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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5월 28일 기준금리를 0.5%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3월 16일에 0.5%포인트 내린 데 이어 두 달 만이다. 사상 최저치를 다시 갈아치웠다. 한은이 2020년에 벌써 0.75%포인트나 인하한 것은 한국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은은 2020년 성장률이 -0.2%로 떨어지고 상황이 나쁘면 -1.8%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2월 2.1% 성장하리라고 전망했던 것을 3개월 만에 바꾼 것이다.
코로나19의 영향이 컸다.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사람 왕래가 많이 줄었고 자영업자와 일용노동자들의 손실이 컸다. 국가 간 무역도 급감해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심한 타격을 받고 있다. 노무라증권은 한국의 2020년 성장률이 -6.7~-12.2%로 곤두박질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전 전망치 1.4~0.2%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 -1.2%),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1.5%), 무디스(-0.5%) 등도 뒷걸음질을 예고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술 더 떴다. 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취업자가 45만 명가량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서비스업이 31.7만 명, 제조업 8만 명, 건설업 2.9만 명이다. 이 전망들이 맞다면 100만 명 넘는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한은이 서둘러 금리를 또 내린 이유는 이런 상황이 현실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정부가 국가 빚이 늘어난다는 일부 비판에도 5월 13일부터 전 가구에 40만(1인 가구)~100만 원(4인 가구 이상)의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 것도 마찬가지의 고육지책이었다.
골목상권 매출액 20% 이상 늘어
긴급재난지원금으로 12조 2000억 원이 풀리면서 전통시장과 정육점 등 골목상권 매출액이 20% 이상 늘어나고 있다. 이 자금이 다 풀리는 8월 31일까지 이런 호조는 이어질 것이다. 12조 원이 풀리면 단순 계산으로 그만큼 매출이 늘어난다(재정승수=1). 문제는 그다음이다. 골목상권에 풀린 12조 원이 다른 매출로 이어져, 장터 떡집 매출이 100만 원 늘었다면 그 주인이 늘어난 매출의 일부(20%)로 소고기를 사고, 정육점에선 그렇게 늘어난 것의 일부로 선풍기를 사면, 12조 원으로 늘어난 매출은 24조 원(승수=2)도 되고 36조 원(승수=3)도 될 수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가 불황 때 정부에서 지출을 적극적으로 늘려 멈춰 선 경제를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는 바로 정부 재정승수가 1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1920년대 대공황이나 IMF 외환위기 때 재정승수는 1을 훨씬 웃돌아 정부 지출 확대로 위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
정부 지출로 민간 소비가 늘어 매출이 증가하면 기업 생산도 늘어난다. 매출 증가로 이익이 나면 기업들이 투자도 늘린다. 투자를 하려고 하는데 이자율이 높다거나 투자 자금이 없을 때는 금리를 낮추고 대출을 늘리면 된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두 번이나 인하하고, 은행들이 중소상공인들에 대한 대출 문턱을 낮추는 이유는 이를 위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금리 인하와 자금 지원 같은 대책이 효과를 내려면 전달 경로(Transmission Mechanism)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금리 인하가 투자 증가로 이어져 성장률 상승으로 연결되려면 크게 네 가지 경로를 거쳐야 한다. ▲금리 인하→투자비용 감소→투자 증가 ▲금리 인하→원·달러 환율 상승(원화 가치 하락)→수출 증가→투자 증가 ▲금리 인하→주가 상승→실질자산 증가(부의 효과)→소비 증가→투자 증가 ▲금리 인하→부동산 가격 상승→실질자산 증가(부의 효과)→소비 증가→투자 증가 등이 그것이다.
금리 인하가 효과를 내려면…
문제는 전달 경로 가운데 일부 또는 전체가 작동하지 않으면 금리 인하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상되는 부작용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한미 금리 차 축소로 한국 증시에 들어온 외국 자금이 빠져나가는 경우다. 외국 자금 유출은 주가 하락으로 이어져 기대했던 자산 효과가 사라진다. 또 하나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처럼 저금리→저물가→저성장의 축소 균형 및 디플레이션(통화 수축)이 출현할지 모른다는 우려다.
불황 때 정부 역할을 강조했던 케인스도 투자는 이자율의 영향을 받지만 기대수익률도 큰 변수라고 지적했다. 투자해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기대만 있으면 금리가 아무리 높아도 투자한다. 과거 고도성장 때 연 30~50%가 넘는 사채를 쓰더라도 투자 열기는 매우 뜨거웠다. 반면 대출금리가 3% 아래로 떨어졌어도 미래가 불투명해 수익 내기가 어렵다고 생각하면 투자하려고 하지 않는다. 대출받아 ‘인기 지역’ 아파트를 살지언정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분위기에선 금리 인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잠잠하던 코로나19가 일부 지역의 집단감염으로 다시 비상등이 켜졌다. 긴급재난지원금이 경제를 다시 돌리는 마중물이 되고, 금리 인하가 마중물을 받아 물을 계속 뿜어 올리는 펌프가 되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펌프가 작동하지 않아 마중물이 말라붙을 경우 반짝 경기가 졸아들면서 금단현상으로 인한 고통이 더 커지는 것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홍찬선_ <한국경제> <동아일보> <머니투데이>에서 28년간 기자를 지냈다. 저서로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임시정부 100년 시대 조국의 기생충은 누구인가>, 역서에 <비즈니스 경제학> <철학이 있는 부자> <부자가 되려면 부자에게 점심을 사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