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5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김화동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석좌교수(오른쪽)와 박노욱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재정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대담] 김화동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석좌교수-박노욱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최근 정부가 3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한 뒤 국가채무비율과 재정건전성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코로나19라는 경제 전시상황에서극심한 경기침체를 극복하고 미래의 성장동력을 확충하기 위한 재정의 역할은 무엇일까? <공감>은 김화동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석좌교수와 박노욱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대담을 열었다. 6월 5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1시간 30분 정도진행된 대담에서 두 사람은 한국뿐 아니라 국제 재정정책의 흐름을 짚은 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의 과제까지 제시했다.
쓸 만한 카드 부족해 재정이 나설 상황
코로나19로 경제활동이 침체한 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 전 세계가 엄청난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경제위기에서 정부가 쓸 수 있는 정책은 금융정책과 재정정책이 있는데, 금융은 할 수 있는 카드를 다 쓴 상태다. 얼마 전 한국은행이 정책금리를 0.5%로 내렸는데, 이건 0%나 마찬가지라 더 내릴 수도 없다. 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은 시중에 돈이 없어서 어렵다고 하는데, 사실 돈 자체는 지금 많다. 여유 자금 1200조 원이 갈 곳 없다고 하고, 한국은행이 돈을 풀고 있고, 정부가 또 돈을 풀고 있다. 즉 금융에서는 쓸 만한 카드가 많지 않기 때문에 재정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가 지나가면 근본적 질문이 많이 나올 것 같다. 코로나19 직전에 ‘정부는 경기 대응으로 무슨 정책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이미 나오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다 쏟아붓는 경제 전시상황이 됐는데, 이게 지나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다들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이 달러를 저렇게 막 푸는데 기축통화라는 시스템이 유지 가능할까? 근본적인 틀까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당면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당연히 우리도 모든 카드를 쓸 수밖에 없는데, 혁신성장이라는 다음 과제가 또 있지 않나? 지금 과제는 단기적으로 돈을 풀어서 막는다 해도 만만치 않은 다음 과제가, 어느 나라도 답이 없는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금융이 큰 역할을 못 하니까 모든 나라가 재정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재정이 그 전에도 역할을 많이 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2008년 국제 금융위기 때도 재정이 튼튼했고 여력이 있었고 그것을 정부가 아낌없이 쏟아부었기 때문에 위기를 극복했다. 이번에도 거의 비슷하다. 국민소득을 국내총생산(GDP)이라고 할 때 보통 가계, 기업, 수출, 정부 네 가지로 GDP가 형성된다. 지금 가계소비는 내려가고, 기업은 투자를 못 하고, 수출도 줄고 있다. 남은 카드는 정부밖에 없다. 나머지 셋을 대신해 정부가 소비하거나 투자하는 게 결국 재정이다. 현재 어느 나라도 여윳돈은 없으니 우리 1~3차 추경처럼 기존 예산 가운데 덜 급한 것을 절감하고, 그걸로도 안 되는 부분은 국채를 새로 발행하는 것이다.
말씀한 대로 최후의 보루가 재정이기 때문에 재정당국 입장에서는 늘 어느 정도의 공간을 확보하려 한다. 지금까지 역사를 보면, 1980년대 민주화 이후 정부의 역할이 커지면서 재정지출은 늘어나는데 충원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국채를 확 발행하는 단계에 왔기 때문에 안 가본 길을 가야 하는 재정당국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을 것이다. 국채 시장을 그렇게 활용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시장 자체가 잘 발달해 있지 않다. 기축통화 국가들은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중앙은행이 사버리고 화폐를 찍어내도 다른 나라들이 사지만, 우리나라는 그건 아니니까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두려움이 있다.
