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하준경
긴급재난지원금 왜 필요한가
하준경 한양대 교수 인터뷰
정부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소득 하위 70%인 1400만 가구에 긴급재난지원금 9조 1000억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지급 대상 기준을 둘러싸고 아직 세부 원칙에 대한 논의가 남았고, 일각에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확대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지원 규모나 범위가 어떻게 결정되든 국민에게 현금성 지원이 이뤄지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경제학자 하준경(사진)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에게 지금 시점에 긴급재난지원금이 왜 필요하며, 지급 대상 선별과 전달체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들어봤다.
“현 상황에선 경기 부양보다 재난 구호가 맞아”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은 현금 성격을 띤 전례 없는 결정이다. 시기가 적절하다고 보나.
=먼저 이번 조치가 경기 부양을 위한 것인지, 재난 구호를 위한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지금의 경제위기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면 접촉이 기본인 서비스산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인위적인 불황으로 들어선 것이다. 감염 우려로 소비 활동을 자제하면서 수요 급감으로 경제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대면 서비스산업의 불황이 피해를 덜 받고 있는 비대면 산업으로 파급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겠다. 대면 쪽을 관광산업으로, 비대면 쪽을 빵을 생산하는 산업으로 생각하자. 빵을 사먹던 관광산업 종사자가 코로나19 여파로 소득이 없어져 빵을 사먹지 못하면, 수요 감축으로 빵을 만드는 산업까지 불황에 빠진다. 따라서 피해 업종에서 시작된 인위적 불황이 전체 산업으로 퍼지지 않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피해 업종 종사자들이 계속 소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급선무다. 관광산업 종사자가 계속 빵을 사먹을 수 있게 말이다.
직접 피해자들은 사회 전체, 공동체를 위해 피해를 입은 측면이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은 그들이 사회적으로 희생한 것에 대한 대가로 이해할 수 있다. 또 이들의 소비 흐름이 갑자기 끊어지지 않게 해 경제가 과도하게 위축되는 걸 막기 위함이다. 이런 취지의 사업은 지금 굉장히 필요하다.
-이미 코로나19 금융 지원책은 여럿 나왔다. 여기에 추가로 현금성 지급이 필요하다고 보나.
=급한 불 끄는 데는 대출이 더 유용하다. 신속성도 중요하고 금액도 충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구호금은 많아야 몇백만 원이다. 이것으로 직원 월급 주고 사업체 유지하긴 어렵다. 대출이 급한 불을 끄고 업체의 생존을 유지하는 데 긴요한 수단이라면, 구조금은 보조적인 성격이다. 정책 사각지대가 있을 수 있고, 당장 생계를 위해 지원하는 부분도 있고, 위로금 차원의 성격도 있다.
-긴급재난지원금이 경기 부양이 아닌 재난 구호를 위한 것으로 보는 건가.
=경기 부양을 위한 현금 지급은 지금 단계에서는 이른 측면이 있다. 아직 코로나19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어지고 있어 어디 다니며 돈을 쓰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지금 돈이 주어져야 한다면, 그건 재난지원금이 맞다. 정부가 지급 대상을 소득 기준으로 설정한 것도 어려운 이들의 생계를 돕겠다는 것을 명분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일단 신속성이 중요… 미비점은 추후 보완”
-‘2020년 3월 건강보험료 기준으로 소득 하위 70% 가구’에 지급하겠다는 정부의 기본 원칙이 4월 3일 발표됐다.
=코로나19 직접 피해자에게 지원금이 가야 한다는 큰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발표된 가이드라인이 정확한 기준은 물론 아니다. ‘올해 3월 건강보험료 기준’이 2019년 소득을 기준으로 산정된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려운 이들을 1차적으로 선별하기 위한 위기 속 궁여지책이다.
-추후에 상세 기준을 내놓겠다는 입장이다.
=보완은 반드시 필요하다.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모르고 더 심해질 수도 있다. 지원금이 앞으로도 계속 필요할 수 있다. 지금은 ‘긴급구호자금’이나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성격을 규정하고 신속하게 지급해야 한다. 실제로 올해 얼마나 피해를 봤느냐는 추후 국세청 자료라든지 여러 방법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 일단은 신속성이 중요하다. ‘선지급, 후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보다 앞서 ‘재난기본소득’을 도입한 지방자치단체가 많다. 중복 지급에 대해 어떻게 보나.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잘 조율해 직접적 피해를 본 이들에게 우선 지급하면 제일 이상적이긴 하다. 하지만 한국은 지방자치제를 실시하고 있다. 지자체 자율권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다. 각 지역 사정은 각 지자체에서 가장 잘 안다. 지역 주민들의 뜻을 반영해 내린 결정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지급 대상 선별과 전달체계 문제 잘 살펴야”
-재난지원금 지급이 내수 소비 진작으로 이어질까.
=소비 진작보다는 소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재난지원금이 정말 필요한 이들에게 지급되었을 경우에 한해서다. 월 100만 원 받아 빵 사먹던 이들이 소득이 없어지면 빵을 사먹기가 어렵다. 이들에게 100만 원이 지원된다면 평소대로 빵을 사먹는 데 돈을 쓴다. 그러면 경제가 위축은 되지 않는다. 소비를 늘리지는 못해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데 피해를 안 본 이들에게 지급된다면, 일시적으로 저축이 늘어난다. 기존에 다니던 여행도 못 가는 상황이라 100만 원이 지급돼도 쓸 데가 없기 때문이다. 지급 대상 선별과 전달체계 문제가 중요한 이유다.
