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원 한양대 음대 교수와 제자 네 명이 3월 23일 서울 성동구 텐즈힐 아파트 내 놀이터에서 ‘베란다음악회’를 열고, 성악 메들리를 선보이고 있다.│ 성동구
‘심리 방역’에 나서는 지자체들
“밤은 지나가고 환한 새벽 온다. (중략) 희망의 나라로….”
3월 23일 오후 3시, 서울 성동구 텐즈힐 1단지 아파트 내 놀이터에는 소프라노 박정원 한양대 교수와 제자 네 명이 빚어내는 하모니가 울려 퍼졌다. 성동구와 성동문화재단이 마련한 ‘베란다 음악회’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이동 금지령이 내려진 이탈리아에서 시민들이 발코니로 나와 함께 노래하면서 위로한 상황이 한국에서도 연출됐다. 집 안에 머물던 주민들은 창문을 열거나 발코니로 나와 음악을 감상했다. ‘오 솔레미오’ ‘청산에 살어리랏다’ 등 노래가 끝날 때마다 발코니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성동문화재단 관계자는 “음악회가 열리는 동안 주변 가구 창문이 다 열리고, 마스크를 쓴 아이들이 지켜보는 집도 많았다. ‘예술은 시대를 치유한다’는 말처럼 주민들이 코로나19로 지친 마음을 치유하고 극복해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손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발코니 음악회’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용인문화재단은 시민들의 공연 관람이 어려운 점을 고려해 찾아가는 음악회인 ‘우리 동네 발코니 음악회’를 4월 11~12일 시범적으로 실시했다. ‘용인시 코로나19 극복 프로젝트 클래식 시리즈’ 첫 번째 공연으로 기획한 이번 음악회는 11일 오후 2시 신봉동 광교산자이아파트 단지 내 중앙광장과 12일 오후 3시 동천동 동천더샵파크사이드 단지 내 중앙광장에서 진행됐다. 발코니 음악회는 시민들이 밀폐된 공연장이 아닌 집 발코니에서 편하게 앙상블 연주단의 클래식 공연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찾아가는 음악회의 연주는 웨스턴심포니오케스트라(지휘 방성호) 단원으로 구성된 13명 내외의 소규모 기악 앙상블이 맡아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 파가니니의 ‘칸타빌레’, 영화 <황진이> <태극기 휘날리며> OST 등 익숙한 10여 곡을 연주했다.
물리적 방역만큼 심리적 방역도 중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계속되면서 ‘공적 위기소통’ 상황이 심화되는 가운데 물리적 방역만큼 심리적 방역도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회심리적 방역이 점차 중요해지는 것이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2월 25~28일 전국 성인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일상이 절반 이상 정지했다’는 응답이 59.8%에 이르렀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1차 조사 때 48.0%보다 크게 올랐다. 코로나19 뉴스를 접할 때 떠오르는 감정은 ‘불안’(48.8%)이 가장 많았고, ‘분노’(21.6%)가 뒤따랐다. 집에 있다 보면 목이 칼칼하고 발열감이 느껴져 ‘코로나 증상’을 괜히 찾아보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답답하고 우울하거나 화가 솟구칠 수도 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확진자와 자가격리자, 시민들의 우울감을 완화해 면역력을 높여주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은 점차 ‘심리 방역’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서울 영등포구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주민에게 심리상담을 지원하기로 했다. 우선 자가격리 중인 주민에게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음을 안내하고, 희망하는 경우 1개월간 주 1~2회 심층 전화상담을 진행한다. 또 자가격리자가 아니더라도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느끼는 주민 누구에게나 일대일 상담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서울 서초구는 단순 심리상담을 넘어 다양한 온라인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특히 노인복지관 등 복지시설이 문을 닫고 친구들과 자주 만날 수 없는 노인 등 취약계층의 무력감을 해소하는 데 중점을 뒀다. 1월 말부터 휴관 중인 자치회관의 강사들도 재능 기부를 통해 ‘코로나 퇴치 댄스’ ‘시니어 건강 댄스’ 등 50여 개 프로그램의 학습 동영상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포항시에서는 시민들이 침체된 지역사회 분위기 전환과 심리적 안정 및 외상후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대규모 봄꽃을 심고 있다.│포항시청
집단격리 복지시설에 봄꽃 모종 나눠줘
이색 심리 방역 현장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경북 포항시는 코로나19로 가라앉은 지역사회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포항 철길숲 연장 6.6km 구간 등에 팬지와 데이지 등 봄꽃을 심었다. 특히 동일집단격리(코호트 격리) 중인 복지시설 등에서 원하면 모종을 무료로 나눠준다는 계획이다. 포항시 관계자는 “시민을 위한 심리 치유 공간을 만든 것”이라며 “일종의 원예치료 쪽으로 접근했다”고 말했다.
