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론 누리집/ 지니 누리집
얼마 전 음악 시장에 큰 ‘사건’이 생겼다. 한국 음원 시장의 절대 강자로 여겨지던 멜론 서비스가 앞으로 실시간 차트를 없앤다는 내용이었다. 주요 내용은 크게 세 개다. 먼저 차트 순위가 사라진다. 그동안 사재기나 음악 시장의 불균형, 열성 팬(팬덤)의 과도한 경쟁의 원인으로 ‘순위’를 지목한 것이다. 상반기 중에 순위를 삭제한 새로운 차트가 등장할 예정이다. 다만 새로운 차트의 곡 배열 방식이 실제 순위일지 무작위 배열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무작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음으로는 실시간 차트가 일간 차트로 바뀐다. 실시간 차트는 한 시간 단위로 집계해 순위를 매기는 방식이었다. 이걸 24시간 기준으로 바꾼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계정당 1시간 내 1회 재생한 것을 순위에 반영했던 방식이 앞으로는 24시간 동안 한 곡, 1인 1회 재생 수를 순위에 반영하게 된다. 사재기나 총공(대규모 팬덤이 한 곡을 집중적으로 스트리밍하면서 순위를 올리는 방식)이 원천적으로 방지된다. 24시간 기준이라도 업데이트는 기존처럼 매시 정각에 이뤄진다.
마지막으로, 기본 재생 방식이 ‘무작위’로 설정된다. 기존에는 모든 차트의 재생 방식이 1위부터 순차적으로 설정되었다. 이제는 무작위 재생이 기본이 된다. 사용자들은 대부분 실시간 차트를 순차 재생으로 듣기 때문에 높은 순위의 곡이 더 많이 재생되는 불균형이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는데, 이 부분도 개선되는 것이다. 업계에선 상위권의 곡이 더 많이 재생되는 이런 구조가 순위 왜곡에 기여한다는 입장이었다.
▶플로 누리집/ 바이브 누리집
멜론은 왜 실시간 차트를 폐지했을까
현재 한국 음원 서비스의 시장 점유율은 멜론 40.3%, 지니뮤직 24.6%, 플로 18.5% 순으로 짜여 있다(코리안클릭 집계, 2020년 1월 실사용자 기준). 여전히 멜론이 점유율 1위지만, 과거에 비해 영향력이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게 업계 평판이다. 실제로 2위와 3위를 합하면 1위 멜론을 뛰어넘는 수준이므로 사실상 멜론의 시장 지배력은 점점 약화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멜론의 결단은 이후 음악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얼마 전엔 네이버의 바이브가 ‘내돈내듣’(내 돈은 내가 듣는 음악에) 캠페인을 시작했다. 스트리밍(실시간 재생) 업계의 불합리한 수익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뜻이다. 이 안에 대해 업계에서는 여러 의견이 교차했다. 어떤 곳에서는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실제로 큰 변화가 없는데 바이브가 서비스의 포지셔닝(기업·제품 등의 마케팅 대상이 잠재 고객들에게 긍정적으로 인식되도록 하는 일)과 마케팅을 위해 메시지만 던졌다는 의견도 있고, 한편으론 긍정적인 변화가 벌어질 수 있는 신호탄으로 이해하기도 했다. 중요한 건 어쨌든 오랜 시간 고착화된 한국 음원 시장의 지형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멜론의 발표 후 지니는 ‘실시간 차트를 유지하며 개선하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플로는 사실 멜론보다 먼저 실시간 차트 대신 24시간, 일간 차트를 운영 중인데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플로의 입장에서는 서비스 홍보보다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국내 서비스에서 이런 변화가 진행되는 동안 스포티파이의 국내 진출이 초읽기에 들어가고, 유튜브 뮤직의 점유율은 계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안팎으로 새로운 경쟁 구도가 그려지는 셈이다.
따라서 멜론의 실시간 차트 폐지는 이런 국제적인 지형도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과연 멜론은 왜 자신의 시장 점유율을 위협할 수도 있는 실시간 차트 폐지를 결정했을까? 일단 국내 음원 시장이 포화상태라는 걸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10년 이후로 음원 시장의 전체 성장률이 드라마틱하게(극적으로) 변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독점 상태인 멜론으로서는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보다 시장을 더 확장하는 게 중요했을 것이다.
▶바이브의 ‘내돈내듣’(내 돈은 내가 듣는 음악에) 캠페인
플랫폼 주도형으로 바뀌는 음원 시장
그렇다면 시장은 왜 확장되지 않을까? 실시간 차트가 아이돌 중심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일반인의 관점에서 아이돌 팬덤은 규모가 매우 큰 것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전체 음악 소비자로 확대해보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니다. 게다가 팬덤은 폐쇄적이다. 팬덤 자체가 확장되기엔 여러 진입 장벽들이 높다. 이것은 아이돌 팬덤에 가입하고, 팬 활동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한계로 작용한다. 이런 맥락에서 실시간 차트가 아이돌 음악 위주로 재편되자 한국 음원 서비스의 점유율은 파이 나눠 먹기처럼 여겨졌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가장 큰 피해를 입고 누가 이득을 볼지도 궁금하다. 일단 예상하듯, 가장 큰 피해는 아이돌 팬덤이 받을 수 있다. 차트 공략은 팬덤 활동 가운데 매우 중요한 이슈다. 그런데 이제는 팬덤이 멜론 차트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점진적으로 팬덤이 차트와 서비스에서 빠져나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실시간 차트를 유지하기로 결정한 지니가 수혜를 입을 수도 있겠다.
다만 멜론의 결정은 멜론의 단독 결정이 아니라 모회사인 카카오의 전체 사업(비즈니스) 구조 안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음원 시장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과 카카오의 콘텐츠 기반 비즈니스 구조가 만나면 콘텐츠 기업으로서 카카오라는 선순환 구조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카카오와 카카오M의 관계에서 음악을 포함한 웹툰, 영상 등의 콘텐츠 비중이 매우 높아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앞으로 음원 시장은 독립적인 시장이 아니라 콘텐츠 시장이라는 큰 관점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콘텐츠 비즈니스는 생산, 유통, 판매의 영역에서 구독, 부가가치, 확장성이 중요한 사업 모델이다. 음악이 어떤 미디어와 결합해 시너지를 내게 될지 궁금해지는 게 자연스럽고, 이 흐름에서 음악 시장의 균형이 새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기존 통신사 중심의 음악 시장이 플랫폼(다양하고 방대한 정보를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기반 서비스) 주도형으로 바뀐다는 얘기다. 이 변화에서 기획사와 아티스트들은 어떤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
차우진_ 음악평론가. 미디어 환경과 문화 수용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청춘의 사운드> <대중음악의 이해> <아이돌: H.O.T.부터 소녀시대까지…> <한국의 인디 레이블> 등의 책을 썼고, 유료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에서 <음악 산업, 판이 달라진다> 리포트를 발행했다. 현재는 ‘스페이스 오디티’라는 스타트업에서 팬 문화, 콘텐츠, 미디어의 연결 구조를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