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무얼 담았나
정부가 코로나19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과 함께 ‘한국판 뉴딜’의 큰 그림을 발표했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새로운 성장동력 마련을 위해 추진하는 한국판 뉴딜에 3년간 31조 원을 투입한다. 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D·N·A) 생태계를 강화하고 원격교육·비대면 의료 인프라를 구축하는 한편, 공공시설과 주력 제조업을 녹색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지속가능한 일자리 55만 개를 2022년까지 만들겠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정부는 또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위축을 조기에 극복하기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3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해 소비·투자 진작을 통한 내수 활성화와 고용·사회안전망 확충에 집중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선도형 경제’로 나아가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정부는 6월 1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6차 비상경제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확정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비상경제회의를 주재하면서 “하반기에도 재정 역량을 총동원해 어려움을 겪는 기업과 국민의 버팀목이 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은 예년보다 한 달가량 앞당겨 발표된 것이다. 코로나19 위기로 일자리와 소득 부진, 경영난에 처한 민생 경제를 위한 정책 대응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한국판 뉴딜’로 코로나19 위기 넘는다
정부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가운데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개척을 위한 선도형 경제기반 구축을 가장 앞세웠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전 분야의 구조적인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 선점을 위한 대비를 하반기부터 당장 추진해야 할 과제로 판단한 것이다. 이를 위해 선도형 경제기반 구축을 위한 3대 중점대책을 신속히 추진하기로 했다.
위기 극복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책일 뿐만 아니라 중기적으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미래 대비 성격도 있다.
한국판 뉴딜은 사람 우선의 가치와 탄탄한 고용안전망 디딤돌 위에 두 개의 뉴딜 축, 즉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이 본격 추진된다. 7개 분야 중 25개 핵심 프로젝트에 2025년까지 총 76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며, 우선 1단계로 즉시 추진할 수 있는 과제를 중심으로 2022년까지 31조 3000억 원을 투입해 모두 55만 개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다.
문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은 추격국가에서 선도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새로운 국가발전 전략”이라며 “사람 우선의 가치와 포용국가 토대 위에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두 축으로 나란히 세운 한국판 뉴딜을 국가의 미래를 걸고 강력히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디지털 뉴딜은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화·디지털 경제의 가속화 등 경제·사회구조 대전환에 대응해 ▲D·N·A 생태계 강화 ▲디지털 포용 및 안전망 구축 ▲비대면 산업의 본격적 육성 ▲사회간접자본(SOC)의 디지털화 등 4대 분야 총 12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2022년까지 13조 4000억 원을 투입해 33만여 개 일자리를 만들어내며 디지털 경제 전환을 촉진하고 신산업·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한다.
그린 뉴딜은 ▲녹색공간 생활 인프라에 대한 녹색전환 시도 ▲녹색산업 혁신생태계 구축 ▲저탄소·분산형 에너지 확산 등 3개 분야 18개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2022년까지 모두 12조 9000억 원을 투입하고, 약 13만 3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
문 대통령은 “디지털 뉴딜은 미래형 혁신경제를 선도하기 위한 것”이라며 “D·N·A 생태계와 비대면 산업을 육성하면서 국가 기반시설을 대대적으로 디지털화해 디지털 경제로 전환을 속도 있게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린 뉴딜을 통해서는 지속가능 성장의 길을 열어나갈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해나가면서 새로운 시장과 산업,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전체적인 한국판 뉴딜 추진 종합계획은 7월 초순 발표하겠다”며 “당장 하반기부터 추진해야 할 뉴딜 프로젝트 (재정) 소요는 3차 추경안에 5조 원 전후로 반영했다”고 밝혔다.
방역 및 바이오산업 미래동력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글로벌 방역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치료제·백신 조기 개발을 위한 임상 3상까지 연구개발(R&D)을 집중 지원하고, 우리의 K-방역 모델을 세계화해 국제표준화를 추진하는 등 감염병 대응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해나간다.
코로나19 사태로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바이오·그린 분야는 하반기 중 ‘의료기기산업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1조 원 규모로 조성되는 ‘스마트 대한민국 펀드’ 등을 적극 활용하며, 재생의료 등 연관 산업에 대한 육성 방안도 순차적으로 마련해 추진해나간다.
국외 공장을 국내로 돌아오도록 세제·입지 지원도 확대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계적인 분업 시스템(글로벌 밸류체인)이 흔들리는 것에 대응하려고 정부가 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이 돌아오도록 각종 지원책을 편다.
정부는 국내로 돌아오는 기업(유턴 기업)에 수도권 부지를 ‘공장총량제’ 범위 안에서 우선 배정하고, 각종 애로 사항을 적극적으로 해소해주기로 했다. 유턴 기업에 분양 우선권을 주거나 유턴 기업을 수의계약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 맞춤형 산업용지 공급 등 혜택을 제공할 방침이다.
비수도권에 한해 기업당 100억 원 한도에서 지급하던 기업 이전비용 지원 보조금은 비수도권은 200억 원, 수도권은 첨단산업에 한정해 150억 원을 지원한다. 유턴 기업이 외국 사업장 생산량의 50% 이상을 감축하고 국내에 사업장을 증설해야만 법인세·소득세를 감면해줬지만, 이 요건을 없애고 감축 수준에 따른 감면 한도를 설정해 세제 지원을 할 방침이다.
