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차 비상경제회의 결과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주요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기획재정부
실물경제를 감염시킨 코로나19가 고용 시장으로도 번지고 있다. 직격탄을 맞은 취약 산업·계층에서는 벌써 고용불안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4월에는 ‘고용 충격’이 올 것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정부도 심각성을 감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3월 24일 제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기업이 어려우면 고용이 빠르게 나빠질 수 있다. 어려움을 겪는 기업 대상으로 정부가 지원하는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고용 안정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코로나19에 대응해 고용유지지원금을 4000억 원 더 늘려 5000억 원 규모로 확대키로 했다. 고용유지지원금은 경영난에 빠진 사업주가 감원 대신 유급 휴업·휴직으로 고용을 유지하면 정부가 고용보험기금으로 휴업·휴직수당의 일부를 지급하는 제도다. 1995년 고용보험 도입과 함께 시행됐다.
비정규직 등 고용불안 노동자 직격탄
정부가 적극 나서게 된 배경에는 장기화된 코로나19로 인해 해고와 권고사직 통보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공인노무사·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노동자 인권보호단체 ‘직장갑질 119’는 3월 15∼21일 일주일간 들어온 이메일과 카카오톡 제보를 분석한 결과 315건의 코로나 갑질 제보 가운데 해고·권고사직 비율은 7.8%로 첫째 주(2.7%)에 비해 3.2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무급휴가는 1.1%포인트, 연차 강요는 1.2%포인트 늘었다.
또 항공업에서 시작된 이른바 ‘코로나19 실업’은 전 산업으로 퍼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3월 1∼21일 3주 동안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제보 113건 가운데 학원 교육 20건(17.7%), 사무 15건(13.3%), 병원·복지시설 13건(11.5%), 판매 13건(11.5%), 숙박·음식점 10건(8.8%), 항공·여행 12건(10.6%) 순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장기화는 비정규직과 파견직 등 고용이 불안한 노동자들에게 직격탄이다. 2019년 8월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 동향을 보면 취업자 2735만 명 중 사실상 휴업급여를 받기 어려운 직장인은 2127만 명(77.8%)에 이른다. 고용보험에 가입된 기간제, 사내하청, 파견용역, 특수고용직과 ‘프리랜서 계약’으로 고용보험에 미가입된 노동자들이다.
파견용역 노동자들은 ‘고용유지조치 종료일부터 한 달 동안 감원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 탓에 고용유지지원금도 받기 어렵다. 직장갑질 119는 “계약직·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휴업수당 대신 계약 해지를 당하고 있다”며 “정부의 유일한 대책인 고용유지지원금은 정규직 일부에게만 적용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급휴직 실시할 땐 휴업수당 지급해야
기업은 근로자를 내보내거나 새 일자리를 만들지 않고 있다. 통계청은 2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잠시 일손을 놓은 일시 휴직자가 전국에 61만 8000명이라고 발표했다. 2019년 같은 달보다 14만 2000명(29.8%) 증가해 8년 5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난 숫자다.
코로나19 사태로 무급휴직 등 직장 내 갑질을 겪는 노동자가 늘고 있는 가운데 직장갑질 119는 ‘코로나 갑질 긴급 예방 수칙’을 내놨다. 직장갑질 119는 “근로기준법상 코로나19를 이유로 무급휴가 동의서를 강요하는 건 위법이고, 코로나19로 해고를 당했다면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할 수 있다”며 노동자를 위한 예방 수칙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특히 최근 일상화된 무급휴직의 경우,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무급휴직을 실시할 땐 평균임금의 70% 이상의 휴업수당을 지급해야 하며 예외적으로 매출이 급감하는 등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을 때도 ‘노사 합의’를 통해 무급휴직을 실시할 수 있다. 이미 코로나19로 인한 무급휴직 동의서를 썼다면 “지금이라도 무급휴직 동의를 철회하고 근로를 제공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밝혀야 한다”고 이 단체는 제안했다. 아울러 사업장 경영 상황, 무급휴직 동의서 작성 경위, 노조와 합의 여부 등에 대한 증거를 정리해둬야 한다.
