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산림녹화 과정을 상징하는 경북 영일지구 산림녹화 이전과 이후. 연인원 355만 명이 수작업으로 210만 톤의 흙과 비료 4161톤을 나르고 2389만 그루의 묘목과 101톤의 종자를 식재해 성공했다.│산림녹화UNESCO등재추진위원회
산림녹화 유네스코 등재 노력
“‘애국가를 부르며 산으로 가자’가 슬로건이었어요. 산꼭대기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정말 열심히 나무를 심었죠.” 1923년 우리나라 최초로 조성된 홍릉수목원에서 만난 전진표 씨는 두 장의 명함(한국임우회 회장, 산림녹화 유네스코 기록유산등재추진위원회 대외협력부장)을 건넸다. 나이 80을 넘긴 전진표 대외협력부장은 1967년 국토 녹화를 위해 발족한 산림청의 1세대다.
“새벽부터 밤까지 나무를 심고… 가뭄이 들면 달빛에 의지해 물동이를 지고 산을 오르고… 밧줄에 몸을 묶고…. 지게를 지고 퇴비와 비료를 나르고….” 말을 보태는 한문영 기록관리부장, 오정수 연구관리본부장, 이철수 사무국장 또한 은퇴한 지 10년이 넘는, 우리나라 산림녹화의 산증인이다.
이들은 1969년 유엔 보고서가 ‘한국 산지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다’라고 보고할 만큼 황폐화한 국토를 불과 13년 만인 1982년 식량농업기구(FAO)가 영국, 독일, 뉴질랜드와 함께 우리나라를 세계 4대 조림 국가로 꼽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 복구에 성공한 유일한 국가’로 선정한 기적을 일궜다.
산림정책연구회 이사회 결의로 추진위 출범
“마지막 애국의 길이죠. 우리나라의 산림녹화 과정은 정부의 주도와 국민의 적극적 참여라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그 철학을 알리는 일은 다른 나라 산림녹화에 도움을 주는 일입니다. 우리의 산림녹화 경험과 기술이 지구촌 사막화 방지와 이산화탄소 저감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게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산림녹화 기록은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이유다.
산림 직종 공직과 관련 기관·단체 퇴직자의 모임인 한국임우회 등에서 오가던 산림녹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자는 의견은 2016년 산림정책연구회 제1차 이사회에서 결의와 함께 구체화했다. 그해 2월 한국임학회 회장을 역임한 이경준 서울대 산림과학부 명예교수를 위원장으로 추대하고 3본부 1국장 체제의 산림녹화 유네스코 기록유산등재추진위원회를 정식 출범시켰다. 한국임학회 회장 등을 지낸 이 추진위원장은 농업·산림학을 연구한 농업생명과학계의 저명한 연구자이자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출간한 광복 70년 시리즈 <한국의 산림녹화 70년>을 책임 집필하기도 했다.
“세계가 기적이라고 평가하는 한국의 산림녹화 기록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70여 명의 임업인도 급여는 물론 활동비조차 없는 명예직인데도 각 시·도별, 기능별 추진위원으로 참여했다. 정부와 지자체, 관련 기관은 물론 마을과 개인이 보관하던 관련 자료가 수집됐다. 자료 중에는 1985년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해외 언론의 보도와 조림을 위한 비용 마련을 위해 강원도 삼척시가 결성한 복지조림조합 출자금 증표도 포함돼 있다.
수집된 자료를 정리해 2017년 문화재청이 주관하는 국내 심사에 참여했지만 11개 신청 대상 가운데 산림녹화 기록은 4위에 그쳤다. 4·19혁명 기념물과 동학혁명 기념물에 밀렸지만 소실돼가는 총 1만여 건의 귀중한 기록물을 최초로 전국에서 수집해 분류한 성과는 남아 있다.
정부 계획과 국민 참여가 성공의 비결
추진위원회는 멈추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료가 사라져 없어지는 게 문제였다. “영림서나 산림조합 등 관련 기관들이 청사를 이전하면서 상당수 자료가 폐기 처분되는 게 문제예요.” 한문영 기록관리부장과 이철수 사무국장은 지금도 자료의 소실을 걱정한다. 국민의 관심도 더 필요했다. 2018년 11월 8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황주홍 위원장과 함께 ‘산림녹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등재 심포지엄’을 연 이유다.
산림청과 정치권, 산림조합을 비롯한 민간 부문이 함께한 심포지엄은 우리나라 산림녹화가 성공한 원인이 ‘정부의 계획 수립과 전 국민적 참여’에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국민적 참여는 우리나라 산림녹화가 성공할 수 있는, 산림녹화에 실패한 나라들과 가장 다른 점이다. 국민적 참여는 산림녹화 과정을 고질화한 농촌의 빈곤을 해소하는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973년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세우고 본격화한 산림녹화는 도벌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나무를 심고 키우는 일이 곧 돈벌이가 되는 일임을 전 국민에게 인식시켰다. 마을마다 정부에서 임대료를 내주는 양묘장을 설치하고 키운 묘목은 정부가 높은 가격으로 매입했다. 취사와 난방을 나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받아들여 아카시아, 리기다소나무 등 속성수를 먼저 심어 연료 문제를 우선 해결했다. 밤나무를 비롯한 유실수를 심고, 새마을 공장 등 일자리도 만들어 몰래 베기와 연료목 채취보다 나무를 심는 일이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했다.
