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탄소년단(BTS)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대중문화 예술인들이 이끈 ‘신한류’ 덕에 국내 대중문화예술산업 규모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반가운 결과가 나왔다. 3월 11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19년 대중문화예술산업 실태조사’(2018년 기준, 격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중문화예술산업 전체 규모는 6조 4210억 원으로 2016년 5조 3691억 원보다 19.5%나 성장했다. 특히 대중문화예술산업 전체 매출액 가운데 해외 매출은 8742억 원을 기록하며 2016년 5175억 원에 이어 성장세를 이어갔다. 콘텐츠진흥원 측은 “세계 시장에서 한국 드라마, 영화,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와 방탄소년단 등 K-팝 아이돌 그룹 활동이 매출 상승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른바 ‘신한류 현상’이 우리 경제에 끼치는 긍정적 영향은 여러 보고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2019년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류 콘텐츠 수출 100달러 증가 시 연관 소비재 수출은 248달러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체부는 영화 <기생충>의 연이은 해외 수상 소식과 방탄소년단의 인기몰이 등 신한류 부상의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는 속에서 ‘문화로 행복한 국민, 신한류로 이끄는 문화경제’를 목표로 2020년 업무계획을 발표했다. 코로나19 피해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신한류 확산으로 관광·소비재 등 연관 산업을 동반 성장시키겠다는 방향이다. 박양우 문체부 장관은 3월 5일 2020 업무계획을 발표하면서 방탄소년단과 <기생충> 등의 성과를 언급하고 “문화는 국민의 행복에 직접 영향을 주고 국가 경제에도 상당한 기여를 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쉽지는 않겠지만 문체부는 할 수 있는 모든 정책과 수단을 동원해 문화·체육·관광 활성화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신한류 현상의 특징과 경제적 파급효과 그리고 정부가 내놓은 관련 정책 등을 살펴봤다.
신한류 현상 특징과 파급효과
전 세계가 BTS 노래 떼창하고 ‘기생충’에 열광
“처음엔 실감이 안 났다. 근데 진짜로 일어난 일이더라. 살다 보니 이런 때가 다 오는구나 싶었다. 기쁜 일이다.”
직장인 고정희(47) 씨는 최근 세계 대중음악계와 영화계에서 들려온 연이은 희소식에 ‘격세지감’이라고 표현했다. 외국 배우들이 나오는 외화와 영미 가수들이 부른 팝송에 익숙한 청소년기를 보낸 그에게 세계 사람들이 한국어로 된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떼창하고, <기생충>에 기립 박수를 보내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빌보드 차트 석권, 월드 투어 콘서트 매진, 유엔 연설, 비틀스 이후 최단기간 4개 앨범(빌보드 차트) 1위 달성 등 방탄소년단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대중문화계에 매일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미국 CNN 방송은 ‘2010년대 음악을 변화시킨 10대 아티스트’로 방탄소년단을 선정했다.
