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떠나 공부하고 오너라.”
스위스의 늙은 백작은 하나뿐인 아들에게 이렇게 명령한다. 아들을 바보라고 여겨 외부에서 고생하며 뭔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배워 오라는 뜻이었다. 아들은 떠나기 싫었지만 아버지의 명령은 냉혹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정도였다.
1년 뒤 돌아온 아들에게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으니 “개들이 짖을 때 무슨 말을 하는지 배웠다”고 답했다. 만족하지 못한 백작은 화를 내며 더 배우고 오라고 내쫓았다. 1년 뒤에 돌아온 아들은 “새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배우고 왔다”고 했다. 아버지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이처럼 쓸모없는 것만 배우고 오려면 아예 돌아오지 말라”며 또 내쫓았다. 1년 뒤에 돌아온 아들은 “개구리 말을 배웠다”고 했다. 더는 참지 못한 백작은 하인들에게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했다. 하인들은 아들을 숲으로 데려갔지만 차마 죽일 수 없어 숲속에 놓아주었다.
아들은 숲속을 헤매다 가까스로 한 성을 찾아내 하룻밤 재워달라고 요청했다. 성주는 버려진 탑 위에서 자는 것은 괜찮지만 개에게 물려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아들은 개들이 저주받은 상태에서 탑 밑의 보물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개들의 대화를 듣고 알았다. 그는 성주에게 보물을 찾게 해줌으로써 성주의 양아들이 됐다. 아들은 세상을 좀 더 알기 위해 로마로 갔다. 가는 길에 그는 늪지에서 개구리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로마에 도착하니 교황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고 추기경들은 새 교황에게 하느님의 신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성당 입구에 나타나자 하얀 비둘기 두 마리가 그의 어깨에 앉았다. 추기경들은 그것을 하느님의 신호로 받아들이고 그에게 교황이 되어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자기가 교황 될 자격이 없다고 사양했지만, 비둘기가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했다. 그가 도중에 개구리에게 들은 말은 그가 교황이 된다는 예언이었다.
현재의 잣대로 미래를 판단하지 말라
<그림 동화>의 ‘세 가지 말(The Three Languages)’에 나오는 이야기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선 지나간 것 또는 현재의 잣대로 미래를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아들이 배운 개와 새, 그리고 개구리의 말은 아버지에겐 아무 쓸모 없는 것이었지만 미래 세대인 아들이 교황에 오를 수 있도록 한 앞선 지식이었다(물론 비유다). 과거와 현재의 성공 요인과 동떨어져 어리석고 미친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다음 세대의 핵심 역량으로 바뀌는 사례는 역사에서 수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따라서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에게 현재의 가치 서열에 따른 암기식 지식 전달을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학교에서 모범생이 되고 사회에서 연봉이 많은 샐러리맨이 되는 것이 성공이라고 세뇌된 기성세대는 방탄소년단(BTS)과 <미스터트롯>의 열네 살 ‘정동원 신드롬’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과거지향으로는 미래지향의 인재를 키워내는 데 한계가 많다. 지금 인기를 끌고 있는 직업 가운데 절반 이상은 20~30년 안에 없어지는데, 아이들에게 지금의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는 일이다.
코로나19가 중국과 한국을 넘어 미국과 유럽으로 확산하면서 전 세계가 ‘코로나19발 공황’에 빠져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지식으로 알기 어려운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이 ‘합리적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다. 마스크 품귀 현상이 장기화되면서 미국과 유럽의 대형 할인점에서는 사재기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사재기는 사람의 이성이 불안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휘둘려 빚어지는 비합리적 군중행동이다. 모든 사람이 필요한 만큼만 사면 상품은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남아돈다. 그런데 근거 없는 소문(중국에서 만드는 화장지가 수입되지 않으면 품귀 현상이 빚어질 것)으로 불안이 퍼지면 남보다 앞서 물건을 많이 사두려고 한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을 너도나도 사려고 하니 물건이 부족해진다. 물건 부족은 불안을 높이고 사재기를 더욱 부채질한다. 한국에서 단군 이래 처음으로 ‘마스크 5부제’를 실시할 수밖에 없는 것도 사재기로 인한 ‘마스크 대란’에 대응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구성의 오류에서 벗어나기
사재기로 인한 혼란은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의 대표적 사례다.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는 옳고 합리적인 선택일지라도 사회 전체적으로는 뜻하지 않은 부정적 결과를 가져온다. 감염을 우려해 집 안에 머물기만 하면 소비가 줄어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도 구성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내신 성적을 좋게 하기 위해 한두 사람이 시작한 선행학습이 다른 학생 모두에게 확산되면서 엄청난 과외, 학원비라는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도 소기의 목표를 이루기 어려워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구성의 오류에서 벗어나려면 양보와 정도(正道)가 이익이라는 믿음이 확립돼야 한다. 마시멜로를 지금 2개 먹을 수 있지만 15분 참으면 3개를 받는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모두가 지금 2개(이상)를 먹으려고 아우성치지 않을 것이다. 사재기와 구성의 오류는 <그림 동화>의 ‘세 가지 말’을 깨친 미래지향적 깨달음으로 이겨낼 수 있다.
홍찬선_ <한국경제> <동아일보> <머니투데이>에서 28년간 기자를 지냈다. 저서로 <주식자본주의와 미국의 금융지배전략> <임시정부 100년 시대 조국의 기생충은 누구인가>, 역서에 <비즈니스 경제학> <철학이 있는 부자> <부자가 되려면 부자에게 점심을 사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