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통일전망대 내 6.25전쟁 기념관에서 한 어린이가 지나가고 있다. | 한겨레
매해 6월은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친 이들을 기리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정부는 현충일과 6·25전쟁일, 제2연평해전 등이 있는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지정하고 관련 행사를 개최했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이후 ‘따뜻한 보훈’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에 ‘국가를 위한 헌신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나라’를 포함시켰다. 이 과제는 5대 국정목표 가운데 ‘국민이 주인인 정부’에 포함되어 국가보훈처를 중심으로 꾸준히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국가유공자의 집 명패 달아드리기 사업을 비롯해 참전명예수당 및 의료비 지원을 대폭 강화해왔다. 역대 정부 가운데 처음으로 2018년부터 국가유공자 사망 시 대통령 명의 근조기를 증정하기도 했다. 2020년에도 정부는 보훈 패러다임의 변화와 혁신을 강도 높게 추진하고 ‘보훈 심사체계’와 ‘의료·요양·안장 서비스’ 개선 등 보훈 가족이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성과 창출에 주력하기로 했다.
2020년은 6·25전쟁 70주년이 되는 해라 ‘호국보훈’의 의미가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보훈처는 1월 21일 ‘2020년 주요 업무계획’을 통해 “6·25전쟁 70주년 사업은 전 국민을 포괄하는 ‘사람 중심’의 추모와 평화의 장이 되도록 계획하고, 희생자에 대한 추모로 상처를 치유하고 지역·세대·계층을 떠나 포용과 화합의 장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훈처는 ‘함께 이겨낸 역사, 오늘 이어갑니다’라는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6·25전쟁 70주년 사업의 의미와 가치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자 발족한 ‘국민 서포터즈’ 소식부터 코로나19 시대에 맞춰 랜선(온라인상)으로 호국 영웅을 기리는 행사 이야기, 더 똑똑해진 보훈 서비스 등 정부가 진행하는 보훈 관련 정책과 행사 등을 살펴본다.
▶캠벨 에이시아 양이 미국 참전용사 찰리 위트워 씨에게 보낸 편지
“영웅들 영원히 잊지않는 게 보훈이죠”
5월 14일 국무총리 직속 6·25전쟁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는 6·25전쟁 70주년 사업의 의미와 가치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자 ‘6·25전쟁 70주년 국민 서포터즈’(이하 서포터즈) 발대식을 개최했다. 6·25전쟁 70주년 사업에 관심 있는 전국 고교생과 대학생, 일반인, 외국인 등 총 70명으로 구성된 서포터즈는 2020년 12월 말까지 활동하며 국군 및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세계 평화의 메시지를 널리 알리게 된다. ‘호국보훈’이란 무엇일까. 서포터즈 공동단장을 통해 그 답을 들어봤다.
▶네덜란드 참전용사 허먼 텐 셀담 씨와 캠벨 에이시아 양
6·25전쟁 70주년 국민 서포터즈 공동단장 캠벨 에이시아 양
“코로나19로 저 역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거든요.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에게 이메일, 영상통화 등으로 자주 연락드렸어요. 이렇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잖아요. 늦기 전에 마음을 직접 전하고 표현해야 해요.”
앳된 목소리의 주인공이 들려준 이야기는 큰 울림을 주었다. 서포터즈 공동단장 캠벨 에이시아(13) 양의 이야기다. ‘6·25 박사 소녀’ ‘꼬마 외교관’ ‘참전용사들의 손녀’. 에이시아 양을 부르는 세간의 별명들이다. 한국인 어머니와 캐나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그는 미국·네덜란드·캐나다 등 세계 각국의 유엔(UN) 참전용사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등 감사를 전하며 보훈을 실천하고 있다.
참전용사들 바람은 ‘평화 그리고 기억’
계기는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6년과 2017년 H2O품앗이운동본부에서 주최한 참전용사 감사편지 쓰기 및 말하기 대회(이하 대회)에서 2년 연속 대상을 받았다. 2017년 부상으로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를 방문해 참전용사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주어졌다. “제가 부산 유엔기념공원 근처에 살아서 어릴 때부터 그곳에 자주 갔거든요. 유치원 때인데 공원 내 ‘기억의 벽’에 아빠, 삼촌, 할아버지와 비슷한 이름들이 적혀 있어 찾아봤던 기억이 있어요. 그 뒤로 대회 소식을 접했고, 할아버지들을 직접 뵐 기회까지 얻었어요.”
