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도에서 소무의도로 넘어가는 다리 위에서 바라본 무의도 광명항. 서해안 섬들이 평화롭기만 하다.
눈이 부시다. 막힘이 없다. 시원하다. 바다를 바라본다. 봄날의 따사로운 햇살이 바다 물결 위에 반사된다. 찬란하다. 그 부드러움이 비단결 같다. 섬을 걷는다. 바다 위에 떠 있는 한 점의 섬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상상력을 자극했던가. 하늘을 나는 갈매기의 자유로움을 갈망하고, 부러워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에겐 바다와 섬이 바로 곁에 있다. 하지만 정서상 거리감이 존재했다. 바다는 왠지 멀리 있는 듯 느껴졌고, 섬은 비현실적인 공간이었다.
한국에는 섬이 몇 개나 있을까? 우리가 보유한 섬의 개수는 전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많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2018년 8월 한국의 섬은 모두 3348개이고, 이 가운데 유인도는 472개, 무인도는 2876개라고 발표했다. 이는 인도네시아(1만 5000여 개), 필리핀(7100여 개), 일본(6800여 개)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섬이 많은 나라라는 것이다.
서울 도심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이면 도착
이처럼 섬이 많으나 섬과의 감정이 그리 살갑지 않은 이유가 있다. 역사적으로 그림자가 있다. 바로 공도(空島)정책 때문이다. 섬에 살지 못하게 했다. 섬 거주민을 강제로 본토로 이주시킨 정책이다. 고려 말과 조선 초기 왜구의 침입이 심했다. 섬을 비워야 그들의 약탈을 막을 수 있었다. 또 죄인들이 섬으로 도망치고, 섬 주민들이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주도와 거제도 등 큰 섬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섬에 대해 공도정책을 시행했다. 또 죄지은 이들을 섬으로 귀양 보냈다. 그때부터 섬에 사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차별을 받았다. ‘육지 사람’과 ‘섬사람’ 사이에 거리감이 생겼고,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훌쩍 떠나보자. 서울에서 한 시간이면 바다를 만끽할 수 있다. 또 느긋하게 걸어서 섬을 한 바퀴 돌아보자. 섬과의 일체감을 쉽게 느낀다. 코로나19로 답답함이 우리를 억누르고 있다. 마스크를 벗고 깨끗한 바닷바람을 폐 깊숙이 들이쉬자. ‘집콕’과 ‘방콕’에서 탈출하자. 무의도와 소무의도로 떠나자. 서울 도심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이면 도착한다. 다리가 있어 배를 타지 않아도 된다.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 바로 옆에 있다. 차 타고 기분 전환하고 올 수 있는 ‘드라이브 스루(drive-through) 여행지’다.
대중교통으로도 접근이 편하다. 공항철도로 인천공항1터미널역에 도착해 자기부상열차로 갈아타면 섬 입구까지 갈 수 있다. 여기서 마을버스를 타면 무의도 한가운데로 이동한다.
▶무의도 하나개 해변의 모래사 장을 한 가족이 여유롭게 걷고 있다.
장군복 입고 춤을 추는 형상
섬의 모양새가 장군복을 입고 춤을 추는 것 같아 무의도(舞衣島)라 했다고 한다. 영화 <실미도>로 유명한 실미도와 소무의도가 붙어 있다. 무의도에서 실미도는 물이 빠지면 걸어서 들어갈 수 있고, 소무의도는 다리로 연결된다. 소무의도를 걸어서 일주해보자. 무의도 남쪽에 있는 광명항에 도착하면 소무의도로 연결되는 414m의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소무의도는 해안선 길이 2.5km의 조그만 섬이다. 50여 가구 90여 명이 살고 있다. 자기의 고유한 이름을 갖지 못하고 무의도에 속한 섬으로, 섬이 작아서 소무의도라고 불렀다. 무의도는 조선 말기까지 소를 키우던 목장이었지만, 소무의도에는 무의도보다 먼저 사람이 정착해 살았다. 300여 년 전 박동기라는 사람이 딸 세 명과 처음 들어와 살았다. 그가 유씨 청년을 데릴사위로 들이면서 유씨 집성촌이 형성됐다.
다리를 천천히 건너 섬에 들어서면 오른편으로 안산(해발 74m) 정상으로 가는 나무 계단이 있다. 가파르다. 곧 정자 ‘하도정(鰕島亭)’에 도착한다. 정자 이름에 ‘새우 하’ 자가 들어 있다. 이곳에서 새우가 많이 잡혔음을 보여준다. 눈이 시리게 바다가 펼쳐진다. 멀리 송도가 보인다. 고층 빌딩이 아스라이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팔미도도 보인다. 1903년 일제가 러일전쟁에 대비해 세운, 최초의 등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탓에 학교를 못 가는 자녀 둘을 데리고 서울에서 온 김일준(45세) 씨는 정자에 앉아 “오랜만에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다”며 “이렇게 가까운 곳에 바다와 섬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즐거워했다.
