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중엽에 흑사병(페스트)이 유럽을 휩쓸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유대인 공동체는 다른 지역에 비해 감염이 훨씬 적었다. 그로 인해 유대인은 심한 박해와 학살을 당했다. 300년이 흐른 1665년 런던에 페스트가 다시 유행했다. 유대인들이 고양이를 키워 쥐를 잡아먹게 했기 때문에 페스트가 적었는데, 거리에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보이는 족족 잡아 죽인 뒤의 일이었다. 유럽에서 고양이를 악마와 연결 짓는 미신이 사라진 것은 1790년대 이후였다. 그 뒤부터 유럽에서 페스트는 창궐하지 않았다.
인류는 아주 옛날부터 고양이를 중요시했다. 사람의 먹을거리를 축내고 집 기둥까지 갉아먹는 쥐를 잡기 위해서였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BC 2000년경부터 고양이를 길들여 키웠다. 그들은 고양이를 다산과 치유 및 삶의 즐거움을 관장하는 바스테트 여신의 화신으로 여겨 숭배했다.
고양이를 죽이는 사람은 사형에 처했고, 고양이가 죽으면 미라로 만들어 고양이 묘지에 묻을 정도였다. 고양이는 이집트, 페니키아, 히브리 뱃사람들에 의해 세계 곳곳으로 퍼졌다. 쥐가 배 안에 있는 식량과 화물을 갉아먹지 않도록 고양이를 싣고 다녔으며, 거래처 사람들에게 나눠준 것이다.
동화로 이해하는 희소가치의 중요성
고양이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시집인 <시경>에도 등장한다. <대아(大雅)> ‘한혁(韓奕)’이란 시에서 “매우 즐거운 한나라 땅이여, 암사슴과 수사슴이 많기도 하며 고양이도 있고 범도 있도다. 이미 아름다운 거처에 기뻐하니 한길이 편안하고 즐겁도다”라고 읊고 있다. 지금부터 2500년 이전의 시에서 묘사할 정도로 고양이가 일반적으로 키워졌음을 알 수 있다. 猫(묘, 고양이)에 대해 범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털이 짧다고 묘사해, 현재의 고양이와 같음을 보여준다.
곳간에 들끓는 쥐를 없애는 고양이는 페스트를 줄이고 퇴치하는 데 커다란 공을 세우는 보너스까지 주었다. 하지만 동양과 이집트보다 훨씬 늦은 BC 900년경에 고양이가 전해진 유럽은 고양이를 악마로 여겨 탄압했다. 고양이와 쥐, 그리고 페스트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보다 마녀사냥에 집중한 결과는 엄청났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요한복음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었다.
맥락은 약간 다르지만 고양이는 <그림동화>에도 등장한다. 한 가난한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맏아들은 수탉, 둘째는 낫, 막내아들에게는 고양이를 남기면서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내가 너희에게 준 것은 대단한 물건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얼마나 지혜롭게 쓰느냐는 중요하다. 이 물건들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나라를 찾아가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맏아들은 시계가 발명되지 않은 나라에 수탉을 가지고 가서 시간을 알려줌으로써, 둘째 아들도 벼나 보리를 거둘 때 낫을 쓰지 않는 나라에 가서 말 등에 금을 싣고 돌아왔다. 막내는 쥐들의 천국인 나라에 고양이를 안고 가서 노새에 금을 가득 실을 만큼 부자가 되었다.
‘어른을 위한 동화’인 이 이야기는 희소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수탉, 낫, 고양이는 일반화된 곳에서는 거의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한다. 하지만 처음 쓰이는 곳에서는 엄청난 가치를 갖는다. 편의점에서 500원인 생수 한 병은 사막에서 며칠 동안 물을 마시지 못한 사람에게는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의 가치가 있다. 똑같은 물건이나 사람일지라도 어느 시기, 어떤 장소, 누가 쓰느냐에 따라 가치 차이가 엄청나다.
21세기는 ‘기울어진 가치의 세계’
우리가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21세기는 ‘기울어진 가치의 세계’다. 육체적 생명을 유지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쌀·옷 등)보다 사람들이 뽐내기 위해 갖고자 하는 것(최신 스마트폰, 고급 승용차 등)이 훨씬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자체로는 먹을 수도 없는 다이아몬드가 생활필수품보다 훨씬 비싼 것을 ‘가치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일상생활에서 사용가치는 적지만 다른 사람들과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는 교환가치가 높다는 것으로 설명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엔 극소수(0.01% 미만)의 플랫폼(다양한 정보를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기반 서비스) 소유자와 절대다수(99% 이상)의 프레카리아트로 양분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많다. 프레카리아트(Precariat)는 이탈리아어 ‘불안정하다(Precario)’와 노동자를 뜻하는 영어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어로, 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인 비정규직·파견직·실업자·노숙자 등을 가리킨다. 희소가치를 독점한 극소수가 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극단적인 가치의 역설이다.
가치의 역설은 지역과 주택 유형(아파트·빌라·단독주택)에 따라 값이 천차만별인 사실에서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서울 강남 아파트값이 강남의 빌라나 지방 아파트보다 훨씬 비싼 것은 희소하기 때문이다.
페스트가 창궐하는데 고양이를 악마라고 잡아 죽이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우리가 진리를 자유롭게 하는 게 아니다.
홍찬선_ <한국경제> <동아일보> <머니투데이>에서 28년간 기자를 지냈다. 저서로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임시정부 100년 시대 조국의 기생충은 누구인가>, 역서에 <비즈니스 경제학> <철학이 있는 부자> <부자가 되려면 부자에게 점심을 사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