홍 부총리는 “유턴 기업들이 원하는 곳에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수도권 공장총량 범위 내 우선 배정 등 다각적 지원방안을 강구하겠다”며 “각종 대책을 보완해 7월 중 ‘유턴 및 첨단산업 유치전략 등을 포함한 글로벌 밸류체인 혁신전략’을 마련해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고용·사회안전망 확충에도 집중
선도형 산업·경제 구조를 만들기 위한 혁신 노력도 가속화한다. 우선 제2벤처 붐 확산을 위해 벤처지주회사제도 규제를 크게 완화하고, 일반 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의 제한적 보유 방안도 적극 검토한다.
주력 산업과 서비스산업 고도화를 위해서는 스마트공장 도입 등 제조업 스마트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한편, ‘한걸음 모델’ 등을 통해 서비스산업의 규제 해결방안도 모색해나갈 예정이다. 아울러, 연간 경제정책방향에서 제시했던 1인 가구 대책으로 청년의 자산 형성, 주거 지원, 24시간 돌봄 확대, 여성 1인형 안전 등 1인 가구의 생활기반별 맞춤형 대책을 적극적으로 강구해 시행해나간다.
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고용보험 가입 범위를 단계적으로 넓히고, 2021년 시행 예정인 국민취업지원제도도 차질 없이 준비할 계획이다. 또 청년·신중년·노인·여성 등 고용 취약계층의 수요자 맞춤형 일자리 지원도 강화한다.
특히 우리 경제의 중추이면서 일자리 어려움을 크게 겪고 있는 40대를 대상으로 훈련-체험-채용이 연계된 패키지인 ‘리바운드 40+’ 및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신설하는 등 일자리 지원을 크게 강화해나간다. 아울러 저소득층 긴급복지 지원요건 완화를 2020년 말까지 연장하고, 8월 중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을 세우는 등 포용 사각지대를 더욱 촘촘하게 채워나갈 예정이다.
1684억 규모 외식·문화·여행 할인쿠폰
정부는 소비와 투자 등 내수 활성화를 통해 플러스 성장률 목표(연 0.1%)를 지키겠다는 게 핵심이다. 내수 활성화 대책으로 개별소비세 인하와 소득공제·투자세액공제 확대 등 전통적인 세제 수단을 총동원하기로 했다.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수출 버팀목에 의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내수 활성화를 통해 경기를 방어하겠다는 판단이다.
우선 숙박·관광·공연·영화·전시·체육·외식·농수산물 등 8대 분야에서 쓸 수 있는 1684억 원 규모의 할인쿠폰을 제공한다. 선착순으로 600만 명에게 농수산물 구매 시 최대 20%(한도 1만 원) 할인쿠폰을 주며, 330만 명에게는 주말에 신용카드로 외식업체에서 2만 원 넘게 다섯 차례 이상 결제하면 1만 원의 외식 할인쿠폰을 준다. 숙박 온라인 예약에도 3만~4만 원의 할인쿠폰(100만 명)을 제공한다. 할인쿠폰 지급 대상은 경제활동인구(2773만 명)의 절반이 넘는 1618만 명이며, 선착순으로 받을 수 있다.
신용·체크카드 사용액 소득공제 한도도 올릴 계획이다. 현재 한도는 총급여 7000만 원 이하는 300만 원, 7000만~1억 2000만 원은 250만 원, 1억 2000만 원 초과는 200만 원이다. 여기에 전통시장(100만 원), 대중교통(100만 원), 도서·공연 등 문화비(100만 원) 한도가 추가로 적용된다.
승용차 개별소비세(5%) 인하는 감면 폭을 현행 70%에서 30%로 줄여 연말까지 연장한다. 6월 말까지는 한도 100만 원 이내에서 개별소비세 1.5%를 적용받지만, 7월부터 연말까지는 3.5%가 적용되고 한도는 없어진다. 홍 부총리는 “대외 여건 악화로 수출과 투자가 제약받는 상황에서 내수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소비력의 재생을 뒷받침하기 위해 숙박, 관광, 문화, 외식, 농수산물 등 8대 분야 소비 쿠폰을 제공하고, 고효율 가전제품 환급 등 소비 회복지원 3종 세트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를 통해 2020년 ‘플러스’ 경제성장률을 지켜내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날 2020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4%(2019년 12월 전망)에서 0.1%로 하향 조정했다. 홍 부총리는 “2020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는 추가경정예산을 비롯한 정책 효과, 정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를 담아 0.1% 성장 목표를 제시한다”고 밝혔다. 이어 “2020년 2분기는 세계경제 침체에 따른 수출 급감 등으로 1분기보다 상황이 더 어려울 수 있겠으나, 코로나19가 국내적으로는 상반기에, 세계적으론 하반기에 진정된다면 3분기 이후 정책 효과에 힘입어 플러스 성장 전환이 가시화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며 “2021년에는 3%대 중반 이상의 반등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박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