▶김화동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석좌교수
위급할 때 재정정책은 타이밍이 중요
경제활동이 많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정책은 타이밍, 즉 좋은 시기다. 정부가 이번에 1~3차 추경으로 빨리 대응한 것은 굉장히 잘했다. 이 시기를 놓쳐서 효과가 반감하는 것보다 조금 논란은 있지만 빨리 대응한 것은 잘했다. 일본은 지금도 큰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계속 늦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가? 반면 우리는 긴급재난지원금부터 꼭 필요할 때 조치를 빨리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일본은 제도 개혁 등 모든 게 느리고 엄청 보수적이다. 반면 우리는 세계 추세와 새로운 제도를 빨리 본따르기(벤치마킹) 한다. 이번에도 선도해서 국제적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정책 수단이 들어갔다고 본다. 특히 일자리를 유지하는 게 급선무였다. 돈을 풀었을 때 가장 큰 효과가 고용유지다. 정부 지출 증가로 GDP가 증가하는 비율을 보여주는 ‘재정지출 승수’ 연구 자료를 보면, 기업의 고용유지 승수 효과가 0.9 정도로 나온다. 소득 지원, 고용유지, 자영업자 지원, 또 우리는 수출 국가이기 때문에 여파가 클 수 있는 수출 연계 중소기업 대책까지 시기적으로 잘 대응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국민은 긴급재난지원금을 받으면서 정부가 이런 대책을 하고, 나라와 국민 생활을 지키기 위해 적절히 대응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자금 조달이 어려운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 보조금이나 융자를 쉽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정부가 그동안 주머니를 채워뒀고 이번에 많은 빚을 내기 때문이다. 재정당국이 굉장히 잘해온 게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0%와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 3%를 유지한 것이다. 이 두 가지 버팀목으로 재정을 지켜왔다. 이번에 둘 다 무너지게 되면서 걱정하는 언론이나 국민이 많고 또 걱정인 것도 맞지만, 지금은 그것만 고집할 수 없는 경제 전시상황이다. 당장 살려야 할 부분도 중요하니까 이렇게 된 것이고, 경제가 다시 안정기로 들어갔을 때 우리가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중요하다.
코로나19가 오면서 재정 운용 틀이 확 바뀌었다. 과거에는 재정당국의 파워가 있었고 아무도 이에 도전하지 않았다. 이제는 국가채무비율이 왜 40%인지 재정당국이 설명해야 한다. 재정 운용 기조도 틀(프레임워크)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 온 것 같다.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이미 있지 않나? 보편적 복지다. 누구나 기본소득을 말하는데, 복지가 보편적 국민의 권리가 되려면 재정 운용에 대한 그림이 나와야 한다. 우리는 중위소득의 11배가 넘어야 소득세 최고세율이 되는데, 스웨덴은 중위소득의 1.4배만 되면 최고세율이 작동한다. 최고세율도 우리는 38%인데 스웨덴은 45%다. 국민 절반은 소득의 절반을 세금으로 낸다는 의미다. 거기에 부가가치세는 우리가 10%인데 스웨덴은 25%다.
복지에서 중요한 것은 공동체 의식이다. 정부에 대한 신뢰, 사회 구성원에 대한 신뢰가 기저에 있어야 한다. 복지는 빚을 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유지할 수도 없다. 누구나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사회 구성원으로서 이 정도는 부담한다는 틀로 바뀌어야 한다. 코로나19로 국민이 정부의 혜택을 받고 ‘어려울 때 정부가 정말 도움이 되네’ ‘재정정책이 도움이 된다’ 느낀 건 상당히 좋았던 것 같다. 이제 ‘우리가 구성원으로서 무엇을 부담해야 하느냐’는 다음 논의로 가야 한다. 앞으로 유지가 불가능한데, 정치권은 말 못 하고 행정부처는 앞장설 수 없으니 아무도 얘기하지 않고, 재정은 당장 문제없다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국채 이자율 1%대로 낮아 부담 덜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아주 낮은 건 사실이지만 일본 250%, 이탈리아 130% 등 몇몇 나라 때문에 OECD 평균이 높은 것이다. 주요 7개국(G7)인 유럽의 4개 나라는 80~90% 정도 되고, 우리보다 낮은 나라도 있다. 두 번째로 주의할 점은 우리가 국가채무비율 40%를 고집한 이유는 고령화가 되면 재정지출이 급증할 구조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그렇게 늘어난 제1 원인도 고령화에 따른 지출이다. 고령화에다 엄청난 투자가 필요할지 모르는 남북관계까지 대비하기 위해 재정당국이 계속 억제해온 것이다. 재정의 역할을 기대하는 쪽에서는 ‘재정건전성 지상주의’에만 목을 매서는 안 되지 않느냐, 써야 할 때는 쓰는 게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IMF나 OECD 같은 국제기구에서도 한국 재정이 건전하고 여력이 있으니 좀 더 지출하라고 조언한다. 두 의견이 대립·절충하면서 지금까지 균형을 맞춰왔다. 사실 정부도 무조건 40%라고 한 건 아니고, 처음엔 30% 주장하다 30% 후반 하다가 지금 40%로 온 것이다.
