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축구연맹이 세계보건기구와 공동 제작한 코로나19 동영상에 출연한 리오넬 메시와 박지성 │코로나19 예방 캠페인 동영상 갈무리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
사전적 의미를 보면 ‘날씨가 추워진 뒤에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라는 뜻으로 돼 있다. 함축된 의미는 지사의 훌륭한 뜻과 기상은 나라가 어려울 때에야 알게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선인들의 지혜가 담긴 이 옛말을 코로나19로 멈춰 선 스포츠에 비유하면 지나칠까.
그동안 스포츠는 늘 우리 주변에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주말 텔레비전을 틀면 언제든 스포츠를 접할 수 있었다. 경기장에 직접 가서 관전하는 것은 하나의 문화였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세계 모든 스포츠가 중단되는 전에 없던 사태에 충격은 컸다.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처럼 스포츠가 사라진 빈자리는 더 절실하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스포츠는 생활의 일부다. 프로야구와 프로축구의 개막으로 사람들은 봄의 시작을 감지한다. 가을밤 냉기 속에 펼쳐지는 프로야구는 겨울을 예고한다. 사람들은 경기장에서 웃고 떠들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걸 느낀다. 관람석(스탠드)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울리면서 살아 있다고 느끼는 역동적인 공간이다.
유명 선수들 ‘#스테이앳클럽하우스’ 챌린지
2020년 풍경은 코로나19로 황량하다. 프로농구와 프로배구, 여자 프로농구는 시즌 도중에 리그를 모두 마감했다. 안간힘을 쓰기라도 하듯 무관중 경기를 펼쳤지만 선수들이나 구단 관계자의 힘만 빠졌다. 관중 없는 경기가 기괴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2019~2020시즌에는 우승팀도 없고, 챔피언도 존재하지 않는다. 비정상적으로 끝나는 바람에 자료나 통계를 내기도 복잡해졌다.
그러나 스포츠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거리두기’가 가능한 알래스카 극지방에서는 개 썰매가 열리고, 경사진 인공 지형에 구슬을 굴려 승패를 가리는 온라인 ‘구슬 경기’엔 사람들이 몰려 접속한다.
리그 중단으로 집에 눌러앉게 된 스포츠 스타들이 온라인을 통해 몸의 근질근질함을 해소하는 것은 트렌드다. ‘스테이앳홈챌린지(#stayathomechallenge)’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20초간 손을 씻자는 의도로 시작된 이 온라인 행사에는 유명 축구선수들이 참여하면서 세계적인 놀이로 변했다.
예를 들면 레알 마드리드의 개러스 베일은 축구공 대신 골프를 택해 묘기를 선보였다. 자기 집 거실에서 골프백 앞에 두루마리 휴지를 비스듬히 세운 뒤 골프채로 칩샷을 시도한 그는 휴지 심에 정확하게 골프공을 꽂아 넣어 팬들에게 볼거리를 선물했다. 베일은 인스타그램에 ‘홀인원’이라는 글을 남긴 뒤 타이거 우즈, 로리 매킬로이, 세르히오 가르시아를 핵심어 표시(해시태그) 하며 스테이앳홈챌린지에 동참해달라고 요청했다.
국내 K리그 구단들도 이 대열에 합류해, 훈련장인 클럽하우스에서 동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스테이앳클럽하우스’ 챌린지를 시작했다. 제주유나이티드FC의 남기일 감독과 주민규 등 선수들이 훈련 뒤 20초간 손을 씻으면서 공 튀기기(리프팅)를 하는 영상을 처음 올렸고, 울산현대축구단의 마스코트인 미호와 건호가 리프팅을 시도한 영상을 올리는 등 캠페인이 확산되고 있다.
▶‘스테이앳클럽하우스 챌린지’에 도전한 제주유나이티드FC 선수들과 울산 현대축구단의 마스코트│ 한국프로축구연맹
박지성·메시, FIFA 코로나19 예방 캠페인 참여
다른 팀과 경기가 금지된 프로야구 구단들도 자체 평가전 중계를 통해 팬들의 열망에 부응하고 있다. KIA 타이거즈는 3월 23~29일 격일로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진행되는 자체 홍백전 4경기를 유튜브 유통망(채널)인 ‘기아 타이거즈 TV’를 통해 생중계했다. 프로야구 중계를 담당하는 지역 케이블방송의 해설자가 직접 출연해 중계의 질을 높였다.
한화 이글스도 대전에서 진행되는 연습 경기를 구단 유튜브 채널인 ‘이글스TV’에서 실시간 방송했다. 관심과 흥미를 돋우기 위해 퀴즈를 통해 기념품을 증정하기도 했다. 두산 베어스 역시 스포츠마케팅 기업과 손잡고 5대 이상의 카메라를 설치하고 해설위원과 해설자를 동원해 자체 경기를 중계했다.
세계적으로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세계보건기구(WHO)와 함께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영상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영상에는 은퇴한 박지성 선수를 비롯해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 알리송 베커(리버풀 FC) 등 스타가 출연했다. 박지성이 짧게 등장하는 영상의 자막에는 “코로나바이러스를 물리치려면 결단력과 규율, 팀워크가 필요하다”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메시는 “얼굴과 눈, 코, 입을 만지지 말라”고 주문했고, 조제 모리뉴 토트넘 감독은 “다른 사람과 최소 1m 거리를 두라”고 당부했다. 팬들은 익숙한 얼굴을 만나는 즐거움과 동시에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된다.
코로나19는 4년 주기의 2020 도쿄올림픽마저 정상 개최를 가로막았다. 희망을 갖고 현재의 시련을 물리친다면 세계인이 어울리는 축제는 다시 열린다. 인간의 역사는 그렇게 발전해왔는지 모른다.
4월이 돼 프로축구와 프로야구가 개막한다면 팬들은 오랫동안 기다린 스포츠의 복귀를 새로운 눈으로 반길 것이다. 그것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달라진 스포츠 문화일 것이다. 선수들 또한 관중의 존재를 감사해할 것이다.
김창금_ <한겨레>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