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사람과는 얘기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간혹 아이들의 몸값을 노리고 일어나는 유인 납치 사건은 1980년대에도 꽤 발생했다. 그 전 시대엔 보호환경이 열악한 아이들이 납치되어 앵벌이 무리에서 발견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범죄는 더는 잘 일어나지 않는다. 사방에 있는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과 치안센터는 실종 아동을 어떻게 해서든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아이들이 살기 안전한 세상이 되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아이들의 비율은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고, 한번 비행을 저지른 아이들이 재비행을 할 비율은 40%를 넘어섰다. 외국에서도 주목할 수밖에 없는 수치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오프라인보다 오히려 더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온라인 세상 때문이다.
온라인 세상, 즉 사이버공간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바로 익명성이다. 모르는 아저씨가 어린아이를 얼마든지 대화를 나누며 유인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치안센터나 순찰차 등 경찰, 즉 사법 질서는 대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법천지, 수없이 숨겨진 비밀방의 대화 내용에 특히 한국 경찰은 깜깜했다. 경찰의 사찰에 두드러기 반응을 보이는 기성세대는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의 무규범 상태를 방치했다.
국경이 없다는 것도 큰 특징이다. 온라인을 타고 미국의 성매수자도 우리나라 아동들에게 접근해 성착취물을 제작하게 할 수 있다. ‘코리안 걸스(Korean Girls)’로 검색하면 아주 어린 한국 여자아이들의 성착취 영상까지 나오는 다크웹(익명성이 보장되고 IP 주소도 추적 불가능하게 설계된 인터넷 웹)은 그야말로 국제적인 지옥이었다. 바로 이런 온라인 세상의 특징들이 종합된 사건이 ‘n번방 사건’이다.
이제는 입법·사법·행정부가 응답할 때
앳된 여학생들이 수줍게 와 앉았다. 불꽃 잠입단. 대학생 아마추어 기자들이 피해 사례를 모아 세상에 폭로한 것이 바로 n번방 사건이다. 그들처럼만 조사하면 당분간 누리소통망(SNS)에 넘쳐나는 아동 성착취물 영상을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발굴해 제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일단 자신의 신분을 위장했다. 때로는 아동으로, 때로는 성매수자인 척하며 다크웹 비밀방의 실상을 추적했다. 경찰이 못하는 함정수사를 민간인 신분으로 해낸 것이다.
또 피해자들의 영상물이 성착취물이란 문제의식을 가졌다. 많은 사람이 아동 성착취물과 음란물을 혼동하는 와중에도 이들은 예민한 인권 감수성을 발휘해 피해자들의 고통을 짐작해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옳고 그름의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었다. 성은 대상화해 사고팔리는 것이 아니라는 분명한 인식이 있었다. 용기 있는 그들이 아니었으면 우리 사회는 또 그렇고 그런 아이들의 일탈 정도로만 이 문제를 취급하며 쉬쉬했을 것이다.
무엇이 남았는가? 이젠 많은 시민이 성착취는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야 하는 ‘구태의 잉여물’이라는 데 동의한다. 이제는 입법, 행정, 사법부에서 응답할 때다. 이번에는 꼭 열화와 같은 국민의 문제의식이 법과 제도로서 구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내 딸도 익명의 통신 대화(채팅) 상대에 의해 그루밍(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성폭력하는 것을 뜻한다. 보통 어린이나 청소년 등 미성년자를 정신적으로 길들인 뒤 이뤄진다)당하지 않고 안전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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