▶하하나개 해변의 일몰. 서울에서 한 시간 이면 환 상적인 일몰을 볼 수 있다.
가장 경관이 빼어난 ‘부처깨미길’
정자에서 가쁜 숨을 고르고 해변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는다. 은빛으로 빛나는 수평선을 배경으로 해녀섬이 눈앞에 보인다. 지난날 전복을 캐던 해녀들의 쉼터였다. 계단을 내려서면 해변이 펼쳐진다. 한가로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시간을 죽이는 이들을 볼 수 있다.
해안가에 자리한 ‘섬 이야기 박물관’이 눈길을 끈다. 카페도 있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차 한잔을 마신다. 마을로 들어가 본다. 슬렁슬렁 걷는다. 마당의 개도 사납게 짖지 않는다. 내심 낯선 이가 반가운 모양이다. 마을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들은 바다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2년여에 걸쳐 공공예술 프로젝트로 탄생한 벽화라고 한다.
다시 해안가 계단을 오른다. ‘부처깨미길’이 시작된다. 앞으로 톡 튀어나온 지점에 전망 데크가 있는데 이곳을 부처깨미라고 한다. 이 섬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만선과 안전을 위해 풍어제와 당제를 지내던 곳이다. 조금 더 바다를 바라보며 걷다 보면 어느덧 방파제에 도착한다. 한 바퀴 다 돌았다. 길이 잘 정비된 편이어서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도 한 바퀴 둘러보는 데 무리가 없다.
이 섬은 한때 조기와 새우잡이로 이름을 날렸다. 일제강점기에 수협이 있었을 정도다. 이 섬 주민들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몰래 지원받은 백범 김구 선생이 해방 후 감사의 표시로 다녀갔다. 6·25전쟁 때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군 병참기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무의도 해상관광 탐방로. 마치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햇살에 온몸 맡기면 일상의 피로가 사르르
아쉬움과 뿌듯함을 안고 무의도로 돌아간다. 광명항에서 자연산 회와 해물칼국수 등으로 배를 채운다. 바로 왼편으로 산에 오르는 길이 있다. 무의도에서 가장 높은 호룡곡산(虎龍谷山)으로 오르는 길이다. 이름이 거창하다. 호랑이와 용이 싸운 골짜기란 뜻이다.
해발고도 245.6m. 그리 가파르지 않아 주말에는 등산객들이 줄을 잇는다. 40분 정도 오르면 정상에 도착한다. 널찍한 데크가 설치돼 편히 쉴 수 있다. 신발을 벗고 편히 앉아 잠시 명상에 빠져보자. 숨을 가늘고, 깊고, 길게 들이쉬고 내쉬자. 눈을 감고 주변의 소리를 들어보자. 내리쬐는 햇볕에 온몸을 맡겨본다. 일상의 고단함이 잠시라도 사라진다. 바쁘게 서둘러 내려가지 말자.
주변의 작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승봉도, 자월도 등이 탁 트인 바다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조금 전 한 바퀴 일주한 소무의도도 막힘없이 내려다보인다. 서쪽으로는 하나개해수욕장이 보인다. 이 전망대에서 보는 일몰은 장관이라고 한다. 완만한 내리막길이다. 해안가에 도착하기엔 30분이면 충분하다.
고운 모래가 이어진다. 각종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해변 왼쪽에는 ‘환상의 길’이 있다. 바다 위에 설치한 인공 다리 위의 길이다. 2년 전 만들어진 550m 해상관광탐방로다. 해안가 기암괴석과 바다를 양쪽으로 음미하며 천천히 걸어간다. 다리 아래로 바닷물이 차오른다. 색다른 느낌이다. 마치 바다 위를 걷는 착각이 든다.
어느덧 해가 넘어간다. 마침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다. 해가 지친 듯 수평선에 다가갈수록 붉은 기운이 짙어진다. 해변의 얕은 바닷물과 갯벌과 모래사장에 붉은빛이 반질반질 투영된다. 해의 붉은 기운이 수면에 겹치며 오메가(Ω) 형상을 한다. 일몰을 즐기던 이들이 함성을 지른다. 어둠이 깔린다.
이길우_ <한겨레신문> 창간 작업에 참여해 34년간 취재기자로 활동했다. 한민족과 이 땅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찾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한민족의 무예, 공예, 민간신앙 등을 글과 사진을 통해 꾸준히 발굴, 소개한다. 저서로 <고수들은 건강하다>, 사진집 <신과 영혼의 몸짓 아첼레란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