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6월 17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전직 통일부 장관 및 원로들과 오찬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6·15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평화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며 “끊임없는 대화로 남북 간의 신뢰를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6월 15일 경기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열린 20주년 기념식 영상 축사에서 “역사적인 선언을 기념하는 기쁜 자리에서 선언의 위대한 성과를 되짚어보고 평화의 한반도를 향해 우리가 얼마나 전진했는지 말씀드려야 하는데 최근의 상황이 그렇지 못해 안타깝고 송구스럽다”면서 최근 경색된 남북 관계에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이어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기 위해 항상 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스럽게 임했지만, 충분히 다하지 못했다는 심정”이라며 “기대만큼 북미, 남북 관계의 진전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 나 또한 아쉬움이 매우 크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영상 축사를 촬영하며 2018년 4·27남북정상회담 때 오른 연대에 올라 축사를 읽었다. 넥타이는 20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착용했던 것을 맸다.
무엇보다 남북 관계의 신뢰 회복을 위해 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중요한 것은 남북 간의 신뢰”라며 “끊임없는 대화로 신뢰를 키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대북 전단 살포 자제를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단 살포 등 모든 적대 행위를 중단하기로 합의했다”며 “국민께서 이 합의가 지켜지도록 마음을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북한이 일부 탈북자 단체 등의 대북 전단과 우리 정부를 비난하고 소통 창구를 닫으면서 국민께서 혹여 남북 간 대결 국면으로 되돌아갈까 걱정하고 있다”며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기 위해 항상 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럽게 임했지만, 충분히 다하지 못했다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강경 자세를 이어가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는 대화를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에도 대화의 창을 닫지 말 것을 요청한다”며 “장벽이 있더라도 대화로 지혜를 모아 함께 뛰어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평화가 경제와 일자리며 우리의 생명”이라면서 “평화는 누가 대신 가져다주지 않는다.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 관계 멈춰서는 안 돼… 평화 약속 돌릴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도 남북 관계 개선 의지를 강하게 나타냈다. 문 대통령은 “더는 여건이 좋아지기만을 기다릴 수 없는 시간까지 왔다”며 남과 북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협력사업을 찾아 나서자고 북한에 제안했다. 이어 “나와 김정은 위원장이 8000만 겨레 앞에서 했던 한반도 평화의 약속을 뒤로 돌릴 수는 없다”며 “한반도 운명의 주인답게 남과 북이 스스로 결정하고 추진할 수 있는 사업을 적극적으로 찾고 실천해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이 함께 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구불구불 흐르더라도 끝내 바다로 향하는 강물처럼 남과 북은 낙관적 신념을 가지고 민족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길로 더디더라도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4·27판문점선언과 9·19평양공동선언은 남과 북 모두가 충실히 이행해야 하는 엄숙한 약속”이라며 “어떤 정세 변화에도 흔들려서는 안 될 확고한 원칙”이라고 분명히 했다.
북한에 대해서도 책임있는 태도를 요구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도 소통을 단절하고 긴장을 조성하며 과거의 대결 시대로 되돌리려 해서는 안 된다”며 “남과 북이 직면한 불편하고 어려운 문제들은 소통과 협력으로 풀어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한반도 정세를 획기적으로 전환하고자 했던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과 노력을 잘 알고 있다”며 “기대만큼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의 진전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 나 또한 아쉬움이 매우 크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7·4남북공동성명부터 9·19평양공동선언까지 역대 정부의 남북 합의를 언급하며 “정권과 지도자가 바뀌어도 존중되고 지켜져야 하는 남북 공동의 자산”이라며 “한반도 문제와 남북문제 해결의 열쇠도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원로 만나 “국민들 굉장히 실망했을까 걱정”
한편 문 대통령은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이튿날인 6월 17일 청와대로 남북관계 원로들을 초청해 점심을 함께하며 조언을 구했다. 윤재관 청와대 부대변인은 이날 “문 대통령이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 고유환 통일연구원장, 임동원·박재규·정세현·이종석 등 전직 통일부 장관 그리고 박지원 전 민생당 의원과 오찬을 함께하며 최근 남북관계 상황과 관련해 고견을 청취했다”고 말했다. 오찬에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도 함께했다.
한 참석자는 “문 대통령이 올해 신년사와 6·15남북공동성명 20주년 기념사에서 여러 차례 강조한 만큼 이제는 주변 참모, 장관들이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고 윤 부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최근 상황에 우려와 안타까움을 나타내면서도 대화와 인내를 통한 해결 의지를 나타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문 대통령이 어렵지만 대화로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고 전했으며, 다른 참석자는 “문 대통령이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나 대남 비난전에 의연했다”며 “국민이 이런 소식을 접하고 굉장히 실망하셨을 것이라고 걱정했다”고 말했다.
이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