긍정적인 점은 국채 이자율이 1%대로 낮다는 점이다. 2019년 말 기준 우리나라 국채는 740조 원으로 이자가 19조 원 정도 된다. 이자율이 당분간 낮을 것 같으니 큰 재정 위험은 없다는 게 또 하나의 주장이다. 이런 주장들이 견제, 균형을 찾으면서 3차 추경에서 국가채무비율 43.5%가 나왔다. 10조 원 넘게 절감했다고 하니 기획재정부가 45%라는 숫자를 안 넘기려고 엄청나게 신경을 쓴 것이다. 이게 45% 넘는 건 순식간일 수 있다. 4차 추경이 없다는 보장이 없고, 지금 절감한 예산도 집행을 늦춘 부분이기 때문에 2021년도 본예산 짤 때 복구해야 한다. 그럼 2021년 예산, 그 후에도 재정지출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제기구의 조언을 언급했는데, 우리가 재정 여력이 있다는 근거를 보면 조세부담률이 낮다는 게 깔려 있다. 우리가 조세부담률을 OECD 평균 수준까지 올린다는 가정이 있는 거지, 그냥 이 구조로 간다는 전제는 아니다.
▶박노욱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세수원 발굴 등 현실적 대안 제시해야
세율을 늘리지 않고 새로운 세수원(세금이 부과되는 원천이 되는 소득이나 재산)을 발굴하지 않는 한 세수와 지출의 차이는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다. 국민도 두 가지 요구가 있다고 본다. 한쪽은 정부가 빨리 대응해 효과적 대책을 수립하길 원한다. 반면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경험하면서 정부가 마지막 지갑이자 의지처라는 생각에 재정건전성을 지켜주길 바라는 쪽도 있다. 두 가지를 동시에 바라는 목소리도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만 받아들일 수는 없다. 무디스, 피치 등 국제신용평가사에서 일본보다 한국을 좋게 평가하는 큰 이유가 재정건전성이다. 여기서 갈려 우리 등급이 한 단계 높다. 지금은 경제 전시상황이니 일단 전쟁에서 이겨놓고 전후 복구하는 것이지만, 미뤄두기만 하면 너무 늦을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현실적 대안을 제안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성장이지만, 이미 병목현상이 온 상태에서 혁신성장이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계속 성장을 위한 투자를 했고, 탈규제며 규제개혁을 얘기했지만 잘 안 되는 이유가 공고화된 시스템 때문이다. 원격의료, 온라인 교육 등 비대면 기술은 의사, 교사 등 이해관계자가 반대한다. 논란이 있긴 있지만 온라인으로 교육하고 학교는 맞춤 지도(코칭)만 하면 교육도 비용을 엄청 낮출 수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학교 현장에 적용하고 있는데 우리는 절대 안 됐다. 코로나19로 그런 실험이 우리나라도 가능해지면 좋겠다. 성장은 꼭 돈의 문제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에 대한 근본 질문이 코로나19를 계기로 나와야 한다.
