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악플(악의적인 댓글)은 연예계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최근에는 강경 대응 방침이 이어지지만 아직은 연예인 개인 차원의 대응이나 소속사의 공지 정도로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중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처음부터 꾸준하게 악플러에 대한 강경 대응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처음엔 조금 의외다 싶을 만큼 예외적인 인상이었다. 물론 그 방침은 상식적인 일이지만 이전까지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는 뜻이다.
6월 29일, 빅히트는 “방탄소년단에 대한 명예훼손, 모욕, 성희롱, 허위사실 유포, 악의적 비방 등을 포함하는 악성 게시물 작성자를 대상으로 정기적인 법적 대응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일부 피의자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악플을 자체적으로 점검한다. 여러 커뮤니티와 블로그, 누리소통망(SNS), 뉴스 댓글, 음원 사이트 댓글 등을 자체 점검과 팬들의 제보를 통해 악플러 증거자료로 수집하는 것이다.
빅히트의 공식 입장을 보면,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 메시지는 일관적이다. ‘합의를 요청하는 경우에도 절대 선처 불가다’ ‘제3자가 제기하는 고발은 피해자인 아티스트 본인의 경찰 출두와 조사가 원칙이므로, 개인 또는 단체 등 제3자 고발에 대해 회사 차원의 협조와 지원은 어렵다’. 이 두 가지 원칙은 수년 전부터 예외 없이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이 메시지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언론에 나타나 공유된다.
강력한 비즈니스 구조의 토대인 ‘팬덤’
그렇다면 어째서 이렇게까지 단호한 메시지를 노출하는 걸까? 그걸 위해서는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혹은 K-팝 비즈니스의 본질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방탄소년단의 성공 이전에도 K-팝은 팬덤이 강력한 비즈니스 구조의 토대가 된다고 평가받았다. SM의 음반 판매량이 100만 장을 웃도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얘기다. 그런데 이게 왜 중요할까?
음악 시장은 원래 음반을 판매해서 돈을 버는 구조였다. 책도 마찬가지고, 텔레비전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이 업종은 ‘제조업’이었다. 단지 음반을 팔기 위해 음악이 유명해져야 하는 이슈가 있었다.
20세기에는 그걸 대중매체가 담당했다. 음악을 팔기 위해 라디오, 텔레비전, 잡지, 영화 등이 모두 활용되었다. 그 프로그램이 음악 프로그램이든, 드라마든, 초대형 영화(블록버스터)든, 패션지든 상관없었다. 정치, 시사 문제와 연결되지만 않으면 인기를 끄는 방법은 많았다.
그런데 21세기 들어서 음반 산업은 쇠락하고 음반은 팔리지 않게 되었다. 음악이 유명세를 얻어도 팔 수 있는 물건이 없으므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음반을 살 수 있는 요인을 만들어야 했다. 이때 팬덤이 바로 핵심 고객이었다. 이들을 유인 및 최종 판매단계까지 고정(록인)하기 위해 몇 가지 요소가 더해졌다.
먼저 폐쇄적인 커뮤니티. 특정한 시기에만 모집하는 유료 팬클럽은 가입한 사람들에게 강력한 멤버십 효과를 줬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콘서트 티켓 우선 예매권과 팬 상품(굿즈). 이렇게 다음 요소인 차별화 정책이 연결된다. 마지막으로 팬들이 음반을 구매하는 이유를 만들어야 했다. 그게 바로 팬미팅 초대권이다. 그걸 갖기 위해 팬들은 같은 앨범을 구매하고 돈을 써야 했다. 좋아하는 가수를 직접 만나고 싶은 마음과 무작위(랜덤) 추첨이라는 형식이 앨범 판매량을 받치는 근간이었다.
그런데 2000년 이후 지속적으로 쇠락한 음반 시장이 이런 구도를 흔들었다. 음반 판매량은 아이돌 시장에서만 유용한 지표였다. 음반이 아니면 콘서트 티켓 판매로 산업이 유지됐으니 새삼 음악 시장은 오프라인 기반의 사업이었던 셈이다. 2010년 이후에는 휴대전화와 실시간 재생(스트리밍) 환경으로 오프라인 시장 기반의 수익 모델은 약화되었다. 여기에 쐐기를 박은 게 코로나19다.
▶방탄소년단 누리집
폐쇄적 커뮤니티에서 열린 구조로
비접촉 환경에서는 팬덤이 개방형 커뮤니티가 될 수밖에 없다. 이전까지 유효했던 폐쇄적인 커뮤니티 기반의 사업 모델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포토카드나 팬미팅 당첨권 같은 ‘조건’이 아니라 다른 요인이 필요해졌다. 코로나19가 이런 현상을 만든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변화를 자극하고 확산시킨 건 분명하다. 팬을 만들고 유지하고 소비자로 전환하려면 이제까지와는 다른, 더 거창하고 아름다운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다.
내 생각엔 그게 ‘메시지’다. K-팝뿐 아니라 콘텐츠 사업 전반은 메시지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 모델로 변화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메시지의 정확성, 공감도, 확산력 같은 게 바로 콘텐츠 사업의 경쟁력이 된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이토록 악플러에 대해 일관되게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들로서는 방탄소년단 혹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메시지가 훼손되는 것은 사업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이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자사를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IP 비즈니스’로 정의한다. 지식재산권(IP)의 영향력이 강해지려면 콘텐츠의 메시지가 일관되고 명확해야 한다. 그걸 위해 팬덤을 이해하는 노력과 시도는 필연적이다. K-팝의 특징은 매니저, 음반사, 변호사, 공연기획사, 스타일리스트 등이 통합적으로 계약하며 하나의 정체성을 구성한다는 점이다. 연습생 시스템, 일종의 ‘인재 양성 시스템’의 효율성도 중요하다. 남성이나 여성의 단일 성별로 구성된 그룹은 대중적 관심도와 팬덤의 집중력을 높인다. 그 과정에서 팬덤 커뮤니티의 활용은 이 비즈니스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 폐쇄적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삼은 비즈니스의 방향이 바뀔 것이다. 열린 구조의 커뮤니티에서 팬들은 서로 교류하며 콘텐츠의 메시지를 확장하고 강화하기 때문이다. 2020년 이전까지 K-팝의 영향력이 확산된 시기라면, 2021년부터는 K-팝의 사업 모델이 시험받고 검증받는 시기가 될 것이다. 여기엔 당연히 체질 개선과 구조적 개선이 뒤따를 것이다.
차우진_ 음악평론가. 미디어 환경과 문화 수용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청춘의 사운드> <대중음악의 이해> <아이돌: H.O.T.부터 소녀시대까지…> <한국의 인디 레이블> 등의 책을 썼고, 유료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에서 <음악 산업, 판이 달라진다> 리포트를 발행했다. 현재는 ‘스페이스 오디티’라는 스타트업에서 팬 문화, 콘텐츠, 미디어의 연결 구조를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