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거의 집에서 지낸다. 그런 지 5년쯤 된 것 같다. 서울에 살 때는 거의 집에 없었다. 집은 잠시 잠을 자는 곳이었다. 그마저 촬영 일을 하느라 몇 달씩 떠나기 일쑤였다. 오랫동안 집을 비웠다가 돌아오면 집은 서늘하고 어두웠다. 촬영이 없을 때는 집에 있으면서 잠에서 깨어나면 서둘러 집을 나갔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내키는 곳으로 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잤다. 그것이 나의 서울 생활이었다. 서울의 집은 좁고 답답했다. 서울에서 내 사정이 허락하는 집은 그랬다. 같은 월세를 내더라도 좀 더 넓고 집다운 곳에서 지내고 싶어 서울을 떠났다.
처음에 서울을 떠날 때는 멀리는 못 갔다. 광화문역에서 광역버스를 타면 30분쯤 걸리는 서울 근교로 집을 옮겼다. 같은 비용을 내고도 훨씬 넓고 깨끗하고 정비가 잘된 집에서 지낼 수 있었다. 창문도 몇 배는 커서 집 안으로 햇빛이 깊숙이 들어왔다. 지내다 보니 다시는 서울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정처 없이 서울의 거리를 쏘다닌 이유도 알게 되었다. 집이 싫어서였다. 서울을 떠난 뒤로 나는 집에 있으면서 장을 봐서 밥을 해먹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집에 필요한 물건을 하나씩 들이는 재미도 알아갔다.
서울에서 1인 가구의 주거 비용은 1인 가구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매우 가혹한 수준이다. 부모에게 도움을 받거나 고소득자가 아니고는 한 사람을 밝고 정한 자리에 오롯이 누일 수 없다. 밤새 웅크린 마음과 움츠러든 자존감을 어떻게든 돌보며 나는 매일 현관문을 열고 나가 서울을 전전했다. 촬영 일이 없을 때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내가 버는 돈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월세를 내고, 그러면서 집은 나를 힘들게 하고, 자꾸만 가난한 사람의 마음으로 나를 붙들어 매고.
2016년에는 서울에서 가장 먼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트럭에 짐을 싣고 완도로 가서 날씨 때문에 뜨지 못하는 배를 나흘간 기다렸다가 바다가 잠잠해진 사흘째 되던 날 배에 트럭을 싣고 제주로 향했다. 글을 쓰는 일이 직업이다 보니 가능한 일이었다. 대신 서울로 출근해야 하는 촬영 일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제주에서는 2년을 살았고, 지금은 부산에 살고 있다. 부산에서도 남쪽에 위치한, 하루 한 번 도개교가 열려 차들의 운행이 멈추는 영도가 내 거처다. 그사이 나는 혼인신고를 해서 법적으로 2인 가구의 세대주가 되었고, 서울에서 1인 가구로 10평 다세대주택에 살며 지불했던 것과 똑같은 (만 원 단위까지 똑같다) 비용을 영도에서 주거비로 사용하고 있다. 서울에서 멀어진 만큼 집의 평수가 늘고 방의 개수와 거실의 크기가 달라졌다. 이제 나는 서울로 가서 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다시는 서울로 돌아가지 못하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마음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하고 나의 존엄을 해치지 않는 환경에서 살고 싶다. 그게 내가 죽기 전까지 하고 싶은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이렇게 밖으로 표현하면 다양한 반응을 마주하게 된다. 좋은 반응보다는 딱히 좋다고는 할 수 없는 반응이 더 많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노동의 대가로 주는 비용을 떠나 생활을 생각할 수 없다. 내가 선택한 일이 나에게 주는 노동의 대가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그러니까 5년쯤 걸린 셈이다. 나는 문을 닫고 있으면 안전하고 편안하게 여겨지는 집에 살기 위해 서울을 떠났다. 집을 두고 밖을 떠도는 대신 집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유진목_ 시인. 2016년 시집 <연애의 책>을 낸 이후 시집 <식물원>, 산문집 <교실의 시> <책이 모인 모서리 여섯 책방 이야기> 등을 썼다. 부산 영도에서 서점 ‘손목서가’를 운영하고 있다.
K-공감누리집의 콘텐츠 자료는 「공공누리 제4유형 : 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의 조건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이 가능합니다.
다만, 사진의 경우 제3자에게 저작권이 있으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콘텐츠 이용 시에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해야 하며, 위반 시 저작권법 제37조 및 제138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습니다.
[출처] K-공감누리집(gonggam.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