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의 기술

2020.06.22 최신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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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밀당’의 연속이다. 내 것을 최소한으로 주고 남의 것을 최대한 가지려 하는 밀고 당기기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벌어진다. 밀당을 잘하는 사람은 삶이 풍부해진다. 반면 협상을 못하는 사람은 얼굴에 짜증을 달고 산다. 하루하루 경제생활에서도 밀당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재래시장에서 반찬값을 흥정한다든지 노동자가 사용자와 연봉 협상을 한다든지, 부부 사이에 자산관리를 누가 할지 등 밀당의 범위는 헤아릴 수 없이 넓고 깊다.
밀당에서 어떻게 멋지게 성공할 수 있을까. 고려 성종 때 거란족 80만 대군을 외교 담판으로 물리치고 강동6주까지 덤으로 받은 서희 장군에게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때 상황을 정리해보자.

 ‘밀당’에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
“80만 군사가 도착했다. 강변까지 나와 항복하지 않으면 섬멸할 것이다.”
993년, 고려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험했다. 요(遼)의 소손녕이 대군을 몰고 와 항복을 강요했다. 조정은 ‘서경(평양) 이북을 거란에게 주고 화의를 청하자는 할지(割地)론’으로 기울었다. 서희가 반대하고 나섰다.
“국토를 떼어 적에게 준다는 것은 만세의 치욕입니다. 지금 서경 이북을 떼어주면 조만간 삼각산(북한산) 이북을 또 강요할 것입니다. 적과 일전을 겨룬 뒤 화친을 논의해도 늦지 않습니다….”
고려 조정의 답이 늦어지자 소손녕은 청천강 남쪽의 안융진을 공격했다. 대도수(大道秀)와 유방(庾方)이 싸워 이겼다. 거란 군대가 산악지대 전투에 곤란을 겪었다. 소손녕은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항복을 독촉했다. 서희가 사신으로 자원해 적진으로 갔다.
“나는 대국의 귀인이다. 그대는 뜰에서 나에게 절을 해야 한다.”
“양국 대신이 대면하는데 절은 말도 안 된다.”
서희는 화를 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협상이 깨지더라도 절은 절대 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급한 소손녕이 양보했다. 대등하게 마주 앉았다.
“당신 나라는 옛 신라 땅에서 건국했다. 고구려 옛 땅은 우리나라에 소속됐는데 왜 침범했는가?”
“우리나라는 고구려의 후예다. 그래서 국호를 고려라 하고 평양을 국도로 정했다.”
“고려는 요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어찌 바다 건너에 있는 송을 섬기는가?”
“고려가 요와 국교를 맺지 못하는 것은 중간을 가로막고 있는 여진 때문이다. 여진을 내쫓아 길을 통하면 어찌 국교가 통하지 않겠는가?”
서희는 소손녕과 치열한 기싸움과 말싸움에서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고려는 요를 섬긴다는 명분을 주었다. 받은 것은 요 군대 철수와 압록강 동쪽 280여 리의 영토 확보다. 병법에서 최고로 평가하는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부전이승(不戰而勝)’을 거머쥐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소손녕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했다. 그는 압도적 군사 우위에도 봉산군을 함락한 뒤 항복을 요구했다. 군사적으로 밀어붙였으면 고려는 상당한 피해가 있었을 것이다. 서희는 요가 송과 격전을 앞두고 후방의 고려를 자기편으로 해두기 위해 침입했음을 간파했다. 외교적 해결의 틈을 봤다.
둘째, 고려 조정의 의견 통일과 국지전에서 고려의 승리였다. 초기에 할지론이 대세였지만 서희 등의 ‘결전 후 협상론’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유방의 승리로 소손녕도 더 이상의 군사적 피해를 원하지 않았다.
셋째, 당당한 협상 자세였다. 서희는 자신에게 절하라는 소손녕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고구려 후계 논쟁과 여진족 문제를 명쾌하게 설득함으로써 강동6주를 개척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고 이긴다’는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를 정확하게 보여주었다. 20세기 외교의 귀재라고 평가받는 헨리 키신저를 능가하는 쾌거였다.
서희 장군의 성공은 일상 경제생활에서도 멋지게 응용할 수 있다.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명분을 주면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실리를 챙기는 협상의 기술을 배울 수 있다. 협상에서 ‘너 죽고 나 살기’는 없다. 내가 바라는 것을 얻으려면 상대방이 원하는 내 것을 주어야 한다. 주고받기의 줄다리기에서 적게 주고 많은 것을 받는 것이 협상의 기술이다.

유능한 협상가는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아
서희처럼 유능한 협상가는 하루아침에 키워지지 않는다. 과거의 성공한 협상과 실패한 협상을 넓고 깊게 연구하면서 협상력을 높이는 훈련을 계속 해야 한다. 멋진 연애 상대를 만나러 가면서 상대방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알지 못하면 그 만남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국가 간에 무역협상을 할 때도 그 나라 언어, 문화 등 협상 건 이외의 것을 아는 게 중요하다.
서희의 눈부신 승리가 있은 지 643년 뒤에 인조와 그 신하들은 남한산성에 포위된 채 척화와 주화를 놓고 피 터지게 싸웠다. 나도 모르고 적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대착오적인 숭명배금(명을 숭배하고 금(청)을 배척함)의 명분론에 빠졌다. 결국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고개를 숙이는 의식) 의 치욕을 입었다. 명분과 실리를 함께 잃었다.
서희와 인조의 승패는 말로 갈렸다. 서희는 말 한마디로 강동 6주를 얻었다. 하지만 실력을 기르지 않고 숭명배금만 크게 외친 인조는 백성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말은 행동이 뒷받침돼야 협상에서 힘을 발휘한다.

 홍찬선_ <한국경제> <동아일보> <머니투데이>에서 28년간 기자를 지냈다. 저서로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임시정부 100년 시대 조국의 기생충은 누구인가>, 역서에 <비즈니스 경제학> <철학이 있는 부자> <부자가 되려면 부자에게 점심을 사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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