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롯신’ 이찬원과 새로운 세계

2020.05.04 최신호 보기

▶유튜브 <내일은 미스터트롯> 이찬원

2020년 초에 트로트와 팬덤(가수·배우 등 유명인의 팬층)에 대해 썼다. 그리고 3개월 뒤인 현재, 트로트의 여파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조짐이다. 오히려 더 커졌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코로나19로 공연과 행사가 제한된 상황에도 트로트는 공중파 방송과 유튜브 같은 미디어를 관통하며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모양새다.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우승자 7명은 ‘TOP 7’이라는 이름으로 전방위로 활약하고 있다. 1위를 한 임영웅의 신곡 ‘이제 나만 믿어요’가 여러군데 실시간 음원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4월 4일 <쇼! 음악중심>에도 출연했다. 이 방송 이후 인터넷 포털에 올라온 임영웅의 무대 영상은 공개 1시간 만에 조회수 15만 뷰를 넘어서고 하루 만에 100만 뷰를 돌파했을 뿐 아니라 3만 개의 하트, 2만 개의 댓글 수를 기록했다.
그중에서 1996년생, 스물다섯의 이찬원을 유심히 보게 된다. 건실한 청년 이미지를 가진 이찬원은 앳된 얼굴이지만 노래할 때 목소리에는 중년의 원숙함이 잔뜩 묻어 있다. 화려한 듯 촌스러운 ‘트로트 스타일’ 의상을 입어도 귀여운 막내 조카의 이미지가 흐려지지 않는다. 이 얼굴에는 착실한 알바 청년, 귀여운 교회 오빠, 순둥순둥한 막내아들, 명절 때 한두 번 만날지라도 싹싹하게 인사하는 조카의 표정이 모두 담겨 있다. 누가 뭐래도 트로트의 새바람이다.

▶유튜브 <쇼! 음악중심> 임영웅

‘24년 트로트 외길 인생’의 성공
‘24년 트로트 외길 인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찬원은 말 그대로 트로트 ‘신동’으로 불렸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트로트 특유의 ‘꺾기’를 습득한 그는 2008년, 2009년, 2013년, 2019년에 <놀라운 대회 스타킹>과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며 뛰어난 실력을 알렸다. 고등학생 때부터 행사를 다닐 정도였다고 하니 <내일은 미스터트롯>에서 첫 곡으로 ‘진또배기’를 불러 ‘찬또배기’ ‘찬또’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오히려 준비된 신인이었다. 이 실력에 훈훈한 인상과 겸손함까지 겸비했으니 인기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학창 시절의 이력도 흥미롭다. 고등학교 때는 학생회장이었고 대학교에 다닐 때는 대학 선거운동원이자 농활대장, 학생회 기획차장, 기획국장, 집행국장, 부학생회장까지 섭렵했다. 군대? 육군 제25보병사단 병장 만기전역. 그야말로 성실함의 표본 같은 이력이다. 그 와중에 축제 때마다 무대에서 트로트를 부르고, 대학에서도 행사의 MC를 도맡아 했다.
이찬원은 <미스터트롯>의 시청자들이 만든 스타다. 첫 출연 후 형성된 이찬원의 팬덤은 그의 콘텐츠를 발굴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놀라운 대회 스타킹> <전국노래자랑> 영상 자료뿐 아니라 고교 동창의 응원 글, 학창 시절 후일담, 인스타그램의 올리기(포스팅)와 댓글이 2차 가공되며 ‘혜성같이 등장한’ 신인 캐릭터를 만들었다. 여기에 친동생과 인스타그램 댓글로 나눈 대화나 일상 사진 등이 더해지면서 이찬원은 ‘세상 물정 모르고 트로트만 아는 바보’ 같은 이미지를 얻었다.
사실 아무리 반짝이는 의상을 입고 압도적인 성량과 구수한 바이브레이션(음을 가늘게 떨어 아름답게 울리게 하는 기법)으로 트로트 명곡을 불러도, 이찬원은 영락없이 스물다섯 살 남자‘애’다. 10대부터 60대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찬또’의 팬덤은 여기서 시작되고 또한 깊어진다. 팬카페뿐 아니라 유튜브, 네이버, 인스타그램, 트위터, 카톡 대화방, 디시인사이드까지 팬덤이 폭넓게 걸쳐 있는 것도 그 까닭이다.
트로트의 정의는 오랫동안 논쟁적이었다. 일단 ‘음악 용어’로서 트로트는 미국의 1910년대에 등장해 40년대까지 유행한 사교댄스, 빠르게 진행되는 투스텝 댄스음악을 부르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한국의 트로트와는 완전히 다른 말이다. 한국의 트로트는 독자적인 정체성을 획득한 ‘지역(로컬) 콘텐츠’다.

▶TV조선 누리집

2020년, 트로트의 전환기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2020년 이후가 되면 한국에서 더는 트로트를 듣지 않는 중년이 등장할 거라고 생각했다. 트로트는 ‘개발도상국’이라는 20세기 한국의 공감각적 경험이 특정 세대에 들러붙은 장르였다. 남진, 나훈아, 문주란, 김수희, 주현미, 태진아, 송대관의 노래에 담기는 고향, 어머니, 순정, 성공과 실패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의 도시화, 산업화, 민주화 과정의 빛과 그림자를 담는 그릇이었다.
명백히 사회문화적이자 세대적 경험이었으므로 한국 사회의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진 1990년대 이후에 트로트는 자연스레 소멸하리라 생각했다. 한국의 ‘엑스 세대’로 분류되는 그룹이 중년이 되는 2020년 전후로 90년대 가요가 트로트의 지위를 차지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런 생각을 바꾸고 있다. 트로트는 사라지기는커녕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스터트롯>의 성공은 기존의 세대적 관점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이 음악의 정서가 촌스러운 까닭은 그것이 환기하는 정서와 기억이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면서 트로트의 맥락을 지탱하던 요소들이 쪼개졌다. 파편화된 맥락은 각각의 독립적인 요소로 위치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패러디나 아이러니의 요소로 쓰였다. 조롱이든 해학이든 결국 웃기는 뭔가가 된 것이다.
그러자 트로트에는 오직 즐거움만 존재한다. 웃기기도 하고 촌스럽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재미있는 것이다. 이 쾌락은 미디어 포화상태의 결과다. 트로트는 웃기거나 이상하기 때문에 빠르게 전파(바이럴)된다. 그 과정에서 트로트에 향수를 가진 세대가 진지함을 발견한다. 요즘의 새로운 콘텐츠가 감각의 경계를 타고 놀면서 의미를 만든다면, 트로트 역시 그중 하나일 수 있다.
그렇다면 2020년 이후에 트로트가 새로운 감각의 산실이 될 수도 있을까? 새로운 감각이란 어떻게 탄생할까? 이찬원이라는 젊은 트로트 가수 덕분에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차우진_ 음악평론가. 미디어 환경과 문화 수용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청춘의 사운드> <대중음악의 이해> <아이돌: H.O.T.부터 소녀시대까지…> <한국의 인디 레이블> 등의 책을 썼고, 유료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에서 <음악 산업, 판이 달라진다> 리포트를 발행했다. 현재는 ‘스페이스 오디티’라는 스타트업에서 팬 문화, 콘텐츠, 미디어의 연결 구조를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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