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오션 로보틱스의 자외선 소독 로봇이 병실을 소독하는 모습│블루오션 로보틱스
로봇에게 코로나19는 절호의 기회일지 모르겠습니다. 생물학적 전염과 무관한 금속과 전기적 존재인 그들에겐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쓸모를 제대로 보여줄 시간이니까요. 실제 감염 확산 시기에 로봇 이용도 늘어난 듯 보입니다.
온라인 매체 <지디넷(Zdnet)>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로봇 소프트웨어 회사 ‘브레인 코프(Brain Corp)’는 3월 자신의 고객사가 로봇을 활용하는 비율이 전년 동월 대비 13.6%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브레인 코프는 자율 청소 로봇의 두뇌에 해당하는 운영체제를 개발하는 회사입니다. 이 회사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로봇은 코로나19 확산 기간 이용량이 늘었을 뿐 아니라 분야도 넓어졌다고 합니다. 기존에는 병원, 공항 등이 주된 활동 영역이었는데 식료 잡화점까지 영역을 넓혔습니다.
생물학적 질병과 무관하기에 로봇은 감염병 확산 방지에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국제로봇연맹(IFR)은 로봇이 코로나19와 사투를 돕고 있다면서 덴마크의 로봇 개발사 ‘블루오션 로보틱스(Blue Ocean Robotics)’의 자외선 소독 로봇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습니다. 이 로봇은 병원이나 극장 등을 자율적으로 다니면서 강력한 자외선을 쪼아 미생물 등을 박멸합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중국 우한 등의 병원은 이 로봇을 2000대 도입해 소독에 썼다고 합니다. 사람이 소독 등을 맡는다면 오히려 바이러스를 전파할 위험이 있지만 로봇은 그런 위험에서 자유롭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로봇 도입 활발
이런 특징은 병원에만 유용한 것은 아닙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5월 자원 재활용 분야에서도 코로나19 기간 로봇의 역할이 빛났다고 전했습니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던 포장재나 페트병 등을 쓰레기에서 고르고 분류하는 작업은 평시에는 사람이 맡기에 단지 고된 일일 뿐이지만 무서운 감염병이 도는 중엔 극도로 위험한 일이 되어버립니다. 이를 자동 분류하는 로봇을 만드는 미국 콜로라도의 ‘에이엠피 로보틱스(AMP Robotics)’는 도입 물량이 크게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이 회사 대표인 마타니야 호로비츠는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과거에 한두 대 놓아볼까 하던 시설들이 이젠 여러 대가 필요하다. 변화가 무척 빠르다”고 말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사람이 많이 다니는 현장의 자동화가 가능한 업무 영역에선 로봇 도입이 활발하게 일어났습니다. ‘심브 로보틱스(Simbe Robotics)’는 상품점의 매대를 확인하고 비어 있는 제품을 가져다 놓는 자율 로봇, 탤리(Tally)를 생산하는데 지금 그 유용성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고객이 자주 찾는 식료품 매장 등에서 제품을 가져다 놓는 사람은 특히 감염 위험이 클뿐더러 다른 이들에게 옮길 위험도 있습니다. 노동 집약적인 물류업계에서도 로봇을 활용하면 노동자 사이보다 효과적인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합니다.
일부 영역에선 코로나19 기간에 일시적으로 늘어난 폭발적인 업무량을 로봇이 대체해 감당하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여행과 숙박업계의 상담 업무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각국이 이동 제한 정책을 펴면서 비행기나 호텔 예약 등을 변경하거나 취소하는 문의가 폭주했습니다. 미국 기술 매체 <벤처비트>에 따르면, 한 캐나다 항공사의 경우 전화 대기시간이 무려 10시간에 이른 적도 있었다고 하네요. 상담원의 업무량도 크게 몰리는 가운데 인공지능 상담원이나 채팅봇(채팅 방식을 통해 고객 문의를 접수하고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로봇) 등에 눈을 돌린 회사도 많아졌습니다. 인공지능 상담원을 세계 1만 8000개 브랜드에 납품하는 라이브퍼슨(LivePerson)이라는 회사는 <벤처비트>에 2월 중반 이후 자사 인공지능의 대화량이 전체적으로 20% 증가했으며 특히 항공사와 호텔업계는 각각 96%, 130% 폭증했다고 전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확산 초기에 경험했듯 콜센터 상담원은 특히 코로나19처럼 호흡기를 통한 감염병에 취약한 업무 환경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인공지능 상담원은 이런 면에서도 장점이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대량 실업 등 또 다른 위기의 원인 될 수도
하지만 로봇의 확산이 모두에게 반가운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가장 큰 걱정은 ‘일자리’ 문제입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단순노동이나 사무직을 중심으로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뺏으리라는 우려는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는 로봇에게 분명한 명분을 세워주고 있습니다. 방역이나 재활용 쓰레기 분리 등의 사례처럼 인간이 아닌 로봇이 일을 맡는 게 오히려 안전하고 필요하다는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지요.
감염병 기간 동안 로봇을 도입한 소매업계, 물류업계, 고객상담업계 등은 위기가 끝나고 나면 이전만큼 사람을 다시 고용할까요? 국제로봇연맹을 비롯한 여러 로봇 회사들은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도울 뿐이며, 허드렛일을 대신해 인간은 보다 고급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실제 인간과 로봇이 공생하는 환경을 만들지 못한다면 감염병 위기가 끝났을 때 이미 예상되는 경기 후퇴의 충격이 대량 실업으로 더 심해지리라는 사실입니다. 로봇이 실제 인간의 도우미가 될지, 또 다른 위기의 원인이 될지 살펴볼 일입니다.
권오성_ 2007년 <한겨레>에 입사해 미래, 과학 분야를 맡던 중 뉴욕 시러큐스대학으로 연수를 떠나 컴퓨터 기술과 저널리즘의 융합 분야 석사 과정을 마쳤다. 인공지능이 사회에 가져올 영향 등에 관심이 많다. 지은 책으로 <미래와 과학>(인물과사상사, 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