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씨 추모 행진이 열린 6월 6일 서울 명동에서 참가자들이 인종차별 반대를 상징하는 ‘한쪽 무릎 꿇기’를 하고 있다.│한겨레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로 촉발된 항의 시위가 미국뿐 아니라 세계로 번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6월 6일 서울 명동에서 지지 시위가 있었습니다. 캐나다 국회 앞에서 열린 시위에선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인종차별 반대를 상징하는 ‘한쪽 무릎 꿇기’를 직접 하며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해시태그 #BlackLivesMatter(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로부터 운동의 이름이 나올 정도로 인터넷을 통한 세계인의 지지 역시 뜨겁습니다.
어느 때보다 기술의 힘이 강력해진 시대에 공권력에 대한 시민 불복종을 표현하는 것은 특별한 위험을 동반합니다. 미국 정부는 이 분야에서 독보적이라 할 정도의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계약직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고발했듯 미국 정부는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각종 기술 기업의 협조나 묵인 아래 미국인뿐 아니라 전 세계인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들을 염탐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 바 있습니다.
모두의 일거수일투족 파악하는 시대
이런 일이 가능한 배경에는 현대의 바뀐 ‘기록 환경’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거의 모든 곳이 동일한 조건입니다. 지구상에 벌어지는 모든 일은 우리 주머니 속의 휴대전화를 꺼내 드는 것만으로 대부분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영상을 찍거나 음성을 녹음하면 그만입니다. 주머니 속에 있어도 이 물건은 늘 정보를 집적하고 있습니다. 소유자의 위치 정보가 대표적이고 음성 비서가 소리를 기억하기도 합니다. 이를 누리소통망(SNS)이나 메신저로 보내고, 메시지가 전파되기 시작하면 그 정보를 차단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 돼버립니다. 누군가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는 것은 과거에 비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감시는 공권력을 향하기도 합니다. 조지 플로이드 시위 촉발 역시 그의 목을 내리누르는 경찰의 폭력을 기록한 휴대전화 영상 등의 몫이 컸죠. 부당한 행위를 기록하고 다른 시민과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 역시 어느 때보다 쉬워진 시대이기도 합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최근 미스터 울(Mr. Uhl)이란 사람이 트위터에 올린 인종차별 반대 참가 영상을 사람들이 무려 4500만 번이나 봤을 정도라고 합니다.
부당한 공권력 집행에 대해 떳떳하게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도 어떻게 자신의 사생활(프라이버시)을 지킬지는 현재 미국 시민에게 큰 관심사인 듯합니다. 기술 매체 <와이어드(Wired)>는 ‘감시의 시대에 어떻게 안전하게 시위를 할 수 있을까’란 제목으로 이에 대한 친절한 안내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휴대전화입니다. 미국 정부는 휴대전화 정보 수집을 표적으로 한 강력한 기술을 많이 개발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스팅레이(가오리)’라 불리는 장비인데, 이 기기는 통신사 기지국인 것처럼 행세해서 주변 일정 범위의 모든 휴대전화 신호를 다 수집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와이어드>는 안에 들어 있는 전자기기의 신호를 차단하는 ‘패러데이 가방’과 같은 아이템을 시위 필수용품으로 추천하기도 합니다.
물론 경찰은 고전적인 방식으로 휴대전화를 간단히 압수해서 안의 내용을 보려 할 수도 있습니다. 한때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애플 사이에 아이폰의 ‘잠금 해제’ 신경전이 벌어진 적도 있지요. “용의자의 아이폰 암호를 풀라”는 수사 당국과 “어떤 고객의 개인정보도 함부로 건넬 수 없다”는 애플이 서로 맞선 것입니다. 이 때문에 경찰은 현장에서 당사자의 손가락을 휴대전화에 갖다 대고 잠금을 풀어버리고 싶은 강렬한 유혹을 받을 것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프라이버시 보호 위해 기업이 해야 할 일
사생활 보호는 자신을 지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현장에서 찍은 영상, 사진을 누리소통망에 올리거나 친구에게 보내다 주변 사람을 위험에 빠지게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각종 파일과 네트워크 분석뿐 아니라 근래 인공지능 발전으로 더욱 정교해진 얼굴 인식 알고리즘으로 이런 현장 기록 등을 분석해 특정인을 식별해내는 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명시적인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록을 공유하기 전에는 다른 이들의 사생활을 보장하는 편집 등의 배려가 먼저 있어야겠습니다.
사실 개인보다 각종 기술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해야 할 일이 더 많고 중요도도 큽니다. 스노든의 폭로 이후 지금까지 많은 기술 기업들이 정부와 거리두기를 했습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실리콘밸리 리더들의 관계는 매우 나쁜 편이기도 하죠. 이번 인종차별 시위에도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들은 공개적으로 지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뒤로는 여전히 정부에 많은 감시 기술을 판매해 이득을 얻고 있어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정부를 이끌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은 미국처럼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만 해도 국민에 대한 도청과 감시가 큰 쟁점이었습니다. 또 이를 운용하는 조직은 언제나 감시 예산과 인력을 더 늘리고 싶은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의 이야기가 남 얘기처럼만 들리진 않는 이유입니다.
권오성_ <한겨레> 기자로 미래, 과학 등을 맡던 중 뉴욕 시러큐스 대학에서 컴퓨터 기술과 저널리즘의 융합 석사과정을 마쳤다. 인공지능 등의 기술이 사회와 미디어에 가져올 영향에 관심이 많다. <데이터 과학> 등의 책을 번역했다. 현재 건국대 언론정보대학원에서 데이터 저널리즘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