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잠현초등학교 주변 보도에서 아이들이 뛰어가고 있다.
초등학교 ‘스쿨존’ 현장 가보니
초등학교 1, 2학년이 등교를 시작한 5월 27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송파구 잠현초등학교 정문 앞에는 학부모 몇 명이 서성대고 있었다. 처음으로 학교생활을 시작한 1학년 아들의 하교를 기다리는 ㄱ씨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학교 안을 지켜보다 “코로나19 때문에 학교를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 일단 보내긴 했는데 여전히 불안하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손씻기와 마스크 쓰기 등을 지도한다 해도 모든 아이가 잘 따라줄지 모르겠고, 워낙 많은 아이들이 오는데 어디서 어떻게 감염될지 모르잖아요.”
이 학교 학생 대부분은 학교와 이어진, 이른바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ㄱ씨는 집과 학교 사이에 아파트 내부 도로밖에 없지만 잘 다닐까 걱정돼 당분간 학교 가는 길을 함께할 생각이다. “아파트 안이라 길가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으면 운전자들이 서행하는 편인데, 조심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고 우리 애가 남자아이라 너무 활발해서 아무래도 불안해요.” 2학년 남학생 학부모인 ㄴ씨도 “남자아이들은 옆을 잘 안 보잖아요. 좀 산만해야 말이죠”라고 거들었다.
‘민식이법’ 시행 이후 초등학생 첫 등교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를 가중처벌하는 이른바 ‘민식이법’이 3월 25일 시행됐다. 민식이법 관련 법은 ‘도로교통법’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등 두 건이다. 이중 ‘도로교통법’은 개정을 통해 어린이보호구역 안 무인 교통단속 카메라, 신호등, 과속방지턱 같은 교통시설장비 설치를 의무화했다. 정부는 전국 어린이보호구역 안 교통시설장비 설치는 2022년까지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우선 2020년에는 교통사고 우려가 큰 지역에 무인 교통단속장비 1500대와 신호등 2200개를 확충한다. 이를 포함해 앞으로 3년 동안 무인 교통단속장비 8800대, 신호등 1만 1260개를 설치할 예정이다. 폭이 좁은 이면도로처럼 무인 단속장비를 설치하기 적합하지 않은 곳에는 과속방지턱 등 도로 안전시설을 늘린다. 학교 담장을 일부 안쪽으로 이동해 보도를 설치하는 등 안전한 어린이 통학로 조성사업을 적극 추진한다. 아울러 횡단보도 앞 바닥을 노란색으로 칠해 아이들이 그 위에서 신호를 기다리도록 유도하고 운전자들이 쉽게 인식할 수 있는 ‘노란발자국’과 ‘노란카펫’을 확대한다.
잠현초등학교 앞 어린이보호구역도 지난 학기와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보도 울타리에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은 우리 아이들입니다!’라며 민식이법 시행을 알리는 송파경찰서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정문 앞 횡단보도 신호등은 검은색이었던 등면을 노란색으로 칠해 이곳이 어린이보호구역임을 알리고 있었다.
학교 옆 유치원과 아파트 상가를 잇는 횡단보도에는 없던 신호등이 최근 새로 생겼다. ㄴ씨는 “조금 더 걸어가면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가 나오지만, 아이들은 귀찮은지 여기서 가로질러 가더라. 우리 아이는 신호등 있는 횡단보도로만 건너게 하는데 친구들하고 있을 때는 어떻게 건너는지 늘 걱정이었다”며 신호등이 생긴 걸 반겼다.
▶5월 27일 오전 잠현초등학교 정문 앞 보도 울타리에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은 우리 아이들입니다!’라며 민식이법 시행을 알리는 송파경찰서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운전자 변화는 아직 실감하기 어려워
학부모들은 민식이법이 시행됐지만 어린이보호구역을 지나가는 운전자의 변화를 실감하기 어렵다고 했다. 2학년 남학생 학부모인 ㄷ씨는 “민식이법이 시행된 뒤로 동네 주민들은 운전할 때 되도록 조심하는 것 같긴 한데, 학원 셔틀버스나 덤프트럭은 여전한 듯해서 우려하는 학부모가 많다”고 전했다. 2학년 여학생 학부모인 ㄹ씨는 “어린이보호구역이라고 운전자들이 특별히 조심해서 운전하는 건 아닌 듯하다”며 “어린이보호구역이라는 표지가 곳곳에 있지만, 처음 오는 택시 운전사는 여기에 학교가 있다는 걸 잘 모르더라. 아예 어린이보호구역 시작부터 끝까지 바닥 전체에다 노란색으로 선명하게 칠하면 좋겠다”고 바랐다.
