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5일 서울 금천구의 코로나19 진단시약 제조업체인 코젠바이오텍에서 연구원들이 실험을 하고 있다.│연합
경제 살리기 추경 어떻게 쓰이나
3월 25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수송기가 착륙했다. 한국산 방호복을 긴급 수송하기 위해 루마니아가 투입한 C-17이었다. 수송기는 한국산 방호복 10만 벌(약 45톤)을 실은 뒤 되돌아갔다. 외교부 관계자는 “루마니아가 방호복을 실어 나르기 위해 나토 수송기를 투입했다”고 설명했다.
이 방호복은 한국이 지원한 게 아니라 루마니아가 구입했고, 자체 수송 여건이 되지 않는 루마니아가 헝가리에 있는 나토 수송기를 한국에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루마니아는 국내 업체와 코로나19 진단 도구 2만 개 공급계약을 맺기도 했다. 해당 계약은 정부가 재외공관을 통해 해외에서 국내 생산 진단 도구에 대한 수요를 파악하고, 한국 공급업체와 연결해 이뤄졌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루마니아 말고도 한국으로부터 진단 도구를 수입하거나 지원해달라고 요청하는 국가가 줄을 잇고 있다. 3월 24일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코로나19 진단 도구 등 방역물품을 긴급하게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정부는 3월 26일 코로나19 방역물품 해외진출 지원 관계부처 태스크포스(TF) 1차 회의를 열고 효과적인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전 세계적 코로나19 상황 악화로 여러 나라가 코로나19 진단 도구 등의 수입 또는 인도적 지원을 요청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이날까지 외교 경로를 통해 진단 도구 수입에 대해 문의하거나 요청한 곳은 51개 나라, 인도적 지원을 문의한 곳은 50개 나라 등 모두 101개 나라다. 이들 국가는 직접 국내 업체에 연락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의치 않으면 외교 경로를 통해 수출 여부를 타진하기도 한다. 외교부는 “정부는 앞으로 TF를 통한 진단 도구의 해외 진출과 유엔 등 국제기구 지원 확대로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 공조 노력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바이오·의료 R&D에 1500억 원 추가 투자
코로나19로 한국의 바이오·의료 기술력을 세계가 인정한 가운데, 3월 17일 국회를 통과한 추가경정예산(추경)에는 바이오·의료 기술개발 등 감염병 대응체계 보강을 위한 예산이 1500억 원 증액됐다. 우선 신속한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위한 바이오·의료 연구개발(R&D) 투자 확대를 위해 42억 원을 신규 편성했다.
마스크 생산능력 확충과 마스크 생산의 핵심 원자재인 특수 부직포 멜트블론(MB) 필터의 해외 조달, 주말 생산 장려금(인센티브) 등 마스크 공급 확대를 지원하기 위해 848억 원을 신규 증액했다. 감염병 환자 전문·집중 치료를 위한 국가지정 음압격리병상을 정부안보다 150개 더 늘려 300개 확충하도록 375억 원을 늘렸다.
추경 이전에도 정부는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었다. 코로나19 유입 초기 단계이던 1월 말에는 코로나19로 편성된 예산이 없자 미집행 예산이었던 약 16억 원으로 국내 제약사들이 전용 치료제 개발 연구에 신속히 착수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뒤이어 예비비 10억 원을 투입했고, 추경 50억 원까지 모두 60억 원을 지원하는 셈이다.