세계 젊은이들이 방탄소년단을 계기로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음식과 한국 관광을 즐긴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음악이 세계적으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사랑받는 이유로 “동시대 사람들의 진솔하고 보편적인 감성을 대변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최근 영화 <기생충>의 잇따른 해외 수상 역시 우리 콘텐츠가 세계인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한국적 소재와 정서를 활용하면서도 빈부 격차와 양극화라는 보편적인 주제 의식을 잘 담아냈다고 평가받는 <기생충>은 2019년 제72회 칸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올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외국어영화상)까지 휩쓸었다. 특히 비영어권 영화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해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김현환 문체부 콘텐츠정책국장은 “방탄소년단과 영화 <기생충>은 무엇보다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메시지와 스토리에 한국적인 해석을 더한 콘텐츠를 만들어내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을 수 있었다”며 “봉준호 감독이 수상 소감으로 인용해 더 유명해진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말처럼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기에, 한국인의 독특한 창의력과 섬세한 미학에 세계인이 탄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유튜브 등 온라인 중심의 콘텐츠 소비환경 변화로 전 세계에서 한국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고, 누리소통망(SNS) 등을 통해 한류 팬들 간에 소통하고 공유하는 문화가 형성된 것도 신한류 확산의 중요한 배경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게임·언어·음식·패션… 한국 문화 전 범위서 사랑
1990년대 말부터 불어온 ‘한류’가 아시아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면 최근의 한류 현상은 세계 대중문화 산업의 핵심인 영미권을 중심으로 전 세계 시장에서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는 데 차이가 있다. 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고정민 교수는 “과거엔 우리가 현지에 맞는 전략을 선택해서 그곳 시장에 진입하려 했다면 이젠 우리 콘텐츠를 현지에서 특별하게 평가하는 등 상황이 달라졌다”며 “그만큼 우리 콘텐츠의 경쟁력이 높아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류’라는 용어는 1990년대 말 중국에서 <사랑이 뭐길래> 등의 드라마와 클론, HOT 같은 아이돌 그룹들이 대형 콘서트를 통해 선풍적 인기를 얻는 현상을 현지 언론이 보도하는 과정에서 처음 등장했다. 최근에는 게임, 영화는 물론 언어, 음식, 패션 등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한국 문화의 범위가 크게 확대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기생충>에 나오는 ‘짜파구리’에 한우 토핑을 얹은 인증 사진이 미국인들 사이에 공유되고, 방탄소년단 캐릭터 ‘BT21’을 적용한 화장품이 출시 뒤 하루 만에 매출이 15배 뛰었을 정도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18년 12월 발표한 ‘방탄소년단의 경제적 효과’ 보고서를 보면 실제로 이 그룹의 연평균 국내 생산 유발 효과는 4조 1400억 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연간 약 1조 4200억 원으로 추정된다.
방탄소년단의 인기가 수출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어마어마하다. 연구원은 방탄소년단 인지도가 1%포인트 증가할 때 주요 소비재 수출액 증가율은 의복류 0.18%포인트, 화장품 0.72%포인트, 음식류 0.45%포인트 오른다고 분석했다.
최근엔 <기생충>의 해외시장 약진도 두드러지고 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4관왕 수상에 힘입어 북미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차지하는 등 글로벌 흥행 가도를 달렸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기생충>의 경제 파급효과를 1조 4000억 원으로 추산했다.
한류 소비층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두터워졌다. 한국국제교류재단 조사에 따르면 해외 한류 동호회 회원 수는 2014년 2200만 명 수준이었으나 2019년에는 약 9900만 명으로 5년간 4배 이상 증가했다. 지역 면에서도 중국, 일본, 동남아 등 아시아권을 넘어 미주, 유럽, 중동 지역 등 전 세계로 인기가 확산되는 추세다. 김현환 국장은 “한류 콘텐츠가 대중문화 콘텐츠를 넘어 한국 문화 전반으로 확대되고, 소비재 수출과 서비스 산업 등 연관 산업과 융합이 가속화되며, 감동 체험 등을 통한 정서적 유대감 확대로 한류 지속기반이 공고해지는 것, 그것이 신한류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2019년 9월 17일 서울시 동대문구 콘텐츠 인재캠퍼스에서 나영석 PD가 ‘한국 콘텐츠의 오늘과 내일’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연관 산업 동반 성장, 우리 경제 새로운 돌파구
콘텐츠산업을 중심으로 신한류 현상을 확산하고 연계 산업 성장 등을 이끌어 경제적 파급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도 구체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이는 3월 5일 문체부가 발표한 2020년 업무계획 ‘문화로 행복한 국민, 신한류로 이끄는 문화경제’에도 반영돼 있다.