‘노란발자국’과 ‘노란카펫’을 잠현초등학교 정문 앞에 설치해달라는 학부모도 있었다. 2학년 남학생 학부모인 ㅁ씨는 “다른 초등학교에 가보니 횡단보도 앞 바닥을 노란색으로 칠해서 눈에 잘 띄게 해놓았던데, 이 학교 앞에는 그런 게 없다”고 아쉬워했다. ㄱ씨는 “이 학교 학생들은 아파트 내부로 이어지는 후문을 주로 이용하니까 필요 없어서 노란카펫을 안 만든 것 같다”고 추측했다.
실제로 이날 지켜보니 큰길에 접한 정문보다 아파트 단지와 바로 이어진 후문으로 하교하는 학생이 더 많았다. 정문에서 기다리던 ㄹ씨는 “큰길에 보도 울타리가 있지만 혹시 모르니 정문은 보호자와 같이 다닐 때만 이용하고, 아이들끼리는 후문을 통해 아파트 안으로만 다니라고 한다”고 말했다.
학교 주변 주정차 차량이 걱정
그러나 후문에서 기다리고 있던 학부모들은 아파트 내부 도로도 위험하다고 걱정이 많았다. ㅁ씨는 “아파트 주차장 출입구에서 나오는 차량과 사고가 날 수도 있어 등하굣길에 아이 혼자는 안 보낸다”고 했다. 아이를 등하교시키는 차들 때문에 불안하다는 학부모도 많았다. ㄴ씨는 “아이를 데리러 온 차들이 길가에 줄지어 정차하는데, 자기 차량이 먼저 나가기 위해선 후진할 수밖에 없다. 그때 차량 뒤로 지나가는 아이는 키가 작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몹시 위험하다”고 말했다. 학교 앞 길가에 주정차한 차량이 다른 운전자의 시야를 가려 어린이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최근 3년 동안 서울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일어난 어린이 사고 244건 가운데 28.7%인 70건이 주정차 차량의 영향을 받았다. 이에 따라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주정차를 전면 금지하는 지자체도 있다. 서울시는 초등학교·유치원 정문으로 이어지는 통학로 위에선 어떤 경우라도 주정차할 수 없도록 한다고 5월 26일 밝혔다. 초등학교 정문이 위치한 주 통학로를 불법주정차 단속구간으로 지정하기 위해 서울지방경찰청과 협의해 6월 말까지 주정차 절대 금지선인 황색 복선을 설치한다. 어린이보호구역 주 통학로에 있는 노상 주차장 형태의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도 6월 말까지 90%를 정리하고 늦어도 연말까지 100% 폐지한다.
▶잠현초등학교 옆 유치원과 아파트 상가를 잇는 횡단보도에는 없던 신호등이 최근 새로 생겼다.
민식이법 놓고 학부모도 찬반 팽팽
민식이법 시행으로 운전자 처벌이 강화된 것에 대해선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찬반 의견이 팽팽했다. 민식이법 관련 법 가운데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일부 개정’은 운전자의 부주의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13세 미만 어린이가 사망할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며, 상해를 입으면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5년 이하의 금고,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었던 양형 기준을 강화한 것이다.
ㄹ씨는 “나도 운전하지만 학부모 입장에서는 강력히 처벌하는 게 맞는 거 같다. 다른 나라에 비해 벌금이 세지 않고 형벌도 무거운 편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야 지킨다. 모든 도로가 그런 것도 아니고, 어린이보호구역만 서행하고 주의하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ㄴ씨도 “우리 아파트는 대단지라 내부 도로에서도 빠르게 달리는 차들이 많다. 서행하는 차량에 아이가 뛰어드는 게 문제인데, 그래도 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민식이법을 찬성했다.
ㄷ씨는 학부모와 운전자 입장이 각각 달랐다. “통학하는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 입장에선 아이들 안전을 위해서는 처벌을 강화해야 하지만, 운전자 입장에서는 아이들의 돌발 행동이 많은데 운전자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 같아 양쪽을 잘 조율해서 법을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ㅁ씨는 “노란카펫 등 안전시설의 변화를 아직은 크게 느끼지 못한 상태에서 모든 운전자한테 형벌을 강화한다고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스럽다”며 민식이법을 반대했다. “운전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에이(A) 필러’(차 앞면 유리 양 옆 기둥) 등 차량 구조 때문에 안 보이는 사각지대가 있고, 안전 속도를 지킨다 해도 애들 몸이 약하니까 다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아이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사고 나면 무조건 전과자가 될 수밖에 없는 건데 너무 심하죠.”
그러나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사고가 난 경우라도 운전자가 안전운전 의무를 지켰다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 특히 어린이보호구역에 표시된 제한속도를 준수하고,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앞 일시정지 의무를 지켰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기준이다.
글·사진 원낙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