▶서울시 재난긴급생활비 신청이 시작된 3월 30일 오후 서울 송파구 마천2동주민센터에서 공무원들이 긴급생활비 신청 여부에 대한 안내를 하고 있다.│연합
감원 대신 휴업 택한 사업주 인건비 경감
정부는 대안 마련에 나섰다. 기업들이 코로나19 위기에도 최대한 고용을 유지하며 버틸 수 있도록 고용유지지원금을 현재 1000억 원에서 5000억 원으로 확대하고, 지원 수준도 전 업종에 대해 4∼6월 3개월간 한시적으로 크게 상향하기로 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3월 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2차 코로나19 대응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제2차 위기관리대책회의’ 모두 발언에서 “코로나19 영향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교육, 도소매, 제조업 등 거의 모든 업종에 걸쳐 고용유지지원금 신청이 급증하는 상황”이라며 “이를 통해 고용 유지를 위한 사업주의 자부담 비율이 크게 낮아지고, 근로자 고용불안도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감원 대신 휴업·휴직을 택한 사업주의 인건비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고용보험법 시행령’을 4월 중 개정할 예정이다. 노동부는 3월 25일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속히 상향 지급할 수 있도록 고용보험법 개정, 고용보험기금 운용 계획 변경에 필요한 절차를 조속히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기업이 적극적으로 고용을 유지하도록 3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고용유지지원금 수준을 모든 업종에 (휴업·휴직수당의) 최대 90%로 상향 조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고용유지지원금 수준은 중소기업 등 소규모 사업장인 ‘우선 지원 대상 기업’과 대기업에 달리 적용된다. 우선 지원 대상 기업의 고용유지지원금은 당초 휴업·휴직수당의 67%(3분의 2)였는데 정부는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면서 2월 75%(4분의 3)로 인상했다. 여행업처럼 특별고용지원 업종으로 지정된 업종의 우선 지원 대상 기업은 휴업·휴직수당의 90%를 받는다. 노동부의 이번 조치로 모든 업종의 우선 지원 대상 기업이 특별고용지원 업종과 같은 수준의 고용유지지원금을 받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이 휴업에 들어가 월급 200만 원인 노동자에게 휴업수당으로 140만 원(평균임금의 70%)을 준다면 정부가 사업주에게 지급하는 고용유지지원금은 105만 원(휴업수당의 75%)에서 126만 원(휴업수당의 90%)으로 오른다. 사업주가 14만 원을 부담하면 휴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금융사 외환건전성 부담금 한시 면제
대기업의 경우 고용유지지원금은 당초 휴업·휴직수당의 50%였으나 2월에 67%로 올랐다. 이번 조치에도 대기업의 지원금 수준은 67%로 유지된다. 정부가 고용유지지원금 지원을 강화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주문에 따른 것이다. 문 대통령은 3월 24일 제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고용유지지원금의 대폭 확대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달라”고 말했다.
고용유지지원금 상향 조정은 4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휴업·휴직 조치를 하고 휴업·휴직수당을 지급한 사업장에 적용된다. 노동부는 상향 조정한 기준에 따른 고용유지지원금을 5월부터 지급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지원금 예산을 1004억 원에서 5004억 원으로 대폭 늘릴 계획이다.
노동부가 코로나19 확산에 대응해 고용유지지원금 수급 요건을 완화한 1월 29일부터 3월 24일까지 고용유지지원금을 받기 위해 휴업·휴직 신고를 한 사업장은 1만 9441곳에 이른다. 이 중 30인 미만 영세 사업장이 90%를 넘는다. 휴업·휴직 대상 노동자는 15만 8481명이다.
정부는 또 금융회사의 외환건전성 부담금을 한시 면제하고, 은행의 원활한 무역금융 공급 등을 위해 외화 유동성 커버리지(LCR) 규제 부담도 한시적으로 완화한다. 기업과 금융회사들이 외화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외환 분야 거시건전성 규제를 완화하기로 한 것이다. 외화 LCR는 향후 30일간 순(純)외화유출 대비 고(高)유동성 외화자산의 비율로, 금융회사의 외환건전성을 측정하는 지표다.
박유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