업무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 콘텐츠산업은 2019년 처음 100억 달러 수출 실적을 이루는 등 한류 확산의 바탕이 되고 있다. 이에 문체부는 2020년 금융·세제 지원, 기업 육성, 인력 양성, 신기술 개발 등 전방위적 정책으로 콘텐츠산업의 혁신성장을 지원하기로 했다. 새로운 시도에 투자하는 ‘모험투자펀드’ 신설, 단계별 기업 성장 지원 및 분야별 현장 인재 양성, ‘실감콘텐츠’ 본격 육성, 연구개발(R&D) 확대로 신기술 개발 촉진 등의 지원을 한다는 내용이다. 게임법 전면 개정, KSPO DOME(올림픽체조경기장) K-팝 전용 공연장화, 웹툰융합센터 조성, 애니메이션 전문 펀드 신설 등 주요 분야별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계획도 담겼다.
콘텐츠산업 활성화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최근의 일은 아니다. 콘텐츠산업 활성화 측면에서 한류 확산은 ‘공정한 문화산업 생태계 조성 및 세계 속 한류 확산’이라는 내용으로 문재인정부 10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돼 있다.
최근 세계적 유통망(플랫폼)의 성장과 함께 한국 콘텐츠의 해외 진출이 쉬워진 반면 국제 경쟁 또한 심화되고 있다. 또한 5세대 이동통신(5G)의 상용화에 따라 실감콘텐츠(현실 세계를 가장 비슷하게 나타내고자 하는 콘텐츠)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등장하는 등 콘텐츠 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이에 문체부는 2018년 ‘콘텐츠산업 경쟁력강화 핵심전략’, 2019년 ‘콘텐츠산업 3대 혁신전략’ 등을 발표하며 콘텐츠산업 활성화를 통한 한류 확산과 연관 산업 성장 견인 등의 청사진도 제시했다. ‘정책금융 확충으로 혁신기업의 도약 지원’ ‘선도형 실감콘텐츠 육성으로 미래 성장동력 확보’ ‘신한류로 연관 산업의 성장 견인’ 등 3대 전략을 통해 환경 변화에 대응하고, 콘텐츠산업을 성장시키며 연관 산업의 동반 성장을 이끄는 등 우리 경제의 새로운 돌파구로 삼는다는 전략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2022년까지 콘텐츠산업 매출액 150조 원, 수출액 134억 달러를 돌파하고, 고용은 70만 명으로 성장할 것으로, 한류에 따른 직접적인 소비재 수출은 50억 달러, 한류 관광객은 180만 명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9월 17일 열린 ‘콘텐츠산업 3대 혁신전략 발표회’에서 “문화콘텐츠 수출은 최근 5년간 연평균 16% 이상 성장, 2019년 한 해에만 100억 달러의 수출 성과를 올렸고, 세계 7위의 콘텐츠 강국으로 발돋움했다. 분야별로는 반도체 다음가는 성장세”라고 설명하면서 “우리가 콘텐츠 강국이 된 것은 창의성과 혁신적 기술, 기업가 정신으로 도전한 수많은 창작자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콘텐츠산업 3대 혁신전략으로 창작자들의 노력에 날개를 달아주겠다”고 밝혔다.
▶<킹덤 시즌2> 누리집
코로나19에도 넷플릭스서 <킹덤2> 약진
코로나19 사태로 신한류 현상이 위축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무색하게 대중음악과 영화에 이어 최근엔 드라마가 주도하는 신한류 열풍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3월 13일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시즌2>가 전 세계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드라마는 미디어 비평가들에게서도 ‘역작’이라는 극찬을 받고 있다.
고정민 교수는 “집에 머물면서 유튜브로 음악을 듣고,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며 문화를 소비하는 상황”이라며 “코로나19로 신한류 현상도 위축될까 걱정할 수 있지만 오프라인 라이브형이 아닌 온라인형 콘텐츠에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콘텐츠산업이 가치가 있으며 성장 가능성도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 이와 더불어 혁신적인 콘텐츠산업을 진흥하려는 다양한 정책을 펼치면서 기업 진입도 활발해지고, 창작자의 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청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