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관련 첫 종합 법률 ‘청년기본법’
“이 법은 청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으며 건전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한다.”
2020년 2월 4일 제정, 8월 5일부터 시행될 ‘청년기본법’의 제2조 1항이다. 일반적으로 청년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왕성하고 활기찬 시기를 뜻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청년’은 ‘N가지를 포기한 세대’, 즉 ‘N포 세대’로 불린 지 오래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청년 문제’라고 하면 일자리와 주거 등으로 한정하는 경향이 짙었다. 한데 청년들을 ‘행복한 삶을 영위할 권리를 지닌 자’로 바라봤을 때 이들을 둘러싼 문제는 그 범주가 매우 넓다. 비단 일자리와 주거만이 아니라 교육, 경제, 문화, 정치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는 얘기다. 특히 계층 간 사다리가 무너진 사회에서 청년들이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느끼는 문제점, 사회적 박탈감 등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국회가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해 만든 법은 미취업자 직업능력개발훈련을 지원해 고용을 촉진하는 데 목적을 둔 ‘청년고용촉진특별법’ 정도였다. 그간 정부에서 추진한 청년정책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대다수가 청년실업 대책 등에 집중했고 청년들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다양하게 반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청년정책 및 지원 관련 기본 사항 담아
청년기본법은 청년을 단순히 취업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권리를 지닌 자’로 바라본 종합적인 근거라는 데 의미가 크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 청년의 위상을 다시 세우는 전환점으로 평가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이하 네트워크)는 2020년 1월 9일 성명을 통해 청년기본법 제정을 환영하면서 “청년기본법 제정은 청년과 청년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관점을 전환하고, 변화된 청년의 삶을 제도적 틀 안에서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청년 문제 해결의 중요한 시작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청년기본법을 시작으로 청년 문제를 개인이나 부모에게 전가해왔던 시대, 소위 생산력 있는 청년만 지원하던 시대, 일부 청년만 지원하던 시대, 청년이 일자리를 갖는 것 외에 아무 관심도 없었던 시대를 떠나보내고 청년 문제의 진단과 해법을 새롭게 하는 시대를 맞이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청년기본법의 주요 내용은 뭘까. 먼저 청년기본법은 청년의 권리와 책임, 국가와 지자체의 청년에 대한 책무를 정하고, 청년정책의 수립과 청년 지원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청년들의 범주를 정해 국가와 지자체의 의무를 규정하고 청년의 정책 참여를 확대하는 등 대한민국 청년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지원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청년기본법은 2014년 처음 발의된 뒤 여러 차례 발의를 거듭한 끝에 제정됐다. 지금 시행하고 있는 우리나라 1463개 법률 가운데 청년에 관한 종합 법률로서는 처음 제정된 법이기도 하다.
청년 당사자 요청에 대한 정치권의 응답
그간 청년들을 둘러싼 시민사회에서는 청년 당사자들이 중심이 되어 여러 가지 청년 문제 담론을 펼쳐왔다. 청년들은 ‘1만 명 서명운동’ ‘국회 토론회’ ‘정부 간담회’ 등을 통해 ‘N포 세대(꿈·희망 등 삶의 가치 포기)’로 살아가는 자신들의 어려운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법률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이에 정치권은 청년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청년미래특별위원회’를 구성, 국회에 계류 중인 7건의 ‘청년기본법안’을 종합 검토해 여·야 합의로 ‘청년기본법(안)’을 발의했고, 이 법안은 2020년 1월 9일 국회에서 의결됐다. 청년기본법은 이렇게 청년 당사자들의 지속적인 요청과 이에 대한 정치권의 응답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라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빛난다.
청년기본법 주요 내용 가운데 흥미로운 부분은 청년의 정의와 범주를 새롭게 규정했다는 점이다. 청년기본법에서는 청년을 ‘19세 이상 34세 이하인 사람’으로 규정했다. 단, 다른 법령과 조례에서 청년의 연령을 다르게 적용하는 경우에는 그에 따를 수 있다.
