몸 둘 바를 모르고 휘청거리는 황금빛 밀밭이 화면을 압도한다. 밀밭을 가득 채운 줄기들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위태하다. 밀밭 위로는 폭풍우를 몰고 우리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들 기세로 위압적인 검푸른 하늘이 버티고 있다. 그림 오른쪽 위 암청색 하늘 높이에서부터 밀밭 가운데로 날아오는 수십 마리 검은 까마귀 떼의 모습에서는 몹시 불길한 징조가 느껴진다. 모두가 죽음을 눈앞에 둔 공포감의 엄습이다. 하늘 위에 덩그러니 떠 있는 두 조각의 흰 구름도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그뿐만 아니다. 밀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지평선을 지향하는 길과 밀밭 양옆 가장자리로 뻗어나가다 힘에 부친 듯 끊어진 길. 길의 색깔이 마치 죽음을 예고하듯 응고되기 직전의 탁한 핏빛을 연상시킨다. 밀밭, 하늘, 길, 세 장면의 묘사에서 한결같이 거칠고 역동적이면서 굵은 붓질이 역력한데, 광기를 예술로 승화시킨 고흐의 천재성과 동시에 그의 불안한 심리 상태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길은 모두 화면 아래쪽 감춰진 부분에서 시작해 세 갈래로 나뉘었다. 왜 하필 세 갈래일까? 그것은 무산된 목회자의 꿈과 평생 마음의 빚을 진 동생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성공하지 못한 화가로서 절망감을 삶의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에둘러 보여주려 한 게 아닐까.
반면 가운데 길이 지평선, 즉 미래를 향해 이어지고 있다는 점, 평소 밀과 사람의 생명력을 동일시한 고흐가 밀밭을 그림의 주제로 애용한 점을 들어 삶에 대한 희망을 드러낸 작품이기도 하다는 주장이 있지만 울림이 작다.
고흐가 이 그림과 관련해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토로한 내용을 보면 더욱 그렇다. “폭풍우가 쏟아질 듯한 하늘 아래 밀밭을 그린 이 그림은 나의 슬픔과 고독을 표현한 것이야.” 많은 사람들이 애써 이 작품을 죽음과 연관 짓는 이유다.

 박인권_ 문화 칼럼니스트. PIK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전 <스포츠서울> 문화레저부 부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팀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와 사랑에 빠진 그림>(2001), <미술전시 홍보, 이렇게 한다>(2006), 미술 연구용역 보고서 <미술관 건립운영 매뉴얼>, <미술관 마케팅 백서>(이상 200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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