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가 없는 사람

2020.06.15 최신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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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머릿속에 지도가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한번 어떤 경로로 등교하기 시작하면 이변이 없는 한 졸업할 때까지 같은 길로 오갔다. 대부분 등교 첫날 엄마가 데려다주거나 알려준 가장 안전하고 방향이 자주 바뀌지 않는 길이 머릿속에 입력됐고 이후 나의 등굣길이 되었다. 같은 방향으로 하교하는 친구를 만나 골목이나 지름길로 접어들면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새로운 길에서 발견하는 풍경이 재미있기도 하고 친구는 이 길을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에는 출발점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여러 가지 방법과 다양한 길이 있고 머릿속에 그 선택지가 들어 있어 때에 따라 꺼내 쓸 수 있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상황에 따라 지름길을 이용하기도 하고 대로로 나가기도 했고, 한 정거장 전에 내리거나 내가 아는 것과 다른 역에서 내려 샛길로 빠지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자신만의 지도가 존재한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절망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길치라거나 방향감각이 없다는 것이 사는 데 큰 지장을 주지 않았지만 어른이 된 뒤로는 잘 모르는 곳으로 면접도 보러 가야 하고 낯선 곳에서 사람을 만날 일도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면접 자체보다 헤매지 않고 면접 장소에 가는 일이 임무(미션)가 되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사람들을 지도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분류하는 버릇이 생겼다. 길치인 사람에게 동지애를 느끼면서도 어딘가 가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지도가 있는 사람 옆에 붙어서 동행하는(나를 버리고 가지 말라는 뜻으로) 박쥐 의식도 키웠다.
몇 년 전에 친한 후배와 문학잡지에 실릴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소설 쓰는 이야기와 사는 얘기를 두루 나누다 후배가 언니는 삶에 대한 균형감각이 있다며,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쓰고 싶다고 말했다. 후배는 ‘저울이 있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썼고 그건 귀한 감각이라고 추켜세웠다. 나는 훌륭한 인터뷰어인 후배에게 감탄하면서도 왜 소설이 아니라 균형감각이나 건강한 정신 같은 것으로만 칭찬받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좀 괴팍하더라도 소설이 끝내주는, 멋진 소설가가 되고 싶은데 그건 아무래도 내 몫이 아닌 것 같았다.
잡지가 나온 뒤 인터뷰 기사를 찾아 읽으며 나는 후배가 쓴 마지막 문장을 읽고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저울이 있으니까 나침반은 없어도 되겠지, 하고 넘겨버린다. 그런 점도 좋아한다고….’ 삶과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며 내게 그 둘 사이의 균형을 감지하는 저울이 있다고 말했던 후배가 길치인 나를 나침반이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너무 찔리면서도 나는 그 간결하고 정확한 표현에 탄복했다. 이제껏 지도만 없는 줄 알았더니 나침반도 없었구나!
나는 지도나 나침반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곳에 갈 때 늘 긴장하는 편이다. ‘오시는 길’ 같은 설명을 열심히 읽고 지도도 찾아본다. 걸을 때 주변의 상가나 몇 번째 블록에서 오른쪽으로 꺾는지 같은 세세한 부분에도 주의를 기울이며 걷는다. 약속 시간이나 예상 대기 시간보다 여유 있게 출발해야 실수하지 않기 때문에 서둘러 준비한다. 긴장한 채로 신경 쓰는 것이 피로하기도 하고 엉뚱한 곳에서 헤매 시간을 낭비할 때면 속도 상한다. 왜 나에게는 지도와 나침반이 없는가, 자책하는 일도 잦다.
예상보다 수월하게 도착할 때도 있고 금방 찾을 줄 알았는데 의외의 장소에서 빙빙 돌며 헤매다 목적지를 찾을 때도 있다. 임무를 완수하고 나면 비로소 마음에 안정감이 자리 잡는다. 그 길과 그곳은 비로소 내가 아는 길과 장소가 된다.
한동안 나는 지도와 나침반이 없는 나를 좀 한심해하고 불편해했다. 그런데 그것이 장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 순간 조금은 편해졌다. 자신에 대해 모르는 채로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무엇이 없는지 알고 있으니 나쁘지 않다고, 특유의 균형감각을 발휘하며 살아보기로 했다.

 서유미_ 소설가. 2007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두 권의 소설집과 여섯 권의 장편소설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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