처음에는 역사 속 인물들을 만난 것 같아 신기하기만 했다. 참전용사들과 직접 만난 뒤 이메일, 전화 등으로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깨달은 게 있었다. 에이시아 양은 “할아버지들이 바라는 건 우리 모두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것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의 역사와 그 속에 있던 사람들을 기억해주는 거예요”라고 강조했다. 그 뒤로도 각종 6·25전쟁 행사에 열심히 참여하며 참전용사들과 그들의 역사를 알리는 데 앞장섰다.
▶2019년 6월부터 12월까지 유엔평화기념관에서 열린 ‘네덜란드 유엔 참전용사 특별 사진전’에 참석한 캠벨 에이시아 양 | 캠벨 에이시아
참전용사 이름·나이 찾아드리기 동참
어느 날, 네덜란드에 방문했을 때 만난 허먼 텐 셀담 씨한테서 부탁을 받았다. 자신이 소속돼 있던 부대와 함께 싸운 카투사 20명의 이름을 찾아달라는 내용이었다. 에이시아 양은 유튜브, 당시 신문 기사 등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네덜란드 한국전 참전용사회(VOKS)에서 보내온 단서(카투사의 명패가 있는 강원도의 한 교회 사진)와 유엔기념공원 ‘턴투워드 부산(Turn Toword Busan)’ 행사에서 만난 6·25전쟁 당시 카투사로 참전했던 최병수 씨,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고한빈 학예사 등의 도움으로 현재까지 총 13명의 이름을 찾아냈다. “허먼 할아버지가 기쁨을 감추지 못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나가는 참전용사 모임에서도 자랑했다고 해요.”
최근엔 유엔기념공원 동판에 새겨진 캐나다 출신 엘리엇 고든 매케이 이병의 나이를 수정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6·25전쟁 때 전사한 매케이 이병은 당시 17세였다. 한데 참전을 위해 사촌 형 신분을 이용해 한국에 온 탓에 묘비 동판에 18세로 기록돼 있었다. 에이시아 양은 그의 가족에게 ‘묘비 동판을 수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냐’는 연락을 받고, 유엔기념공원을 비롯해 캐나다 대사관 측에 문의했다. 결국 매케이 이병 가족에게 새 동판 사진을 찍어 보낼 수 있었다.
2019년 5월 열린 제14회 국회동심한마당에서는 캐나다에 거주 중인 에이시아 양의 할머니, 할아버지, 사촌 등 가족들이 모여 한국과 캐나다의 우정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6·25전쟁 때 전사한 참전용사들을 추모하는 행사도 열었다. 2019년 6월부터 12월까지 유엔평화기념관에서 열린 ‘네덜란드 유엔 참전용사 특별 사진전’에서는 에이시아 양이 네덜란드 참전용사를 통해 전달받은 관련 사진 등이 전시되기도 했다.
“‘참전용사들의 손녀’ 되고 싶어요”
에이시아 양은 지금도 참전용사 30여 명과 손편지, 이메일, 영상통화 등으로 안부를 묻고 지낸다. 그동안 만난 참전용사 가운데서도 특별히 기억나는 인물이 있다. “미국 참전용사 찰리 할아버지가 기억에 남아요. 제가 제일 처음 만난 참전용사인데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있다고 하셨어요. 밤마다 전쟁 생각이 나서 쉽게 잠들지 못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편지도 써드리고, 춤과 노래가 담긴 영상도 보냈는데 덕분에 많이 좋아졌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뿌듯했어요.”
에이시아 양이 이런 활동을 꾸준히 펼치는 이유는 뭘까. 그는 “참전용사들을 만나며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어요”라고 말했다. 6·25전쟁은 ‘역사 속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 아픈 역사가 있었기에 우리가 있고, 반드시 그 역사가 기억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지낸다. “‘호국보훈’이요? ‘기억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6·25전쟁을 ‘잊힌 전쟁’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어요. 그러면 참전용사들은 잊힌 영웅이 되잖아요. 저는 이분들을 영원히 잊지 않는 것, 기억하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서는 게 보훈이라고 생각해요.”
6·25전쟁 70주년을 맞은 2020년은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그만큼 서포터즈 공동단장으로서 에이시아 양의 포부도 특별하다. “서포터즈들과 함께 참전용사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역사를 잘 기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제 별명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참전용사들의 손녀’예요. 할아버지들의 손녀가 되어 그분들의 희생을 기리는 일을 계속 해나가고 싶어요. 우리 모두 그분들이 쓴 역사를 기억할 수 있게 말이죠.”
김청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