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전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처음 신청을 받기 시작한 5월 4일부터 한 달이 지난 6월 3일 24시 현재 까지 지급 대상 가구 중 약 99.1%(13조 5428억 원)가 수령했다. 지급 방식별로는 가구 수 순으로 신용·체크카드가 1460만 가구(9조 5938억 원)로 가장 많았다. 이어 현금이 286만 가구(1조 3011억 원), 선불카드 251만 가구(1조 6336억 원), 상품권 154만 가구(1조 143억 원)로 집계됐다. 시·도별로는 경기의 신청 가구 수가 524만 4697가구로 가장 많았다. 서울이 403만 9295가구, 경남 141만 8221가구, 부산 142만 7602가구, 인천 120만 5799가구 등으로 나타났다.
사상 첫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한 달, 우리 사회는 어떤 변화를 마주했을까? 먼저 가계에 숨통이 트이자 소비시장도 차츰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개개인의 삶에 약간의 여유가 생기면서 전통시장을 중심으로 동네 상권이 들썩이고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이 사람들의 소비 심리를 움직여 동네 상권도 되살아난 것이다. 14조여 원이 다 풀리는 8월 31일까지 이런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더 큰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으로 민간 소비가 늘어 매출이 증가하면 기업 생산도 늘어난다. 긴급재난지원금이 경기 회복의 마중물이 되는 셈이다. 물론 긴급재난지원금이 장밋빛 미래만 부르는 것은 아니다. 반짝효과에 그칠 경우 부작용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도 긴급재난지원금이 꺼져가는 동네 상권의 불씨를 되살려놓은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긴급재난지원금 이렇게 사용했다
긴급재난지원금 신청은 신용·체크카드 충전 방식의 경우 각 카드사 누리집과 카드사 연계 은행 창구에서 6월 5일까지 받았다. 읍·면·동 주민센터 등을 통한 지역사랑상품권과 선불카드 신청은 그 후에도 접수한다. 6월 4일부터는 주소지를 바꿔 긴급재난지원금을 쓸 수 있다.
종이형 지역사랑상품권의 유효기간만 발행일로부터 5년이다. 나머지 신용·체크카드 포인트, 모바일형 지역사랑상품권, 선불카드는 8월 31일까지 소진해야 하며 남는 돈은 국고로 환수된다.
지급이 막바지에 다다른 긴급재난지원금은 기대한 만큼 효과를 내고 있을까. 현금 지원을 받은 저소득층과 평범한 서민층은 긴급재난지원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알아봤다. 긴급재난지원금 한 달, <공감>이 다양한 계층의 수도권 지역 시민들을 만났다.
현금 지원 저소득층 “몇 달이나마 먹고사는 걱정 덜었다”
“큰 시름 놨다 아이가. 우리 같은 사람에겐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 아이겠나. 지원금 받자마자 식료품부터 샀다 안 카나.” 일산의 한 동네 마트에서 만난 70대 장 씨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다. 장 씨 할머니는 5월 초 경기도에서 10만 원, 고양시에서 5만 원을 선불카드로 받았다. 며칠 뒤에는 40만 원이 본인의 수급 통장으로 입금됐다. 생각지도 못한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현금 지급에 장 씨 할머니는 “안 먹어도 배부르다 안 카나” 하며 웃는다.
장 씨 할머니가 받은 재난지원금은 모두 55만 원. 재난지원금을 받은 지 한 달이 돼가는데 아직 10만 원을 채 못 썼다는 대답이다. 사용한 내용을 묻자 쌀, 잡곡, 과일 등 모두 생필품뿐이다. “뭐라 카노, 내 돈보다 더 아껴 쓰야지.” 장 씨 할머니는 단 1원도 허투루 쓰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현금 지급된 재난지원금은 더욱 유용하게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늙은이라 병원도 자주 가고, 은근히 돈 들어갈 데가 많데이.” 코로나19로 일거리가 줄어든 딸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장 씨 할머니. 재난지원금 덕분에 몇 달이나마 먹고사는 걱정을 덜었다며 계속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70대 2인 가족 “할아버지 힘 좀 내라고 소고기도 샀다”
“받자마자 장 보러 왔다.” 5월 22일 오전 주민센터에서 재난지원금을 선불카드로 받았다는 70대 노부부는 그길로 양재 하나로마트를 찾았다. 노부부가 받은 금액은 2인 가구로 60만 원이다. 이날 쌀, 보리, 찹쌀 등 잡곡류와 한우, 과일, 채소 등 식료품을 한 바구니 담았다. 17만 3600원이 선불카드에서 결제됐다.
