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5월 11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금융보안원·결제원, 신한은행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금융 데이터 거래소 출범식을 개최했다.
금융 데이터 거래소 출범
디지털 경제의 핵심인 데이터를 안전하게 사고팔 수 있는 금융 데이터 거래소가 5월 11일 문을 열었다. 정보를 구입한 기업은 이를 토대로 맞춤형 상품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데이터 활용을 못하는 기업은 경쟁사에 뒤처질 수밖에 없어 산업계에 소리 없는 데이터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정부는 이날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금융위원회, 금융보안원·결제원, 신한은행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금융 데이터 거래소 출범식을 했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기념식 축사에서 “코로나 맵·마스크 알리미 앱 등을 통해 데이터 개방, 결합, 활용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위기를 혁신의 기회로 바꾸는 데이터 기반의 포스트 코로나 디지털금융 혁신전략을 가속화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보안원이 운영하는 데이터 거래소는 시범 운영을 거쳐 연말에 본운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금융 정보뿐 아니라 통신·유통 등 일반 상거래 기업 모두가 참여할 수 있다. 그동안 여러 기업이 마케팅이나 전략 수립을 위해 나라 밖에서 사들이던 각종 정보를 이제 국내에서 마련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국가 데이터 플랫폼의 중추
앞서 정부는 5월 7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제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경제 중대본) 회의에서 공개한 ‘한국판 뉴딜’ 추진 방향에서 10대 중점 과제로 데이터 수집·활용 확대를 제시한 바 있다. 금융·의료·교통·공공·산업·소상공인 등 6대 분야에서 데이터 수집, 개발·결합, 거래, 활용 인프라를 강화하고 활용을 활성화한다는 내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 3주년 특별 연설에서 “디지털 경제 시대를 선도해 나가려면 디지털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여러 인프라가 있지만 대표적인 게 데이터 인프라 구축”이라고 언급했다. 이번 금융 데이터 거래소 시범 운영은 디지털 인프라 구축의 하나에 해당한다. 이른바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이 1월 국회를 통과한 것이나 데이터 거래소가 출범한 것 모두 이런 ‘데이터 경제’ 정책과 맞물려 있다.
금융 데이터 거래소는 국가 데이터 플랫폼의 중추다. 데이터 검색부터 계약, 결제, 분석 등 유통에 필요한 전 과정을 원스톱으로 지원한다. 수요자가 원하는 데이터나 제공 형태를 공급자에게 직접 요청하는 등 수요자 중심의 거래 시스템도 제공한다. 데이터 경제를 활성화하려면 데이터의 수집·축적·활용이 필수인데, 데이터 거래소는 이를 위한 기반인 셈이다. 데이터 거래소가 있으면 금융회사 데이터 접근이 어려웠던 핀테크 업체들의 수요가 생긴다. 대량 자료(빅데이터)에 기반한 금융 분야 유통시장이 조성되면서 금융회사나 핀테크 회사, 창업 기업은 새로운 사업을 창출할 길이 마련됐다. 금융 소비자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개인에게 최적화한 상품과 서비스를 받아볼 가능성이 커졌다. 공공데이터와 연결할 수 있고, 국가 전체의 데이터 플랫폼으로 연결된다.
모든 데이터 안전하게 익명·가명 처리
데이터 거래소는 데이터를 파는 사람이 모이고, 사는 사람도 들어가는 곳이다. 데이터 거래소에는 예금과 대출 등 금융거래의 기본 정보를 갖고 있는 은행을 비롯해 소비지출 데이터가 축적된 신용카드회사, 신용정보회사, 일반 보안업체 등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은행은 ▲은행별 신용대출 정보 ▲대출상품 정보 ▲신용 및 담보대출 금리 정보 ▲은행 카드 이용 금액 정보를 데이터 상품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험사는 ▲보험 계약 현황 ▲보험금 청구 현황 ▲연령·성별·회사별 월평균 보험료를, 카드사는 ▲카드 매출 기본 통계 데이터 ▲가맹점 정보 ▲가맹점별 매출 비율 정보 ▲업종별 카드 매출 데이터 등을 상품으로 판매할 것으로 보인다.
모든 데이터는 안전하게 익명·가명 처리돼 제공한다. 8월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개인정보보호 조치가 법에 따라 제대로 이뤄졌는지 데이터 거래소가 확인한 뒤 정보를 전송할 수 있게 된다. 또 기업이 데이터를 사서 보유 데이터와 결합하는 작업도 금융보안원을 통해 할 수 있다.
