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화가’ 렘브란트는 ‘자화상’의 화가다. ‘자화상’은 화가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 렘브란트는 평생 100여 점의 ‘자화상’ 연작을 남겼는데, 그 속에는 삶의 영광과 굴곡, 기쁨과 고통 등 자기 인생의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담겨 있다. 젊은 시절부터 일기를 쓰듯 물감으로 기록한 그의 진실하고 솔직한 ‘자화상’ 연작은 그래서 렘브란트의 특별한 자서전으로 불린다.
서양미술사에서 자화상을 그린 화가들은 렘브란트 말고도 수없이 많다. 그러나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림으로 평가된다. 첫째, 그가 거의 전 생애에 걸쳐 남긴 100점이나 되는 방대한 자화상은 양적인 기준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데다 그 자체로 인생 역정을 기록한 그림일기장이란 점이다. 둘째,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일체의 꾸밈이나 미화, 변명도 없이 자신의 현재 상황과 모습, 심리 상태를 처절할 정도로 성실하고 진솔하게 관찰한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복잡한 씨줄과 날줄의 다중성으로 엉켜 있어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인간 심리의 전모를 마음과 감정으로 느끼게 해주는 일종의 잠망경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속 꿰뚫어 본 결정체
전설적인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1909~2001)가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두고 ‘인간의 마음속을 꿰뚫어 본 결정체’라고 칭송한 것도 괜한 말이 아니다. 렘브란트가 위대한 화가인 이유다.
화가로서 명성과 달리 렘브란트의 인생 항로는 험난했다. 20대 중반, 당시 상업의 중심지 암스테르담에서 초상화가로 출세가도를 달리며 부와 명성, 두 마리 토끼를 거머쥔 그는 1634년 부유한 집안의 사스키아 울렌버그와 결혼하는 행운까지 더해 꿈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인생지사 새옹지마, 1642년 결핵을 앓던 사스키아와 사별하면서부터 삶이 꼬이기 시작했다. 아내의 빈자리에서 비롯된 허전함을 이길 수 없었던 것일까. 빚이 점점 늘어나면서 급기야 빚더미에 올라앉은 그는 근근이 생계를 유지할 뿐이었다. 설상가상 1656년경 집과 고가의 수집품들이 경매로 강제처분되며 빈털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신기한 것은 극심한 경제적 고통 속에서도 렘브란트의 창작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미술사에 빛나는 불후의 명작을 죽는 해까지 쏟아내는 불굴의 의지의 소유자였다. 만신창이가 되고도 10년이 넘도록 혼신의 힘으로 일궈낸 업적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열광하는 ‘자화상’ 연작이다. 특히 삶의 마지막 문턱에 선 1669년 빚어낸 ‘자화상’은 렘브란트 자화상의 백미로 꼽힌다.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소장 중인 이 작품 속 렘브란트는 늙고 지친 모습이 역력한 63세 노인으로 평생 부대껴온 삶의 곡절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죽기 직전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낡아 빠진 헌 옷 몇 가지와 그림 그리는 화구뿐이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렘브란트의 ‘자화상’ 연작은 그의 전 생애를 넘나드는 자서전이자 자기 성찰을 위한 그림일기다.
▶63세 때의 자화상, 캔버스에 유화, 86×70.5cm, 1669,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
1 63세 때의 자화상(1669년)
죽음을 눈앞에 둔 마지막 자화상으로 렘브란트 ‘자화상’ 연작의 화룡점정이다.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인간 내면의 세계, 마음 속내를 화가의 초상화를 통해 드러내는 렘브란트의 놀라운 예술적 경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른바 자기 성찰의 흔적과 노력을 숙성시킨 자화상이라는 렘브란트 그림의 특징이 집대성된 걸작이다.
축 처진 피부에 얼굴 전체를 뒤덮고 있는 불그스레한 반점, 까칠까칠한 피부가 영락없는 노파다. 겸손하게 맞잡은 두 손과 눈빛에서 63세 노인이 증언하는 삶의 회한이 느껴진다. 얼굴 전면을 비추는 특유의 빛의 효과는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스멀스멀 새어나오는 영혼을 불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빛을 매개로 자기 응시 효과를 극대화한 ‘빛의 화가’다운 솜씨다. 얼굴을 뺀 나머지 부분을 다른 자화상보다 어둡게 처리한 데서도 만년의 자화상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22세 무렵의 자화상, 참나무 패널에 유화, 23.4×17.2cm, 1628년경, 독일 드레스덴 알테 마이스터 미술관 소장
2 22세 무렵의 자화상(1628년경)
20대 초반, 청년 시절의 렘브란트 모습이다. 렘브란트의 자화상 중 가장 젊은 나이 때의 그림이다. 빛을 이용한 명암 대비 효과를 탐색한 일종의 ‘자화상’ 연작을 위한 습작이다. 빛의 각도와 강약, 빛의 양에 따라 달라지는 표정 변화를 집중적으로 탐색한 시기다. 그림자에 가려진 얼굴이지만 패기만만한 청년의 기운이 넘쳐흐른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1774년에 출간한 서간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모델로 알려진 작품이다.
▶34세 때의 자화상, 캔버스에 유화, 102×80cm, 1640,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
3 34세 때의 자화상(1640년)
출세한 초상화가로 전성기를 구가할 때의 렘브란트 모습이다. 세련된 베레모 양식의 모자와 화려한 의상, 당당한 표정이 성공한 화가의 위세를 짐작하게 한다. 얼굴과 옷, 배경 등 ‘자화상’ 연작 중 유일하게 모든 부분을 밝게 처리해 인생의 황금기를 달리던 렘브란트의 명성을 부각한 작품이다. 그림 오른쪽 아래에 그의 서명과 제작 연도가 선명하다.
▶53세 때의 자화상, 캔버스에 유화, 84.5×66cm, 1659, 워싱턴 D. C. 국립미술관 소장│ⓒwikipedia commons, public domain
4 53세 때의 자화상(1659년)
파산하고 3년이 지난 초로의 렘브란트를 그린 자화상이다. 경제적 곤궁에 시달리며 나락으로 떨어진 현실이 무색하게 꽉 다문 입과 매서운 눈빛이 거장의 뜨거운 예술혼을 암시하고도 남는다. 실제로 렘브란트는 파산 이후 마지막 10여 년 동안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 보석 같은 ‘자화상’ 연작을 선보였다. 화면을 꼿꼿이 응시하는 눈빛은 마치 숙련된 배우의 의도된 연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눈빛은 결코 연기가 아니다. 그것은 50을 넘긴 중년 사내의 내면에 켜켜이 깃든 삶의 나이테 실체를 시각적으로 확인시켜주는 렘브란트의 진짜 모습이자 속마음이다. 렘브란트의 대다수 자화상과 달리 상체가 왼쪽 방향을 향하고 있다.
렘브란트. 그는 가난과 시련과 고통에도 결코 좌절하지 않은 예술적 투혼의 전사로 기록되어 마땅하다.
박인권_ 문화 칼럼니스트. PIK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전 <스포츠서울> 문화레저부 부장과 한국사립미술관협회 팀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시와 사랑에 빠진 그림>(2001), <미술전시 홍보, 이렇게 한다>(2006), 미술 연구용역 보고서 <미술관 건립운영 매뉴얼>, <미술관 마케팅 백서>(이상 200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