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연습경기에서 심판이 위생 장갑을 낀 채 경기에 임하고 있다.│한겨레
따~악!
평소보다 훨씬 큰 타격 소리를 타고 쭉쭉 뻗어나가는 공. 관중석은 여전히 텅 비었지만 이동통신(모바일)과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는 팬들은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을 느낀다. 코로나19의 ‘공습’에도 4월 20일부터 시작된 프로야구 무관중 연습경기는 스포츠에 목마른 팬에게 신선한 물줄기가 되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측에서는 10개 팀의 연습경기를 접속하는 모바일 팬들의 누적 숫자가 경기당 50만~70만 명에 이른다고 얘기한다. 꼭 야구팬이 아니더라도 모처럼 등장한 ‘진짜 스포츠’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이전보다 크다.
이것은 ‘보는 스포츠’에 익숙한 팬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규칙 아래 몸을 움직여 경쟁하는 선수들도 경기장의 기운을 받은 탓인지 활짝 웃었다. 5월 5일 시즌 공식 개막을 앞두고 선수단을 점검하는 감독들 표정에서도 활력이 느껴진다. 무관중으로 시즌을 시작하지만,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엄두도 못 내는 진짜 야구를 펼친다는 것이 반갑고 대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4월 23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인천 유나이티드와 수원FC전이 끝난 뒤 인천 김도혁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며 인터뷰하고 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프로스포츠
프로축구도 4월 23일 인천 유나이티드와 수원FC의 연습경기를 시작으로 기지개를 켰다. 선수들은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 출입하기 위해 모두 마스크를 썼고, 체온을 재야 했다. 물병엔 선수들의 등번호를 써 넣어 누구 것인지를 표시해뒀는데 과거에는 볼 수 없는 새로운 풍속도다. 직접 몸을 맞대고 싸워야 하는 경기의 특성상 더 조심할 수밖에 없다. 실전 경기에서 선수들은 골이 터져도 얼싸안지 못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엄지를 치켜세우거나 미소로 대신했다. 하지만 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렇게 소중한 건지 예전엔 미처 몰랐을 것이다.
한국의 프로스포츠가 세계의 시선을 끌고 있다. 코로나19의 파고로 전 세계 대부분 리그가 문을 닫았지만, 한국에서는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의 시즌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의 방송국들이 한국 프로야구를 중계하기 위한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프로축구 역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급은 아니다. 그럼에도 유럽의 여러 나라가 K리그 재개 소식에 중계권을 사들이고 있다.
단순히 한국에서 이뤄지는 진짜 스포츠를 보기 위한 욕망도 있겠지만, 스포츠의 재개를 보며 코로나19 재난에서 탈출하는 희망을 찾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현대 스포츠가 삶의 한 부분이고, 제도가 됐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날씨 이야기로 말을 꺼내듯, 스포츠 화제를 통해 소통하고 간극을 메우는 것은 일상적이다.
만약 코로나19에 대한 방역과 제어, 치료 등 국가의 의료 정책과 제도가 작동하지 않았다면, 또 시민들이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면 프로스포츠의 재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코로나19의 확산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각 프로연맹과 구단, 선수들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프로야구의 경우 연습경기 이전의 자체 훈련이나 청백전 때부터 의심 상황이 생기면 일정을 멈추면서 자가격리에 들어갔고, 하이파이브나 침 뱉기를 금지하도록 권유하는 등 문화를 바꿔나가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K리그 1~2부 선수단과 직원 등 1000여 명에 이르는 관계자들에 대한 코로나19 검사를 4월 말까지 마쳤다. 만약 대회 중이라도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면 그 팀은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하고, 이후에도 음성 확인을 받아야 참여할 수 있도록 세부 지침을 구단에 전달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선수 각자의 물병이 구분돼 있는 모습│한국프로축구연맹
‘포스트 코로나’ 시대 달라지는 풍경
코로나19 이후에 펼쳐질 세상은 확실히 이전과는 다를 것이다. 경기장 밖에서는 이미 변화가 시작됐다. 프로야구를 주관하는 KBO는 과거 대형 호텔에서 선수와 기자들이 함께 모여 열었던 개막 ‘미디어 데이’를 화상 중계로 대신했다. 각 팀의 감독과 주장을 단출하게 출연시켜 화상으로 연결해 질문을 주고받는 것은 이전 에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프로축구 기자들이 감독이나 선수를 인터뷰하는 것도 과거보다 어려워졌다.
관중 유치에도 종목이나 구단별로 이해가 엇갈린다. 프로야구는 5월 5일 개막 이후 관중을 조금씩이라도 입장시킬 계획이다. 하지만 좌석 간격을 1m씩 유지하라는 것이 정부의 방역 지침이다. 연간 800만 명 안팎의 관중을 유치하는 프로야구에서 관중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상황에서, 전후좌우 1m씩 간격을 두면 관중 수가 크게 준다. KBO는 야외에서 마스크를 끼고 관전하는 점에 대해 정부가 융통성을 발휘해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프로축구도 관중 수입 감소의 피해가 예상된다. 대구FC의 디지비(DGB)대구파크 전용구장의 경우 1만 2000석 규모인데, 관중이 떨어져 앉아야 한다면 타격이 불가피하다. 반면 월드컵경기장을 사용하는 구단에서는 공간을 여유 있게 활용할 수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쪽은 운동장 수용 능력의 10~20% 범위에서부터 점차 확대해 관중을 입장시킬 계획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새로운 환경은 한국 프로스포츠에 여러 도전을 안기고 있다. 기업 구단이나 시·도민 구단 모두 어려움에 처했다. 당분간 관중석을 꽉 채운 관중의 함성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쭉쭉 뻗어나가는 공의 궤적만으로도 사람들은 희망을 느낀다. 그것이 스포츠의 힘이다.
김창금 <한겨레>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