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의 아이콘. 책상 하면 누구나 다리와 상판, 서랍이 달린 것을 떠올린다.
고등학생이 된 아들의 책상을 사려고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봤다. 검색해보면 대부분 단순한 형태의 책상 이미지들이 나온다. 너무 단순해서 거의 식탁에 가깝다. 책상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네 개의 다리가 있고 그 위에 상판이 얹힌 책상을 떠올린다면, 요즘 세대 사람이다. 반면 이런 기본 구조에 서랍 두세 개가 한쪽에 붙어 있는 책상 이미지를 떠올린다면, 그 사람은 구세대에 속한다. 책상은 복잡한 모양에서 단순한 형태로 진화해왔다.
책상의 진화를 선도한 곳은 사무실이다. 개인 공간의 책상은 대체로 사무실의 책상 발전을 따른다. 사무실을 운영하는 주체인 사장과 부장 등은 사무직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와 감독, 책상 위 노동 효율성, 사무실 공간의 적절한 관리·위생 등에 에너지를 쏟는다. 반면 개인 공간의 주체는 그런 것보다는 책상이 더 멋져 보일까? 집 안의 분위기와 잘 어울릴까? 손님들에게 고급스러운 것으로 보일까? 내 취향에 맞을까? 같은 것을 고민한다. 물론 사무실 공간 중에서도 통제와 관리, 효율성이 작동하지 않는 예외적인 공간이 있다. 바로 사장님 방이다. 사장의 방은 개인 공간에 가깝다. 따라서 책상은 사무실 공간을 설계하는 주체의 어떤 경영 이론에 따라 진화하고 발전해왔다고 볼 수 있다.
▶1920년대 사무실. 책상 위의 수납장이 사라졌고, 서랍은 상판 아래에 매달려 있다.
귀족 문화의 산물로 시작된 초기 책상
현대의 책상 디자인이 대규모 사무실 공간에서 진화했다고 하더라도 초기의 책상은 귀족 문화의 산물로 시작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산업혁명 이전에 책상은 문자를 다루는 극소수의 왕족과 귀족, 엘리트들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네 개의 다리와 상판을 가진 책상의 기본 구조는 테이블과 똑같다.
하지만 책상만이 갖는 고유한 부가물이 있었으니 그것은 서랍이다. 17~18세기 서양에서 등장한 책상은 상판 밑 양옆에 서랍이 달려 있을 뿐만 아니라 상판 위에도 서류를 담을 수 있는 수납장이 있다. 어떤 것은 책꽂이나 수납장에 문서를 쓸 수 있는 수평의 판을 추가한 것 같은 책상도 있다. 이런 책상은 대개 원통형의 뚜껑이 있어서 업무를 보지 않을 때는 뚜껑으로 책상을 덮어 비밀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책상을 ‘롤 톱 실린더 데스크(roll top cylinder desk)’라 불렀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뒤 공적 공간인 사무실이 생겨나자 이미 존재하는 롤 톱 데스크가 자연스럽게 초기 사무실의 책상으로 도입되었다. 롤 톱 데스크는 앉아 있는 사무원의 키보다 높은 수납장과 책상 위를 덮을 수 있는 뚜껑까지 있어 사무원의 사생활(프라이버시)을 잘 보호해주었다.
▶1960년대에 등장한 허먼 밀러사의 액션 오피스. 모든 가구의 요소들이 분리되었고, 모듈 시스템으로 추가하거나 제거할 수 있다. 동시에 사각의 폐쇄적인 큐비클 공간이 탄생했다.
시간이 흐르자 경영관리 이론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것이 프레더릭 테일러가 1911년에 발표한 <과학적 관리의 원칙>이다. 그는 젊은 시절 노동자들이 태업을 하는 모습에 기겁했던 엄격한 관리자로서 철저한 감시와 감독으로 노동자들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관리 이론의 발전에 따라 책상 디자인은 변화를 겪는데, 관리자가 사무원을 잘 볼 수 있도록 책상 위를 깨끗하게 정리하는 것이었다. 또한 과거의 책상은 책상 밑 양쪽에 있는 서랍이 상판을 받치는 기둥 역할을 했는데, 이것을 상판에 매달리게 하고 네 개의 다리만으로 상판을 지지하도록 했다.
