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6일 12시 27분, 고 최숙현 선수와 엄마의 대화 내용이다. 엄마가 “뭔 일이야”라고 묻는 문자는 끝내 수신되지 않았고, 최숙현 선수는 그 순간 몸을 던졌다. 아직도 마냥 부모한테 어리광 부리고 싶은 22세 꽃다운 청춘이 왜 대명천지에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는가. 이 질문에 떳떳하게 답할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최숙현 선수는 한국 사회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떠났다.
스포츠계 폭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뿌리 깊은 것이다. 2019년 대한체육회가 발표한 ‘성폭력과 폭력 실태보고서’를 보면 2018년 기준으로 일반 선수의 26.1%가 폭력 피해를 경험했고, 국가대표 선수의 3.7%도 폭력 피해를 본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수치는 10년 전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이고, 경향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운동부 하면 폭언, 폭력이 떠오를 만큼 체육계의 조직문화가 여전히 부정적으로 비치는 것은 사실이다. 최숙현 선수는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철인3종 선수로 성장했고, 2016년 체육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에 입단했다. 입단 전 학생 신분 때부터 감독과 선수들은 서로 안면이 있었고, 체고의 연고지역 팀 입단을 거부하기 힘들었다.
경주시청팀은 입단 전부터 지옥이었다. 고3 졸업을 앞둔 2016년 2월 그는 경주시청팀을 따라 뉴질랜드 전지훈련을 갔고, 그곳에서 고참 선수의 행패와 감독의 폭력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운동화 짝으로 때리고는 “내가 아니라 신발이 때렸다”고 말하는 감독을 고교생 최숙현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입단 2년 만에 괴롭힘을 참지 못하고 2018년 선수 생활을 쉬었고, 또다시 합류했지만 이번에도 달라진 것은 없다. 끊이지 않는 구타와 욕설에 어려서부터 순종적으로 처신하는 것만 배운 선수들은 항변할 수도 없었다.
1차 가해자는 감독과 트레이너, 고참 선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매우 섬세하고 종합적이다. 최종적인 목표를 향해 사람을 움직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흔히 좋은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로 꼽히는 것은 리더십과 인내력, 섬세함이다. 선수들의 존경을 받아야 선수들을 다스릴 수 있고, 신뢰로 공감하며, 기술적으로 세세한 부분에 대해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요즘은 소통의 기술도 강조되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은 종합예술이어서 지도자는 선수들과 교감하지 않고는 응집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러나 일부 지도자는 시도 때도 없이 욕설을 하고, 존중감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상소리를 하며, 물리적으로 폭력을 가하고 있다. 이게 성인들의 집단인 실업팀에서도 벌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일단은 한국 체육문화를 탓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선수 시절부터 폭력적 질서 아래서 큰 선수들 가운데 지도자가 나오고, 이들 지도자 중 일부는 제자들에게 폭언과 주먹을 휘두른다.
최숙현 선수 인권침해 사례도 직접적인 1차 가해자는 감독과 트레이너, 고참 선수다. 이들은 선수들의 뺨을 때리고, 각목으로 다스렸다. 수영과 사이클, 마라톤 등 고난도 운동으로 단련된 ‘철인’ 선수들도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그렇다면 감독을 고용한 경주시청은 무엇을 했던 것일까? 아마 담당 공무원은 감독과 선수와 단기계약을 맺으면 모든 것이 끝이고, 사후 관리·감독은 자기 일이 아닌 것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경상북도체육회와 경북철인3종협회는 또 무엇을 했던 것일까? 아마도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감독이 매우 폭력적이고 선수들이 괴롭힘 당하는 것을 소문으로 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일이 아니었다. 2020년 초 최숙현 등 피해 선수들의 고소를 접한 경찰은 또 무엇을 했고, 중앙의 대한철인3종협회와 대한체육회, 그 위에 국가는 무엇을 했는가? 그리고 국가를 구성하는 우리 모두는 또 무엇을 했는가?
최숙현 선수의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모두가 괴로워하는 것은 누구도 그의 죽음 앞에 떳떳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2019년 네이버 지식인에 감독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물었을 때, 누구도 답해주지 않았다. 감독을 고소하는 용기를 냈지만, 함께한 동료들이 빠져나가고, 감독이 멀쩡히 돌아다닌다는 말에 느꼈을 좌절감과 공포는 어떠했을까? 트라이애슬론계를 떠나야 할 것을 각오한 그의 말을 들어주는 단 한 명의 기자라도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7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소통관에서 고 최숙현 선수사망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연합
8월 스포츠윤리센터 출범 예정
정부는 최윤희 문체부 2차관을 중심으로 특별조사단을 만들고, 검찰은 전담수사팀을 구성해 신속한 수사를 다짐하고 나섰다.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7월 7일 고 최숙현 선수 가혹행위와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여성가족부 장관,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 단장, 검찰 및 경찰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이번이 체육 분야의 악습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신속하게 최숙현 선수와 관련된 수사와 조사를 진행할 것을 요청했다. 또 체육계에 만연한 폭력과 인권침해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가해자를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8월부터는 선수 인권보호를 위한 독립기구인 스포츠윤리센터를 출범시킬 예정이다. 폭력 지도자에 대한 무관용의 원칙이 적용되고, 징계 정보를 통합 관리해 단속의 강도를 높일 예정이다. 스포츠 분야 특별사법경찰제도의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대통령도 이런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조처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미 숨을 거둔 최숙현은 돌아오지 않는다. 또 사후 엄벌만이 해법은 아니다. 오히려 지도자 교육과 재교육의 실효성 강화를 위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예산을 지원하는 등 장기 과제에 눈떠야 한다.
스포츠 외에도 만화, 예능, 의료계 등 우리 사회 곳곳에 포진한 폭력문화를 바꿔야 한다. 그것은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집단주의를 개인주의 인식으로 중화하거나 희석해야 하는 과제와 맞물려 있다. 선수가 “나를 왜 때리는가”라고 지도자에게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될 때, 최숙현의 비극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김창금_ <한겨레>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