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외국민이 부르는 코로나19 극복 희망노래 유튜브 영상 갈무리
미국 뉴욕에 사는 한 지인이 최근 석양이 깔리는 무렵, 소란스러운 자신의 아파트 앞 거리를 찍은 영상을 페이스북에 공유했습니다. 설명을 보니 매일 저녁 7시마다 그 거리의 사람들이 함께 박수를 치면서 그날 하루도 코로나19 방역 최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웠을 의료인들에게 감사의 표시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뭉클했습니다. 게시물에 달린 지인 친구들의 댓글을 보니 그런 행동은 그 거리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닌 듯했습니다. 뉴욕 반대편의 브루클린, 대서양 너머의 영국, 더 멀리 인도와 중국에서도 그런 응원과 연대의 움직임이 있는 듯했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타인에 대한 감사, 자발적으로 조직된 고귀한 집단행동은 창궐하는 감염병이 드러낸 역설적인 아름다움입니다.
지난 칼럼에서 코로나19와 ‘n번방’이라는 어두운 소재 둘을 겹쳐 무거운 말씀만 드린 듯해 이번에는 코로나19가 불러온 긍정적인 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코로나19는 백신도, 뚜렷한 치료제도 없는 무서운 병임에는 변함이 없고, 그것이 빚은 비극은 어떤 미담도 가리기 힘든 안타까운 것임도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 질병이 빚어낸 이례적인 상황은 평시라면 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을 불러왔고 그 가운데 일부는 역설적이게도 희망을 엿보게 하는 것들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져온 환경오염 개선
대표적인 것이 자연의 회복입니다. 심한 증세의 확진자 수를 의료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밑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세계 각국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돌입하면서 환경오염은 빠르게 개선됐습니다. 화석연료 연소를 기반으로 하는 자동차 등의 운행이 크게 줄었을 뿐 아니라 여러 공장의 가동률도 떨어졌기 때문이죠. 영국의 기후변화 전문 매체 <카본 브리프>에 따르면 가장 먼저 강력한 이동통제 정책을 편 중국은 그 영향으로 온실가스 방출이 일시적으로 18%나 떨어졌다고 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거리두기를 펼치고 있는 대부분 나라에서 비슷한 현상이 관측됩니다. 유럽우주국(ESA)이 3월 공개한 유럽의 대기를 보면 전년 동기와 비교해 유해가스가 확연히 줄어든 것이 보입니다.
일부 동식물에도 코로나19는 축복입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차량 운행 등이 줄면서 도로 주변 야생동물의 찻길 사고(로드킬)가 급격히 줄었다고 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선 자취를 감췄던 코요테가, 워싱턴 주거지역 부근에선 사슴이 다시 보인다고 하네요. 여러 지역 정부가 개발 사업을 미루면서 평소라면 갈아엎어졌을 들에 야생화가 만발하고 꿀벌을 비롯한 곤충은 그만큼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인간에게도 코로나19가 온전히 고통만 안기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뉴욕 ‘응원의 오후 7시’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야외 활동을 피할 수 없는 아파트 관리원, 물품 택배원, 음식 배달원 등에게 부족한 마스크를 전달하는 운동이 펼쳐진 바 있습니다. 문 앞에 놓인 마스크 사진 등이 누리소통망(SNS)에 공유되면서 주변에 온기를 전했죠.
각자 닫힌 공간에 갇혀 지내는 거리두기 시대에 어떤 이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평소 느끼지 못했던 따뜻함을 느끼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디-나이스(D-Nice)라는 미국 디제이(DJ)가 연 특별한 파티를 소개했습니다. 역시 자신의 공간에 갇혀 있던 그는 낮부터 깊은 밤까지 생리에 필요한 최소 시간을 빼고 내내 유튜브를 통해 공연을 합니다. 그의 즉흥 공연에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었고 그중에는 유명 가수뿐 아니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아내 미셸 오바마까지 있었습니다. 이 온라인 파티에는 결국 15만 명의 사람이 모여 같은 노래를 공유하며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느꼈습니다. “30년 음악 인생에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말한 디-나이스는 이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습니다. 다음 온라인 파티에는 ‘투표 독려’라는 공익적 목적까지 내걸고 수만 명의 참여를 이끌었다고 합니다. 비슷한 예로 국내의 경우 자가격리 중인 한국계 재외국민이 모여 ‘걱정 말아요 그대’라는 노래를 부른 영상이 울림을 전했습니다. 백승범 씨가 제작한 이 유튜브 영상은 4월 11일 현재 2만 2000여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감염병이 준 뜻밖의 ‘선물’
이런 예들의 공통점은 감염병으로 인해 잃었다고 생각한 것을 되찾게 또는 되돌아보게 된 점이라 하겠습니다. 경제 성장과 발전에 목이 매여 잃었던 환경과 생명, 속도와 자기계발에 매여 잊었던 사람의 온기와 연대 등을 되돌아보게 되었다는 것이죠.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현실에선 불가능했을 ‘실험’이 허용되는 특수한 상황 속에 외면됐던 가치가 떠오른 셈입니다. 사회 활동 최소화와 자가격리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듯, 이런 일들도 계속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경험조차 감염병 기억의 일부로 여겨 함께 치우고 이전의 ‘일상’으로 완전히 돌아가는 게 바람직한지는 의문입니다. 이번 계기로 되돌아보게 된 지구나 사회적 유대 등은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경기 침체나 대량 실업 등 감염병이 남길 상처는 치유하면서 동시에 이런 뜻밖의 ‘선물’은 살리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권오성_ 2007년 <한겨레>에 입사해 미래, 과학 분야를 맡던 중 뉴욕 시러큐스대학으로 연수를 떠나 컴퓨터 기술과 저널리즘의 융합 분야 석사 과정을 마쳤다. 인공지능이 사회에 가져올 영향 등에 관심이 많다. 지은 책으로 <미래와 과학>(인물과사상사, 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