우선 재정당국의 자세가 굉장히 중요하다. 지금까지 국가채무비율 40%와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 3%를 지키려고 했기 때문에 지금 여력이 생겼다. ‘재유행(세컨드 웨이브)’ 등 모든 것을 대비할 때 재정당국은 약간은 강경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앞으로 살림살이를 어떻게 꾸려나갈 거냐는 논의를 재정당국이 먼저 꺼내는 수밖에 없다. 이걸 여야에 맡겨놓으면 충분히 논의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이렇게 왔는데 앞으로 이런 수준에서 장기적으로 관리하겠습니다’라고 국민한테 설명할 의무도 재정당국에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G7 국가 대부분 재정건전성이 엄청 나빠졌지만, 다시 안정된 나라는 독일밖에 없다. 한번 나빠진 재정건전성을 되돌리기가 그만큼 어렵다. 그러니 재정당국은 엄격한 입장을 가지고 안 나빠지도록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둘째,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복구를 위해 일본이 발행한 부흥채에 주목해야 한다. 일반 국채가 아니라 지진 부흥을 위한 특별 국채를 별도 법으로 만들어 소득세에 2.1%포인트, 주민세에 1000엔을 가산했다. 이 빚은 특별한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재원까지 한 묶음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국채가 통으로 그냥 국채다. 아무런 꼬리가 없다. 같은 국채라도 구분해서 통상적인 세수로 감당하기보다 별도의 대책을 세우는 게 필요하다. 그러면 국민도 ‘빚이 이만큼 늘었지만 이게 다 우리와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고심한 거고, 앞으로 상환하는 데 우리도 분담할 필요가 있겠구나’라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독립성 있는 재정기구 만들어야
국제 금융위기 때 위기를 겪은 서구 국가들은 이후 재정 틀이 많이 바뀌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재정에 대한 위험관리다. 우리는 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변화 없이 지나갔는데 코로나19가 끝나면 우리도 한번 검토해야 할 것 같다. 첫째, 재정 위험을 어떻게 투명하게 분석하고 관리할 것이냐. 국채 관련 이슈는 정부뿐 아니라 민간기업, 가계부채와 다 연결되어 있다. 지금까지 재정당국이 잘 관리했다면 이제는 정보를 공개하고 제대로 된 분석을 해서 국민과 소통하는 체제로 가야 한다. 둘째, 투명성이 가능하려면 재정정책의 독립성이 필요하다. 현재 통화정책은 독립성이 있지만 재정정책은 없다. 재정정책은 정치적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 금융위기 이후 재정정책도 객관적인 정보와 독립성 있는 재정기구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국제적으로 많이 확산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국가채무비율이 안정된 나라가 G7 중 독일이 유일하다고 했는데 작은 나라 중에는 네덜란드, 스웨덴이 있다. 재미있는 게 두 나라 모두 독립적 재정기구가 있다. 우리도 재정 위험에 대한 분석을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는 독립적인 재정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국민이 재정의 중요성과 혜택을 느끼게 되었는데, 앞으로 지속 가능하도록 재정 운용의 틀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기를 희망한다.
결국 관건은 경제성장이다. GDP가 성장하면 채무를 감당할 우리 상환능력도 늘어나고 재정건전성 문제도 자연스럽게 좋아질 것이다. ‘한국판 뉴딜’도 경제성장을 하기 위한 여러 고심의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이 시대의 성장 방향을 잡고 우리 능력을 열심히 키워나가는 것이 모든 것의 근본 처방이다. 독일의 국가채무비율이 좋아진 건 경제가 잘 성장하고 세입이 자연스럽게 늘어나면서 지출과 간극이 좁아졌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이 저렇게 된 결정적 이유는 세입이 안 늘어난 것이다. 늘어난 지출을 모두 국채로 감당하다 보니 불명예스럽게도 세계 국가채무비율 1위가 됐다. 그동안 우리는 상당히 잘해왔다. 여기서 다시 본궤도로 가서 3% 이상 경제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면 재정건전성 문제도 많이 완화될 것이다.
정리 원낙연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