이로써 사무실을 청소하기 쉬워졌고, 20세기를 전후로 서구에서 발전한 위생 개념에도 잘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 따라 사무원의 프라이버시는 줄어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사무실 환경은 또다시 급변했다. 사무실 노동자들을 감시, 통제하는 것보다 스스로 책임감을 갖고 일하도록 하는 것이 생산성을 높인다는 이론에 따라 사무실은 가정처럼 밝고 화사하게 꾸며졌다. 또 사무원들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해 칸막이(파티션)가 등장했다.
1960년대에 오늘날과 같은 사무실 환경을 낳은 시스템 가구가 등장했다. 미국의 허먼 밀러사가 개발한 ‘액션 오피스(action office)’가 그것이다. 액션 오피스는 사무실에서 필요한 각 사무 가구의 요소들을 모듈의 개념으로 분해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했다.
그에 따라 서랍은 책상에서 분리되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분리할 수도 있고 붙일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가구회사 두닷의 책상. 다리와 상판으로 이뤄진 최소한의 구조만 갖춘 책상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다리와 상판으로 된 단순한 책상의 탄생
과거 사생활을 지켜주었던 책상 위 높다란 수납장의 기능을 칸막이가 대신해주었다. 이로써 각각의 사무원들이 칸막이에 둘러싸인 좁다란 사각의 ‘큐비클(cubicle)’ 공간이 탄생했다. 큐비클은 사생활을 보장해주는 대신 숨 막히는 밀폐 공간이 되기도 한다. 큐비클에서 장시간 노동은 사무원의 심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어 종종 폭력성을 낳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유튜브에서 ‘오피스 바이얼런스(office violence)’로 검색하면 이런 영상을 볼 수 있다.
▶18세기 루이 16세 시대의 롤 톱 실린더 데스크. 수납장과 책상이 결합되어 있고, 뚜껑을 덮어 책상 위 서류를 보호할 수 있다.
네모반듯한 큐비클의 공간, 깔끔하고 단순한 책상은 사실 컴퓨터의 등장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1984년에 등장한 매킨토시 컴퓨터는 컴퓨터의 데스크톱이 실제의 책상을 모방한 접속장치(인터페이스)를 구현했다. 이로써 책상 위를 복잡하게 한 각종 서류와 필기구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양쪽에 매달려 있는 서랍도 필요 없어졌다. 네 개의 다리 위에 직사각형 상판을 얹은 대단히 단순한 책상은 이렇게 탄생했다.
▶19세기 사무실 가구. 귀족의 롤톱 데스크가 초기 사무실에 보급되었다. 책상 위 높다란 수납장과 양옆의 가림막이 다른 이의 시선을 차단한다.
한국에는 서양보다 조금 늦게 이런 문화가 들어왔다. 1980년대까지 한국 사무실은 칙칙한 분위기에 철제 책상과 수납장이 대부분이었다. 퍼시스 같은 사무기기 브랜드가 등장하며 액션 오피스의 개념을 한국에 도입했고, 1990년대에 이르면 밝은 사무실에 시스템 사무 가구가 일반화되었다. 이러한 가구는 이제 거꾸로 가정에 보급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와 두닷처럼 온라인 판매를 위주로 하는 가구 회사가 등장했다. 이 회사는 온라인으로 판매한다는 성격에 맞춰 비싸지 않은 가구를 개발했다. 책상은 다리와 상판만으로 이루어진 매우 단순한 형태로 디자인했다. 이것이 곧 한국에서도 트렌드가 되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단순한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로 업무도 보고 뉴스도 보고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본다. 이런 풍경만큼 현대의 생활방식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으리라.
김신_ 홍익대 예술학과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하고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 대림미술관 부관장으로 일했다. 현재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