청년기본법에 따라 정부 청년정책 지휘본부(컨트롤타워)는 국무총리가 맡는다. 국무총리는 5년마다 청년정책 기본계획을 수립 및 시행해야 한다. 또한 관계 중앙행정기관과 시·도지사가 연도별로 수립·시행한 시행계획의 추진 실적을 분석·평가해야 한다.
한편 정부는 청년의 고용·주거·교육·문화·여가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매년 실시 및 공표하고, 관련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더불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청년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사업도 수행해야 한다.
총리 소속 청년정책조정위원회 꾸려져
청년들의 정책 참여도 강화됐다. 청년정책에 관한 사항을 심의·조정하기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청년정책조정위원회도 꾸린다. 위원장은 국무총리, 부위원장 2명, 위원은 관계부처 장관 및 협의체가 추천하는 지자체장, 청년을 대표하는 사람 등 40명 이내로 구성된다.
시·도지사 역시 지역의 청년정책을 심의·조정하기 위해 지방청년정책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청년 위원을 위촉해야 한다. 청년정책 현장에서는 이를 통해 청년들이 정치 참여 기회를 얻고, 그들의 목소리가 실질적으로 반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법 시행 전까지 토론회 등 청년 의견수렴을 거쳐 대통령령으로 ‘청년의 날’도 지정하기로 했다. 정부 측은 “청년들을 위한 날이니만큼, 청년들의 다양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기본법 시행까지 한 달여가 남았다. 정부는 청년기본법 시행을 앞두고 청년들과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시행령 제정 및 청년정책조정위원회를 구성하고, 청년기본법 기본계획 수립 등을 차질 없이 준비해나갈 계획이다. 또한 2019년 7월 발족했던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추진단(이하 추진단)은 청년정책조정위원회를 지원하는 사무국 기능을 하며 청년정책을 더욱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한편, 청년들이 정책형성 과정에 참여하는 기회 확대를 위해 300여 명 규모의 청년참여단 등 ‘청년참여 거버넌스(협의체)’를 구축해 청년들과 지속적인 소통으로 정책과제를 발굴해나갈 계획도 있다.
1월 9일 노형욱 전 국무조정실장은 “그간 ‘정부 주도로 추진됐던 청년정책(for youth)’의 틀을 정부와 청년이 함께 논의하고 정책을 만들어가는 ‘청년과 함께하는 청년정책(with youth)’으로 전환해, 미래 세대 주역인 ‘청년들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약속했다.
“듣기만 하지 않고 실천하는 노력 다하겠다”
청년기본법 시행에 앞서 청년들의 목소리에 직접적으로 귀 기울이는 정부 측 행보도 눈에 띈다. 3월 26일에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청년의 삶 개선방안’이 나왔다. 추진단이 전국 10개 권역별 청년 간담회 등 온·오프라인 소통을 통해 청년들의 목소리를 적극 청취하고, 접수된 정책 제안 가운데 관계부처와 검토해 먼저 정책화할 수 있는 과제들을 모은 것이다.
한편 6월 11일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인 정세균 국무총리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공관에서 ‘대한민국의 미래, 청년에게 듣습니다’라는 주제로 제7차 목요대화를 열었다. 농업인, 프리랜서, 취업 준비생, 직장인, 사업가, 예술인 등 다양한 방면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노력하는 20~30대 청년 12명의 고민과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다. 정 총리는 “우리 청년을 위해,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희망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함께 지혜를 모아야겠다고 생각한다”며 “청년들에게 힘이 되는 정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듣기만 해선 무엇하나. 실천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 결론”이라며 “모든 것을 실천할 수 있진 않겠지만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청년의 목소리를 담아 ‘청년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해보려는 정부의 노력이 8월, 청년기본법 시행을 기점으로 어떤 성과를 거둘지 주목된다.
김청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