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연이 6월 21일 한국 여자오픈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뒤 우승컵에 입을 맞추고 있다.│연합
“믿어지지 않는 기부다.”
6월 21일 유소연(30)이 한국여자오픈 골프선수권대회 우승상금 2억 5000만 원 전액을 코로나19 성금으로 내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누리집이 평가한 글이다. LPGA 누리집은 이어 “그를 안다면 특별한 일은 아니다. 유소연이 공개된 것보다 많은 기부를 해왔다. 다른 사람들에게 아량 있는 사람으로 보이려고 하는 기부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유소연은 2020년 2월 호주에서 열린 LPGA 투어 ISPS 한다 빅 오픈 준우승 상금 전부를 산불 및 야생동물 구호 활동에 내놓은 바 있다. 2018년 LPGA 투어 마이어 클래식에서 우승했을 때도 ‘푸드뱅크’에 큰돈을 기부했다.
이런 그의 선행은 한국 프로골프계에 신선한 자극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 골프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기부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 선배 그룹에서 그런 문화를 만들지 못했다. 유소연은 영어도 가능하고, 외국의 다양한 자선 행사에 참여하는 적극성이 돋보이는 선수”라고 말했다.
평소 사회공헌 활동이 기부에 영향
코로나19 이후 영국 토트넘의 손흥민을 비롯해 벨기에 신트트라위던의 이승우, 메이저리그 텍사스의 추신수 등이 기부를 했고, 바르셀로나의 리오넬 메시 등 세계적 스타들도 동참했다. 하지만 우승상금 전액을 기부하는 것은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부분이다. 평소의 사회공헌 활동이 이번 기부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국내 후배 골퍼들을 생각한 배려일 수도 있다. 6월 현재 세계적으로 한국의 여자프로골프(KLPGA), 미국의 남자프로골프(PGA) 투어 정도가 무관중으로 열리는 주요 무대다. 유소연도 최근 4개월간 공백기를 거쳐 한국여자오픈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LPGA 선수들도 국내로 복귀해 여자 골프대회에 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해외파 선수들과 국내 선수들의 입장은 조금 갈린다. 어차피 해외파 선수들은 국내 대회가 아니더라도 돌아갈 곳이 있다. 상금 규모도 더 크다. 하지만 국내파 선수들은 코로나19 사태로 해외파가 돌아와 과밀한 상태가 되며 기존 파이에서 더 적은 몫만 갖게 된다. 불만이 생길 수 있다. 이제는 선배급에 속하는 유소연이 그런 점들을 고려해 통 크게 전액 기부를 결심했을 수도 있다.
골프 선수가 대회 우승상금 전액을 기부할 수 있는 것은 스포츠 시장에서 골프가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과도 관련이 있다. 골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어야 즐길 수 있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대중(퍼블릭) 골프장이 발달해 낮은 입장료로 이용할 수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시간·경제적 여력은 필수다.
이런 골프팬을 겨냥한 금융, 자동차, 정보기술(IT) 등 기업들이 골프대회를 후원하는 것은 자본의 속성에서는 당연하다. 미국남자프로골프의 경우 정규 대회 이후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3개 대회를 치르는데, 마지막 플레이오프에서는 우승상금 1500만 달러를 놓고 30명만이 겨룬다. 가장 잘나가는 스포츠 종목인 셈이다.
실제 홍콩상하이은행(HSBC)이 낸 ‘2020 골프비전’ 보고서를 보면 “공식 통계는 없지만 전 세계 8000만 명의 사람들이 약 4만 개의 코스를 찾는다. 여성 골퍼가 늘고 있으며, 노년층과 여유 계층으로 확대할 수 있는 스포츠”라고 소개하고 있다.
5월 미국에서 열린 타이거 우즈와 필 미컬슨, 페이턴 매닝, 톰 브래디 등 4인 출전의 코로나19 기금 마련 이벤트가 하루 새 총 2000만 달러를 모았는데, 다른 종목에서는 이런 규모의 성금을 모으기 힘들다.
최경주, 신지애, 김인경 등 기부 릴레이
골프 단체나 선수 입장에서는 부의 분배 차원에서도 사회적 환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대중 이미지 개선은 시장을 더 키우는 요소다. 이런 까닭에 미국프로골프 투어는 1938년부터 대회 때마다 자선기금을 모금하고 있다. 2020년 1월에는 미국프로골프 투어의 2019년 말 자선기부금 누적 총액이 30억 달러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1938년 첫 모금 뒤 10억 달러(2005년) 돌파까지 67년이 걸렸지만, 20억 달러(2014년)와 30억 달러(2019년) 고지는 가파른 속도로 도달했다.
한국에서도 최경주가 2008년 재단법인을 만들어 받은 것을 돌려주기 시작한 것은 새로운 모범이었다. 2010년에는 신지애가 한국여자골프 챔피언십 우승상금 전액(1억 4000만 원)을, 같은 해 김인경이 LPGA 투어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우승상금 전액(22만 달러)을 자선단체에 기부한 것은 기부 문화를 만드는 촉진제가 됐다. 이후 박희영, 김혜림 등 여러 선수가 상금을 기부하거나 1억 원 이상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했다.
1960년대 <동아일보>의 ‘골프족 골프장’(1968년 2월 22일치)이라는 사설에는 “조상의 산소 언저리를 파헤쳐 골프장을 만들어놓고 빙빙 돌아가며 광태를 부리는 후손이 있다면 어떻게 볼 것이냐”며 서울 효창공원에 골프장 허가를 내준 서울시를 꾸짖고 있다. 또 “골프와 골프족이 대중의 증오 대상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우리나라에 골프가 허가될 때가 있다면 남북통일이 완수되고 온 국민의 소득이 올라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단계에 비로소 가능하다”라고 썼다. 지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한국, 미국, 일본, 중국, 캐나다 오픈 대회를 제패한 유소연의 다음 목표는 브리티시 오픈 우승이다. 씩씩하고 밝은 유소연이 브리티시 오픈에서도 정상에 오르면 좋겠다.
김창금_ <한겨레>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