자동차극장을 운영한 지자체도 있다. 서울 성동구 살곶이공원은 한시적으로 코로나19에 지친 시민들을 위해 최근 자동차극장으로 변신했다. 성동구청은 코로나19 여파로 인파가 몰리는 극장을 찾기 어렵고, 불안과 스트레스로 심신이 지쳐 있는 주민들의 안정과 치유를 위한 ‘심리적 방역’의 하나로 무료 자동차극장을 3월 22일~4월 5일 한시 운영했다. 현장에는 손 소독제와 체온계를 비치하고 구급차도 대기했다. 매일 방역을 시행하는 운동장에서 안심하고 가족과 여유롭게 영화를 즐기라는 취지였다.
성동구는 노인복지관이 문을 닫으면서 온종일 집에만 있는 홀몸 어르신에게 소일거리를 배달하기도 했다. 무료한 일상을 달래줄 콩나물 재배 세트다. 노인 맞춤 돌봄서비스 대상인 독거 어르신 786가구에 콩나물 키우기 도구를 제공했다. 성동구 관계자는 “콩나물 키우기 도구를 나눠주며 안부도 확인하는 일석이조 효과를 보고 있다”며 “혼자 있어서 외롭다는 문의 전화가 자주 왔는데 어르신들이 굉장히 좋아한다”고 말했다.

▶경기 부천시가 청소년들에게 제공하는 ‘마음 돌봄 럭키 박스’│부천시
학생·학부모 대상 온라인 심리 상담
학생들의 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심리상담에 나서거나 ‘마음 돌봄 럭키 박스’ 등을 만들어 보급하는 지자체도 있다. 대구시교육청은 학생과 학부모의 정서 심리 지원을 강화하기 위한 ‘학생·학부모 대상 온라인 상담주간’을 운영하고, ‘코로나19 학습 및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해 일대일 학습 및 심리상담을 지원한다.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은 마음 방역과 불안 조절 방법 등이 담긴 ‘마음 건강 뉴스레터 1호’를 만들어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안내하고 있다. 부산시교육청도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마음 건강 지키기 온라인 상담망’을 구축해 학생들이 언제든지 상담받을 수 있게 했다.
부천시 청소년 상담복지센터(상담센터)는 스트레스를 받는 청소년의 심리 정서를 지원하기 위해 ‘마음 돌봄 럭키 박스’를 배송하기로 했다. 이 박스에는 심리 지원 지침서와 과자 등 간식, 마스크·손 소독제 등 개인 방역물품이 들어간다. 상담사가 쓴 손편지도 담긴다. 대상은 1~2월 상담센터로 와서 상담을 요청한 청소년 가운데 상담이 종결된 인원을 제외한 약 240명이다. 센터 측은 “박스를 받은 청소년들이 고맙다며 하트를 담은 인증 사진을 보내왔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는 갈 곳이 없어진 청소년을 위해 ‘K-팝 스타들의 댄스 배우기’ 동영상을 제작·배포했다. 노인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국선도·라인댄스 등 10가지 홈트레이닝 영상도 강남구도시관리공단 누리집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한편 코로나19로 인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싶은 경우 ▲확진자 및 가족은 02-2204-0001~2(국가트라우마센터) 또는 055-520-2777(영남권 트라우마센터) ▲격리자 및 일반인은 1577-0199(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한국심리학회도 4월 9일부터 심리적 방역 차원의 전문 심리상담을 실시하고 있다. 평일과 주말 모두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무료로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다.
박유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