이런 인프라가 있는 미국과 중국 등에서 핀테크 기업들이 발달했다. 기술이 있어도 데이터가 없으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상품으로서 가치를 가지는 금융 데이터는 무엇일까. 기존 금융 데이터는 신용평가를 위한 대출연체 정보 등 부정적(네거티브) 데이터가 주축이었다. 금융 데이터 거래소의 핵심은 소비·통신 활동을 비롯한 긍정적(포지티브) 정보다. 금융회사는 데이터 수요자이면서 공급자다. 관건은 데이터를 누가 잘 분석하는지다. 데이터 분석 능력이 경쟁력이 됐다. 데이터 거래소는 개별 데이터를 결합하는 전문기관이기도 하다. 데이터 중개를 통한 데이터 상품화를 돕는 역할과 함께 데이터를 안전하게 결합하도록 하는 역할도 한다. 운영을 맡은 금융보안원은 데이터 거래소 운영 주체면서 데이터가 빠르고 안전하게 거래될 수 있는 보안 지킴이 역할을 맡는다.
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도 크게 낮춰
금융위원회는 금융보안원과 신용정보원, 금융결제원을 데이터 전문기관으로 지정해 데이터 결합과 활용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금융위는 국내 금융 분야 데이터 유통이 초기 단계인 만큼 금융회사가 데이터 유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데이터 유통 가이드라인을 발간했다. 또 데이터 가격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하다는 점을 고려해 데이터 거래소를 통해 거래할 경우 데이터 바우처를 지원하기로 했다. 2020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예산 중 575억 원이 이에 배정됐다. 금융보안원은 과기정통부 협의를 통해 바우처 지원 전문기관 역할을 담당할 예정이다. 또 연말까지 시범 운영 기간에 거래 수수료도 받지 않기로 했다. 금융위는 4월 신한은행의 대량 데이터(빅데이터) 부수업무 신고를 받아들여서 관련 업무를 신고 없이 할 수 있도록 했다.
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도 크게 낮췄다. 받은 데이터를 데이터 거래소 안에서만 활용함으로써 결과만 반출할 예정이다. 또 데이터 거래소 자체적으로 보안관제를 실시해 정보 유출 피해를 사전적으로 차단할 방침이다. 신용정보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된 직후부터는 판매자가 요청할 경우 데이터의 익명·가명 처리도 지원할 수 있게 된다. 현재까지도 데이터에 개인 정보가 있다면 비식별화 조치를 해야 한다. 8월 5일 개정된 신용정보법이 시행된 이후부터는 가명 처리한 개인 신용정보를 지정된 데이터 전문기관(금융보안원)을 통해 결합할 수 있다.
데이터 가격 책정이 최대 관건
이 사업의 최대 관건은 데이터 가격이 얼마일 것이냐다. 주로 핀테크 등 신생기업이 수요자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데이터 거래에 적극 나서기 어렵다. 금융보안원은 데이터 가치를 측정하는 세 가지 시나리오를 내놨다. ▲유사한 데이터 자산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을 기준으로 가치를 책정하는 시장접근법 ▲데이터 생산과 대체에 필요한 모든 원가(인건비·소프트웨어·하드웨어 등)를 활용하는 비용접근법 ▲데이터 활용으로 얻는 이익과 비용이 예상되는 현금 흐름 가치와 동일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수익접근법이다.
이 밖에 회사가 제값에 데이터를 샀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사온 데이터에 오류가 있으면 분쟁의 소지가 생길 수도 있다. 금융보안원은 데이터 공급자가 상품 설명과 속성 정의를 정확히 제공하고, 공급자와 수요자 간 품질 평가에 대한 기준을 선합의할 것을 권하고 있다.
데이터 거래소가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다양한 생태계가 열릴 가능성은 크다. 데이터를 사고파는 데 데이터 적정값이나 상품화를 돕는 컨설팅 조직이나, 품질과 판매 적법성을 검토하는 유관 산업도 신산업으로 태동할 수 있다. 데이터 저장 및 처리를 위한 스토리지, 클라우드 서비스 업자도 데이터 거래소의 성공에 주목하고 있다. 정확한 데이터 분석은 ‘성공 비즈니스의 열쇠’다.
박유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