심포지엄에서 황 위원장은 “산림녹화 관련 자료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하는 것은 뒤늦게 산림녹화에 나서는 많은 개발도상국에 정보와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말로 추진위원회 활동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2년 주기로 진행돼야 할 심사는 2019년에 열리지 않았다. 유네스코에 가장 많은 분담금을 부담하는 일본의 몽니 때문이다.
2015년 ‘중국 난징대학살 기록물’이 일본의 반대에도 등재됐지만 2017년 ‘강제 연행당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은 일본의 강력한 반대로 심사가 보류됐다. ‘논쟁의 여지가 있고 증명되지 않은 정치적 의미를 가진 기록물을 등재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일본의 주장이다. 결국 유네스코는 심사 기준을 재정립할 때까지 당분간 심사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2019년에 이어 2020년에도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은 보류될 전망이다.
▶4월 3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국립산림과학원 안에 있는, 홍릉숲 최장수 나무이자 산증인인 1892년생 반송 앞에서 산림녹화UNESCO등재추진위원회 이경준 위원장(가운데)과 본부장들이 등재추진을 위한 결의를 다지고 있다.
한국 산림녹화는 세계가 배워야 할 모범
기약 없는 기다림이 계속되고 있지만 홍릉숲 사단법인 산림정책연구회 사무실에는 늘 임업 1세대가 모인다. 1950년대 우리 국토의 58%는 사막화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황무지였다. 예부터 내려오는 봉산·금산·금송 등의 전통은 식목보다는 숲과 나무를 보호하는 정책이었다.
이런 정책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가난이 확산하면서 무력화됐다. 조선말 이미 망가지기 시작한 우리의 산림은 일제강점기 송탄유를 생산하기 위해 소나무 뿌리까지 캐가는 산림 수탈로 피폐화되고 6·25전쟁으로 더욱 파괴됐다. 이승만정부도 산림녹화에 공을 들였지만 피란민으로 증가한 인구가 필요로 하는 연료림과 전후 복구에 필요한 목재 자원의 수요를 충당해야 하는 형편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1967년 산림청을 발족하고 1973년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 계획을 수립하면서 본격화한 산림녹화는 불과 반세기 만에 한국은 산림률(국토 면적 대비 산림 면적)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핀란드, 스웨덴, 일본 다음으로 세계 4대 산림 강국이 됐다. 이제 우리나라는 인도네시아, 몽골, 미얀마 등 20여 개국의 산림녹화를 지원하는 공적원조 제공국가이기도 하다.
이 추진위원장은 우리나라 산림녹화 과정을 ‘세계사적인 환경운동’이자 ‘민초 조림’으로 정의한다. 환경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레스터 브라운 미국 지구정책연구소 소장은 ‘문명을 구하기 위해 모두 나서자’라는 부제를 단 자신의 저서 <플랜B 3.0>에서 “한국은 여러 측면에서 다른 국가들에 조림사업의 모범이 됐다”고 썼다. 산림녹화의 결과뿐 아니라 빈곤과 식량, 환경 등 여러 문제를 함께 해결했다는 평가가 담긴 말이다.
브라운 소장은 2013년 8월 3일 방영된 KBS <다큐 공감-민둥산의 기적>에 출연해 “이 프로그램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방영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산림녹화는 위기에 닥친 지구를 구하기 위해 세계가 배워야 할 모범으로 꼽고 있다는 이야기다.
산림녹화기념관 건립도 소원
잘 가꿔진 숲은 방치된 숲에 비해 1ha당 연간 10.4톤의 탄소를 더 흡수하고 14.4톤의 물을 저장한다. 숲이 주는 공익적 가치(표 참조)는 2018년 기준으로 221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11.7%로, 국민 1인당으로 환산하면 연간 428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국민 1인당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428만 원의 혜택을 받는 셈이다. 우리가 누리는 숲의 혜택은 1960년대부터 본격화한 산림녹화의 결과물이다. 50여 차례나 실패했던 경북 포항 영일만 일대의 산림 복원과 대관령에 목책을 두른 채 자라는 나무들은 임업 1세대의 피와 땀을 상징한다.
전진표 대외협력본부장은 “우리 산림이 울창해지면서 ‘숲의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리는 건 아닌가”라는 걱정이 들 때가 있다고 한다. 산림 면적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역시 임목 축적률은 늘고 있지만 산림 면적은 1975년 757만ha에서 2015년 633만ha로 줄었다. 도로 개설 등 각종 개발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2015년 기준으로 세계 산림은 1990년 대비 3.1%가 줄어든 약 40억ha다. 세계 산림은 매년 940만ha씩 줄고 있다.
자연은 사람이 없어도 존재하지만 사람은 자연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우리나라 산림녹화 기록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올리려는 이유는 자연이 사람에게서 떠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일일지 모른다. 추진위원회는 지금도 산림녹화와 관련된 기록을 모으고 있다. 세계가 모범으로 삼는 우리나라 산림녹화 기록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산림녹화기념관 건립도 이들의 소원이다.
글 윤승일 기자
사진 곽윤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