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고서야 삶은 멈추지 않는다. 삶은 계속된다. 가끔씩 죽지 않고 삶을 멈추고 싶을 때가 있다. 잠시 혹은 오래. 남들에겐 잠깐일지 몰라도 내게는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만큼. 딱 그만큼.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조금, 아니 많이 지쳤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닌 마음이. 겨울잠을 자듯 한 계절 푹 자고 일어나면 좋겠다고 매일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2월부터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고 말한다. 갑작스레 닥친 코로나19에 일상처럼 누리던 것들이 불가능해진 탓이다. 정말 그렇다. 2월 중순에 나는 취재차 일본의 교탄고 지방에 있었고 3월에는 기타큐슈 쪽으로 취재를 갈 예정이었다. 3월은 물론이고 어느덧 6월을 지나고 있지만 언제 다시 취재를 재개할 수 있을지 묘연한 상태다. 2020년 안엔 갈 수 있을까? 2021년에는? 누구도 정확히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몇 달 사이 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그만큼 많은 상인이 폐업했다. 곳곳에 문을 닫은 상점들이 눈에 띈다. 불 꺼진 간판과 텅 빈 쇼윈도 너머로 이전 모습을 짐작해본다. 아이들은 오랜 기다림 끝에 등교했다가 다시 기약 없이 집으로 돌아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어느 사이 여름의 문턱에 와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봄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다고도 말한다.
그러니까 죽지 않고 삶을 멈추고 싶은 건 나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인 것이다. 나의 바깥이 활기차게 돌아가는 동안에 안전함을 느끼면서 충분히 안심한 가운데 가만히 쉬었으면 하는 것이다. 폐허인 바깥에 덩그러니 누워 있는 자신을 상상해보면 금방 동감할 수 있을까?
바깥이 멈춘다고 내면의 일들도 더불어 멈추는 게 아니라는 것을 요즘처럼 실감한 적도 없다. 사람의 내면은 이러나저러나 쉴 줄 모른다는 것을 이제는 잠자코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어제도 오늘도 하는 중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이 이젠 정말 쉬어야 한다고, 안 그러면 많은 것이 잘못될 거라고 반드시 마음을 쉬게 해주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알려오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마음을 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코로나19 이후로 뉴스를 보면 항상 어디에 가지 말라고 하고 무엇을 조심하라고도 한다. 얼마 전 뉴질랜드에서 마지막 코로나19 확진자가 완치되며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했다는 뉴스를 보고 꿈만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지. 가지 말라는 곳에 가지 않고 조심하라는 것은 조심해야지. 나는 한 번 더 생각한다. 그날그날의 뉴스가, 신문이, 재난 문자가, 우리가 무얼 하고 무얼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알려준다.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나쁜지 그리고 어떤 것은 바꿔야 할지 생각하게 해준다. 그런데 마음은? 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마음은 어떻게 쉬지? 그러면 한결같이 갸웃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 생각해보니 모를 일이네.
한숨 푹 자고 나면 마음도 그만큼 쉬는 걸까?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여행을 가면? 맛있는 것을 먹으면? 좋은 물건을 사면? 원하는 만큼 돈을 벌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면? 재밌는 영화 한 편을 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져서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오래 노력해온 일을 마침내 성취하면? 그때 마음은 쉬는 걸까 아닐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모두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평안을 얻는 건 아니라는 것을. 그렇다면 마음은 어떻게 쉬지? 내 마음은 언제 쉬었지? 쉬어본 적은 있는 걸까? 설마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 어쩌면 내 마음은 쉬어본 적이 없을지 모른다.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모르는 걸 보면 말이다.
유진목_ 시인. 2016년 시집 <연애의 책>을 낸 이후 시집 <식물원>, 산문집 <교실의 시> <책이 모인 모서리 여섯 책방 이야기> 등을 썼다. 부산 영도에서 서점 ‘손목서가’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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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