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것은 인류 공통의 기본적 욕구다. 국민 생명과 건강 보호는 세계 모든 국가의 임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계는 지금 인류의 생명이 위협받는 공포에 휩싸였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은 인류가 직면한 위기다. 첨단 의료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해온 나라들마저 코로나19와 전쟁에서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 막막한 상황에서 답을 찾아가는 나라로 대한민국이 급부상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응의 모범과 표준을 만들어가는 우리나라에 세계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감염자 진단에서부터 격리, 추적, 치료까지 단계마다 가장 빠르고 효율적이며 정확하다는 평가가 쏟아진다. 세계가 함께 겪는 코로나19 사태가 우리의 위상을 확 끌어올렸다. 시민들과 의료계, 기업, 연구기관, 학계, 정부가 함께 일궈낸 성과다.
한국의 코로나19 대응 능력에 대한 세계의 찬사는 우리 바이오헬스(K-바이오) 산업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기대된다. 의약품과 의료기기 제조업, 의료 및 건강관리 서비스로 구성되는 바이오헬스 산업은 시스템반도체, 미래형 자동차와 함께 정부가 선정한 3대 차세대 주력산업이다. 정부는 바이오헬스가 국민 생명과 건강 보장은 물론, 새로운 성장 동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산업이 될 것으로 보고 2019년부터 바이오헬스 혁신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또 2030년까지 세계시장 점유율 3배 확대, 수출 500억 달러 달성 등을 통해 ‘바이오헬스 강국’으로 올라선다는 목표도 세웠다. 바이오헬스 강국으로 가기 위해 정부가 마련한 전략과 추진 일정, 지금까지 성과와 앞으로 전망 등을 알아본다.
K-바이오 현황 및 투자 계획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내놓은 세계경제 수정 전망은 짙은 잿빛이다. 코로나19 대유행의 충격으로 세계 각국이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2020년 세계 상품 교역량은 11%나 감소하고, 실질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종전 3.3%에서 -3.0%로 하향 조정했다. 이는 IMF가 세계경제 추정 통계를 제공하기 시작한 1980년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대외 교역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도 당연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IMF가 제시한 2020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2%이다. 생산과 소득이 줄어드는 역성장을 예고한 것이다. 그래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률이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이 부른 위기가 기회로 다가온 분야가 있다. 의약품과 의료기기 등 국내 바이오헬스 산업이다. 바이오헬스 분야의 제조 및 서비스업은 문재인정부가 추구하는 ‘사람중심의 혁신성장’을 견인할 핵심 산업이다. 정부는 2019년 5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바이오헬스 산업 혁신전략’을 통해 2030년까지 바이오헬스 분야의 세계 최고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새로운 제품과 기술 개발부터 시장 출시까지 전 단계에 걸쳐 혁신적 생태계를 구축해 연간 수출액 500억 달러를 달성하고 3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국내 바이오헬스 산업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이런 야심 찬 목표에 성큼 다가서는 모습이다.
▶2019년 5월 22일 열린 바이오헬스 국가비전 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분기 의약품·의료기기 수출 27.3% 늘어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집계한 주요 보건산업의 수출 통계를 보면, 2020년 1분기(1~3월) 국산 의약품과 의료기기 수출액은 모두 26억 1000만 달러를 기록해 2019년 같은 기간보다 27.3% 증가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세계 교역의 둔화로 1분기 중 전체 산업의 수출액이 1% 증가에 그친 것에 비교하면 매우 높은 증가율이다.
품목별 수출액은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가 8억 7000만 달러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코로나19 진단도구(진단 키트)는 1분기 수출액이 모두 1억 1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79.8%나 늘어난 증가율이 돋보였다. 의약품 수출은 외형이 커졌을 뿐 아니라 부가가치와 수익성 같은 질적 지표에서도 개선이 뚜렷하다.
10대 수출 대상국 가운데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 제약시장 7개국이 포함된다. 특히 일부 바이오시밀러 제품은 까다롭기로 소문난 미국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약품감독국(EMA)으로부터 대부분 최초 판매 승인을 받아 2020년부터 주요국 의료 현장에서 실제 처방제로 투입돼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앞으로 수출을 지속적으로 늘릴 수 있는 발판을 다지고 있는 셈이다. 의약품은 생명과 직결된 필수재인 만큼 시장에 한번 안착하면 꾸준한 수요 증가가 보장되는 게 특징이다.
한국산 진단도구도 최근의 세계 경기 흐름에 역행하는 히트 상품(?)이다. 신속하고 정교한 검진 능력을 인정받은 한국산 진단도구는 4월 이후 수출이 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외교부는 국산 진단도구의 수출 또는 인도적 지원을 문의한 나라가 4월 15일 현재까지 미국을 포함해 126개국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수출에 뛰어드는 진단도구 제조업체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초기에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긴급사용 승인을 획득한 씨젠, 솔젠트 등 5곳에서 시작해 자체 개발한 제품으로 수출 허가를 받은 업체가 한 달여 만에 모두 22곳으로 늘었다. 진단도구 제조회사뿐 아니라 검체 채취용 도구, 핵산 추출기구, 실시간 중합효소연쇄반응(PCR) 검사 장비 등을 생산하는 의료기기 업체들도 바이러스 감염 진단도구와 관련한 수출에 동참하고 있다.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도 박차
한국의 뛰어난 방역체계와 진단도구에 대한 세계 각국의 호평은 바이오헬스 산업 전체의 수출에도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보건산업진흥원은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시장 점유율과 글로벌 경쟁 현황 등을 근거로 2020년 의약품·의료기기 수출액이 전년 대비 19.1% 증가한 105억 2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의약품·의료기기 연간 수출은 2010년 36억 4000만 달러에서 11년 연속 증가세를 이어오며 사상 처음으로 2020년 100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의약품·의료기기 수출 증가는 방역 및 의료시스템의 해외 진출, 의료 관련 정보기술(IT) 서비스 확대, 신약 특허 및 기술 수출 등 전·후방 연관 효과가 크다. 또 바이오헬스 산업의 대외 경쟁력과 위상이 높아지면 국민 생명과 건강 보장 강화 등 계량할 수 없는 국민 삶의 질 향상 효과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다.