정부는 올해 출범 예정인 백신실용화기술개발사업단의 예산인 119억 5000만 원도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최대한 투입할 계획이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 개발에 대한 연구 지원과 함께 임상 계획 승인을 신속하게 진행 중이며, 치료제와 백신 개발 연구를 위해 국내 연구자, 제약기업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국립국가바이러스·감염병연구소 설립 및 치료제 임상시험 40억 원, 인수공통 감염병 등 신종 코로나 치료제 연구 10억 원도 추경에서 확보됐다. 국가바이러스·감염병연구소는 10월 충북 오송에 완공 예정인 질병관리본부 공공백신개발지원센터를 확대 개편한다. 바이러스·감염병 연구를 위한 연구개발 예산인 바이오·의료기술 개발사업 예산도 21억 5000만 원 증액됐다. 이번 추경으로 기존 약물 재활용을 위한 설비 확충 등 신종 바이러스 치료제 발견에 긴급 대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소상공인·중소기업에 1.5% 초저금리 지원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중소기업·소상공인 등을 위해 연 1.5% 수준의 초저금리 대출을 4월부터 시작했다. 정부는 추경을 통해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상 초저금리 대출 4조 6000억 원 추가 공급을 위한 중소기업은행 출자금 4125억 원과 특례보증, 유동화 회사보증, 시중은행 이차보전 등 금융지원을 확대하기 위한 신용보증기금 출연금 4022억 원을 확보했다. 소상공인·자영업자 대상 초저금리 대출 규모를 기존 1조 2000억 원에서 5조 8000억 원으로 늘린다. 연말까지 9개월 동안 시중은행의 월별 이차보전 대출 실적(대출금리 감액분)의 80%를 정부가 은행에 재정으로 지원한다.
또 경영상 어려움을 겪는 주력산업 및 중소·중견기업에 대해서는 채권담보부증권(P-CBO)을 기존 1조 2000억 원에서 1조 7000억 원으로 5000억 원 확대 공급한다. P-CBO는 신용도가 낮아 회사채를 직접 발행하기 힘든 기업의 신규 발행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유동화 증권을 발행해 기업이 직접금융시장에서 저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코로나19로 자금 위축 우려가 있는 기업의 자금 조달을 지원하고자 신규로 1조 6800억 원의 P-CBO도 발행한다.
저신용 소상공인도 5일 안에 원스톱 대출
낮은 신용등급 때문에 대출까지 긴 시간이 걸리는 소상공인에게 단기성 자금을 5일 안에 대출해주는 ‘신속 처리제(패스트 트랙)’를 도입했다. 지금까지 경영안정자금 등 정책자금 대출을 원하는 소상공인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에서 소상공인 여부와 매출 피해를 확인받은 뒤 지역신용보증재단(지역신보)에서 보증을 받아 은행 등에서 대출을 받는 3단계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7등급 이하 저신용자는 지역신보 보증심사에서 탈락하거나 오랜 시간이 걸려 대출 집행까지 2개월 가까이 걸린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 때문에 위기에 몰린 저신용 소상공인에게 금융지원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자 중소벤처기업부는 소진공에서 대출 3단계를 한 번에 처리하는 원스톱 대출 제도를 마련한 것이다.
신용등급 4등급 이하의 피해 소상공인은 이 제도가 시행되는 4월부터 근처 소진공 센터를 찾으면 보증서 없이도 1000만 원(대구 등 특별재난지역은 1500만 원) 한도 내에서 평균 5일 안에 대출이 가능하다. 다만 국세나 지방세 등 세금 체납이 있는 소상공인에게는 대출이 제한된다. 소진공은 3월 19일 국세청과 업무협약을 맺어 세금 체납 여부를 즉석에서 확인할 수 있어 자금을 신청하는 소상공인은 세무서를 따로 가지 않아도 된다.
신용등급이 7~10등급인 저신용자는 소진공을 이용해야 하지만, 1~6등급의 신용자는 소진공 말고도 기업은행과 시중은행에서 1.5%로 긴급경영안정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창구를 확대했다. 소상공인 경영안정자금 12조 원 가운데 소진공이 2조 7000억 원, 기업은행이 5조 8000억 원, 다른 시중은행이 3조 5000억 원을 각각 나눠 지원한다. 신용등급이 높은 1~3등급의 소상공인은 기업은행을 포함한 시중은행에서 1.5% 긴급경영안정자금을 받을 수 있다.
시중은행의 기존 금리와 차이는 정부가 보전한다. 4~6등급의 중신용자는 기업은행에서 1.5%의 금리로 대출이 가능하다. 소진공이나 지역신보를 찾아가 확인서나 보증서를 발급받을 필요 없이 은행에 대출을 신청하면 은행이 신보 등에 연락해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는 방식으로 절차를 간소화했다. 기업은행과 시중은행에서는 소진공 직접 대출과 달리 1000만 원 이상 대출할 수 있지만, 은행이 실사 등을 거쳐 지역신보로부터 보증서를 받아야 해 대출까지 2주 이상 걸릴 수 있다.
원낙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