“우리 할아버지가 건축 자재상을 하는데, 코로나19 터지면서 손님이 뚝 끊겼다. 할아버지 힘 좀 내라고 소고기도 샀다.” 듣고 있던 할아버지가 한마디 거든다. “모두가 어려울 때다. 정부에서 전 국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한 목적에 맞게 민생경제가 살아나도록 소비를 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 우리 농산물을 사러 왔다.” 이후 선불카드 사용에 대해 “8월 말까지 천천히 장 보면서 쓸 계획”이라고 답했다.
경기 화성에 사는 3인 가족 “우리 가족에게 활력과 즐거움을 주었다”
“경기도와 화성시 지원금은 아이의 학원비 등으로 다 썼고, 현재 정부 지원금만 40만 원 정도 남았다.” 전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시·군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한 경기도 화성에 사는 3인 가족 서준이네는 정부 지원금까지 더해 모두 159만 7000원을 받았다. 4월 14일 90만 원을 먼저 충전받고 동네 슈퍼마켓에서 처음 사용했다. 소득에 큰 변화가 없는 서준이네에 지원금은 오히려 소득의 일시적 증가를 가져왔다.
“우리 가족이 먹는 것을 좋아한다. 다양한 배달 음식, 특히 평소에는 먹지 않던 한우나 참치회 등을 지원금으로 사먹으며 간만에 호사를 누렸다.” 여기에는 경기도와 화성시 지원금은 사용처에 제한이 많지만, 정부 지원금은 중소 마트나 정육점 등 사용 폭이 넓어서 훨씬 다양한 방식으로 쓸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코로나19로 우울하고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던 중 우리 가족에게 나름의 활력과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5월 18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에서 시민들이 지원금 접수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
서울에 사는 3인 가족 “이젠 기본소득을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초등학생 아이가 집에 있어 삼시 세끼를 해야 했다. 배달 음식을 비롯해 식비와 외식비의 비중이 확실히 늘었다.” 서울 화곡동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둔 양동명 씨는 정부 재난지원금 80만 원을 식료품 구입과 식비로 절반가량 사용했다고 말했다. 5월 25일 기준으로 잔액은 5만 원 남짓. 실용성을 중시하는 양 씨는 평소 소비 형태 그대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쓰고 있다. 다만 긴급재난지원금의 취지에 맞게 최대한 빨리 소진하려 애쓴다. “예정되어 있던 건강검진에 30만 원을 썼다. 병원비 결제가 되기에 우선 사용했다.” 재난지원금을 사용하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고 말한다. “처음엔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소비 진작이 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것은 분명했다. 이젠 기본소득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대형 마트의 사용 제한도 한도를 정해서 완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재래시장 상인들 “반짝효과 넘어 경제 활성화 버팀목 됐으면”
5월 25일 찾아간 영천시장은 월요일 오후 3시인데도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영천시장은 ‘안심시장’이다. 지금도 2, 3일 간격으로 방역을 하고 있고, 코로나19가 종식될 때까지 계속 할 방침”이라며 영천시장상인회 고승호 총무는 ‘안전’을 강조했다. 영천시장은 50년 이상 된 재래시장으로, 서울 독립문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 식품부터 문구, 헌책방까지 다양한 점포가 들어선 시장은 코로나19로 활기를 잃었었다. “코로나19가 창궐하고 2개월간 정말 고전했다. 그야말로 반토막이 났다.”
그렇다면 재난지원금을 지원하는 요즘은 어떨까. “생활 속 거리두기와 서울시 재난긴급생활비가 풀리면서 조금씩 활기가 돌더니 정부 재난지원금까지 지급하자 활력을 되찾고 있다.” 20, 30%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고 총무가 귀띔한다. 영천시장에서 7년째 선식과 약초를 팔고 있는 고 총무는 “재난지원금이 풀리면서 생필품과 쌀, 채소, 과일, 정육 등의 소비가 크게 늘어났다. 반면 떡볶이나 호떡 같은 분식의 매출은 여전히 움츠려 있다”고 시장 상황을 전했다. 회복 분위기에 대해서는 “쌀 한 포대 사던 사람이 두 포대 사고, 돼지고기 사던 사람이 소고기를 사간다”며 재난지원금이 지역 시장경제에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결제 형태는 선불카드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지역상품권이 그다음이다.
고 총무는 재난지원금이 몰고 온 훈풍이 반갑지만 불안은 여전하다고 말한다. “벌써부터 8월 이후가 걱정스럽다. 정부가 준 재난지원금을 다 쓰고 나면 어찌 될지 사실 불안하다. 재난지원금이 반짝효과에 그치지 말고 서민경제 활성화에 버팀목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심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