-‘전 국민에게 지급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위기가 끝나고 경제가 반등할 때 생각할 문제라고 본다. 앞에서 예를 든 관광산업과 빵 만드는 산업으로 다시 설명해보자. 재난지원금을 국민 모두에게 지급하되 관광에 쓰라고 조건을 붙인다면, 관광산업과 빵 만드는 산업 모두 관광을 갈 것이다. 그러면 경제는 급하게 반등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어떤가. 여행 가지 말고 모이지 말라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연장 실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 국민에게 지급한다면 소비 대신 저축으로 돈이 묶일 가능성이 높다. 전 국민 지급은 모두가 여행을 갈 수 있을 때 다시 논의할 문제다. 현재 상황에서 ‘전 국민 지급’은 산소 부족으로 죽어가는 국민이 있는데 전 국민에게 비타민 한 상자씩 나눠주자는 식이다. 지금은 정말 급한 쪽에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 그게 효율성이다.
-이후 2차 재난지원금 지급도 예상하나.
=지금은 위기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유가 형성의 중요한 변수인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이 계속 파산한다든지, 유럽 국가들이 국가부채 재정위기를 겪는다든지, 신흥국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하면 우리에게도 2차, 3차 파동이 올 수 있다. 이때 정부에서 할 일은 파급의 연결고리를 차단하는 것이다. 충격이 다른 쪽에 미치지 않게 차단해줘야 한다. 긴급구호자금도 이런 파급을 막기 위함이다. 소비하지 못하면 다른 곳도 위축되니까. 그런 연결고리를 국가가 개입해 위기가 확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작업은 앞으로 사태 전개에 따라 더 필요할 수도 있고, 규모가 더 커질 수도 있다. 재난지원금에 국내총생산(GDP)의 10%를 투입하는 나라도 있다. 우리도 대비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이걸 다 재정으로 마련하긴 힘들다. 일부 재정을 쓰되 금융을 활용해야 한다. 정부가 지급보증을 해주고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서 공급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돈이 정말 필요한 곳에 갈 수 있게 전달체계를 만들어놓고 잘 준비해야 한다.
“지금은 재정건전성보다 지원 규모가 중요”
-지금의 위기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와 어떻게 다른가.
=1997년은 재벌들이 외채를 빌려 무리하게 투자하면서 문제가 터진 외환위기다. 2008년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몰고 온 글로벌 위기였다. 반면 코로나19는 수요와 공급 전반에서 터진, 밑바닥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경제위기다. 직격탄은 현실 공간(오프라인)에서 불특정 다수를 직접 대면하는 기존 서비스산업에 떨어졌고, 영세 자영업체부터 무너졌다.
이전 위기들이 심장 쪽부터 시작된 거라면, 지금은 손발부터 마비되는 어려운 위기다. 손발이 마비되어 결국 심장까지 문제를 일으키는 전방위적 위기 상황이다. 성격이 좀 더 어려운 위기인 것이다. 긴급 수혈된 돈이 말초신경 끝까지 도달하지 않으면 회복이 안 되는 상황이다. 전달 경로, 전달체계, 선별장치 등을 잘 만들어놓는 게 중요하다.
-재정건전성 악화 등 재난지원금 규모가 불러올 후폭풍은 없을까.
=재정건전성 때문에 돈을 안 푸는 나라는 현재 별로 없다. 당장 생존의 문제로 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서도 위기 때 경로를 이탈하는 건 필요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있다. 전 세계가 재정을 확대할 때는 우리도 여력이 좀 생기는 거다. 따라갈 측면이 있다. 민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정부가 나서는 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일시적으로 국가 부채가 느는 것은 서로 용인하지 않을까 싶다.
-지원을 둘러싸고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아무래도 돈을 풀면 기득권자들이 쉽게 그 돈을 이용한다. 동네 식당보다 대기업들이 신용도가 높다 보니 이 돈을 가져다 쓸 확률이 높다. 정부에서 푼 돈으로 힘센 경제주체들이 딴짓을 한다든지, 챙겨놓는다든지, 투기 비슷하게 하는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면 정부의 노력을 반감시킨다. 이에 대한 대책을 정부에서 마련해야 할 것이다. 도덕적 설득도 필요하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말한 ‘조건부 지원’ 같은 장치도 필요해 보인다. ‘돈을 받으면 고용을 유지하고, 사장 월급을 올리거나 자사주 매입에 쓰면 안 된다’와 같은 조건을 달아 목적에 맞게 돈이 쓰이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의 효율적 시스템을 그려본다면?
=지금의 위기는 과거와 다른 성격의 측면이 있다. 본질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지금 중요한 것은 직접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거기서 조금 비켜나 있는 사람들 사이의 소비소득 순환이 잘 안 되는 게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 본 이들이 기존의 소비를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한 곳으로 가야 한다. 또 그 돈 규모가 상당히 클 수 있다.
재정건전성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지원 규모가 더 중요한 이유다. 충분히 지원되지 않으면 다른 데로 전이되어 나중에 더 많은 돈이 들 수 있다. 충분한 방법을 써야 한다. 이때 재정만으론 안 된다. 금융을 더하면 10배, 20배 효과를 올릴 수 있다. 재정과 금융의 협업으로 규모를 충분히 만들고, 이를 필요한 사람에게 가도록 전달체계를 잘 설계한 뒤 신속하게 전달하면서 도덕적 해이를 방지해야 한다. 이게 하나의 큰 그림이다.
심은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