하지만 수출 증가나 경쟁력 강화보다 더 시급한 바이오헬스 산업의 당면 과제는 코로나19 종식을 위한 치료제와 백신 개발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국립보건원(NIH)의 데이터베이스를 보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위해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임상시험은 4월 22일 현재 106건, 백신 임상시험은 미국과 중국에서 이뤄지는 5건이다.
국내 업계와 연구기관들도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자체 조사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치료제나 백신 개발 참여를 선언한 제약바이오 업체는 16곳,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이 5곳이다. 치료제의 경우 새로운 물질 발굴이나 약품 개발을 시도하는 곳은 거의 없다. 대신 기존에 나온 의약품이나 후보 물질을 재조합해 코로나19 치료 효능이 있는지 검증하는 ‘약물 재창출’ 방식을 시도하고 있다.
백신은 GC녹십자와 SK바이오사이언스가 질병관리본부 코로나19 국책과제 공모를 통해 개발을 추진 중이다. 또 제넥신이 한국과학기술원(KAIST), 포항공과대(포스텍)와 함께 6월 중 임상시험 돌입을 목표로 백신 개발 계획을 최근 밝혔다.
▶진단도구 전문 업체인 씨젠을 방문해 연구설비 설명을 듣고 있는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업과 정부, 연구기관과 의료계 역량 총결집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확산은 국가적 재난이다. 근본적인 극복 방안은 치료제나 백신 개발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과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민간기업 차원의 노력만으로 성과를 낼 수 없다.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기업과 정부, 연구기관과 의료계, 학계가 함께 나서 역량을 총결집해야 하고, 국제 공조를 통한 경험과 데이터의 공유도 필요하다.
정부가 먼저 깃발을 들었다.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위해 제약사, 병원, 연구기관 등에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다. 추가경정예산(추경)에서 확보한 2100억 원을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 투자에 지원하고, 임상시험 심사 및 승인 절차 등을 크게 단축하며, 생물안전 연구시설 등 공공 기반시설(인프라)을 민간에 개방하기로 했다.
식약처는 ‘고강도 신속 제품화 촉진 프로그램’(고(GO)·신속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에 들어갔다. 30일 정도 걸리던 임상계획 심사·승인 기간을 사전 상담과 신속심사제도를 도입해 하루 만에 처리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동일한 임상시험 신청을 여러 기관에서 중복 심사해야 할 경우 ‘임상시험심사위원회’ 한 곳의 심사 결과를 일률적으로 인정해주도록 절차를 개선했다. 또 연구개발(R&D)에서부터 허가 심사까지 전 단계에 걸쳐 ‘코로나19 전담 상담창구’를 개설하고,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품목에는 전담 관리자(프로젝트 매니저)를 지정해 단계별 맞춤 지원에 나섰다.
아울러 개발자들이 연구개발(R&D) 중에 애로나 문의 사항이 생기면 즉각 해소할 수 있도록 전담 관리자와 핫라인 창구를 운영하고, ‘의약품 규제기관 국제연합(ICMRA)’ 등 국제기구와 교류를 통해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는 임상시험 정보와 감염병 연구 자료도 공유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뒷받침하는 범정부 실무추진단도 발족했다.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원장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이 공동단장을 맡는 실무추진단은 6개 관련 부처 국장과 업계, 연구기관, 학계, 병원 등 분야별 민간 대표까지 참여하는 산·학·연·병 합동회의체다. 실무추진단에서는 치료제와 백신 개발, 방역물품과 기기 보급, 수급 관리와 국가 비축, 의료 현장 활용 등 전체 주기에 걸친 현황 분석과 애로 사항 파악을 토대로 주요 의제와 지원 방안을 마련한다.
치료제·백신 개발 위한 범정부 로드맵 수립
코로나19 치료제·백신 개발을 위한 범정부 로드맵 수립도 추진단이 해야 할 일이다. 로드맵에는 치료제와 백신 관련 유망 품목에 대한 R&D 투자 확대, 기초연구부터 제품화에 이르는 전체 주기의 효율적인 정부 지원, 인허가 및 제품화 관련 규제의 개선 방안 등을 담을 예정이다. 아울러 추진단은 정부출연연구기관과 대학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연구개발 지원 협의체’를 통해 치료제와 백신 개발의 과학기술적, 행정적 장애 요소를 발굴하고 해결 방안 모색 등에 상호 협력할 방침이다.
바이러스는 늘 인간을 앞서 간다는 말이 있다.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는 인간이 과학과 첨단 기술의 힘으로 차단하거나 퇴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매달리고 있지만, 효능과 안전성이 검증된 약품이 나올 수 있을지 아직 막막하다.
백신의 경우 개발부터 임상시험 등을 거치려면 앞으로 최소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렇더라도 코로나19에 대한 연구와 치료제·백신 개발을 포기할 수는 없다. 코로나19를 이기려는 치열한 노력이 앞으로 언제, 어떻게 출몰할지 모를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와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제공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최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장려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우리는 이미 방역에서, 그리고 진단도구 개발에서 세계가 인정하는 모범을 보여줬다. 우리 바이오 기업의 도전 정신과 창의력, 개발 역량에 정부와 의료계, 학계의 총력 지원이 더해진다면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한다.”
박순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