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가장 공들여 찍는 직업군은 무엇일까? 연예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정치인도 만만치 않다. 정치인은 연예인만큼이나 이미지로 먹고사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아니, 연예인 이상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과거 잡지사 기자 시절 어떤 문화 행사에 참석했던 적이 있다.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사회자가 갑자기 순서를 바꿔 사진 촬영을 먼저 해야겠다고 말했다. 어떤 국회의원이 빨리 가야 해서 단체 촬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주요 행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촬영만 하고 가버린 것이다.
얼마 전 우편함에 선거공보가 도착해서 보았다. 우편물 안에는 두툼하게 많은 정당의 홍보물이 쌓여 있었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후보가 여러 현장을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들이 있다. 바로 이런 홍보에 쓰려고 그토록 집요하게 사진을 찍은 것이다. 그러니까 정치인은 행사에 참여한 김에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으려고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굳은 표정에서 웃는 표정으로
대통령 선거든 지방선거든 국회의원 선거든 선거철만 되면 이처럼 두툼한 선거공보를 받고, 그 선거공보를 자주 보다 보면 어떤 흐름이 보인다.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역시 후보의 얼굴이다. 후보의 얼굴은 그 후보와 정당이 주장하는 어떤 공약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니 그 표정이 얼마나 중요한가. 인물 사진 표정은 1990년대부터 큰 변화가 일어났다. 굳은 표정에서 웃는 표정으로 변화한 것이다. 이는 군사정권 시절과 민주화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다. 굳은 표정의 권위적인 얼굴과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웃는 얼굴의 차이로 대변되는 것이다. 굳은 표정은 군림하고 통제하려는 기호(과거 관공서 사무실 벽에 붙어 있던 대통령의 얼굴을 연상하면 쉽게 공감할 수 있다)이고, 웃는 표정은 개방적이고 섬기려는 기호라고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진심인지, 실제로 행동하는지는 별도로.
바로 이 점이 문제다. 웃는 얼굴이 어색해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그 웃음이 기만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면 권위적인 굳은 표정을 짓느니만 못하다. 과학 저널리스트 대니얼 맥닐은 <얼굴>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본 표정은 의지의 바깥 경계에 자리하고 있다. 기본 표정은 자동적으로 발현되며, 완벽한 모방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하다. …거짓 표정을 완벽하게 지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으므로 얼굴 암호는 믿을 만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배우가 아닌 이상 일반인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연스럽게 웃기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후보를 촬영하는 스튜디오를 상상할 수 있다. 사진사와 보좌관들이 카메라 옆에서 후보의 웃음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들려고 무진 애를 쓰는 모습 말이다. 그래서 정치인은 늘 사진사들이 따라붙는다. 어떤 현장에서 정치인이 진심으로 활짝 웃을 수 있고, 그 장면을 포착한다면 최고의 표정, 가식 없이 자연스럽게 웃는 얼굴을 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웃는 표정만큼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별로 없다.
소품을 보자. 정치인 사진에서 가장 일반적인 것은 정장이다. 정장은 너무나 표준적이어서 이것으로 어떤 상징을 담기 힘들다.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다른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중 첫 번째가 재킷을 벗는 것이다. 재킷을 벗고 셔츠만 입고 있으면 그 사람은 왠지 젊고 활기차다는 인상을 준다. 여기에 더해 소매마저 걷어붙이면 더욱 역동적인 이미지를 연출할 수 있다.
또 넥타이 색으로 정당을 지시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 덕에 평소 하지 않을 원색에 가까운 강렬한 붉은색 넥타이, 파란색 넥타이, 초록색 넥타이, 오렌지색 넥타이 등이 보인다. 가끔 점퍼 차림도 눈에 띈다. 현장과 서민에 다가감을 강조하려고 할 때 점퍼를 활용한다. 이 모든 것이 작위적으로 보이지만 정치만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직업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디자인과 형식이 가진 힘
모든 선거에는 번호가 뒤로 갈수록 생소한 인물과 정당이 등장한다. 그런 인물들은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는 공약을 들고 나오기도 한다. 공약의 파격성만큼이나 옷차림과 몸치장도 돌출한 경우를 보는데 전통 복장, 개량 한복, 특정 종교 의상, 흰색 정장과 백구두, 웃통 벗기, 위로 세운 머리, 수염 등이 그것이다. 마치 장난을 치려는 듯한 이런 비상식적인 연출은 그들이 당선이 아닌 다른 목적이 있고, 그 특별한 목적에 충실했을 거라는 점에서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기존 질서에 편입되지 않으려는 어떤 저항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평범한 사람들이 그것을 납득하든 말든 분명한 것은 그것에 표를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누끼’ 기술에 대해 알아보자. (누끼는 일본의 인쇄 용어지만 그 단어의 말맛을 대체할 말이 없어 그냥 쓰기도 한다.) 대부분 불규칙한 머리카락을 가지런하게 가다듬으려고 누끼를 따지만 티가 나고 만다. 최근에는 스튜디오의 흰 벽을 배경으로 인물을 찍고 약간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그냥 두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고 친근감을 주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돈을 좀 많이 주고 완벽하게 누끼를 따지 않을 거면, 이 기교는 조심해야 한다.
선거공보를 보면 주요 정당은 여러 페이지에 걸쳐 사진과 공약을 담은 책자로 만든다. 디자인도 세련되었다. 반면 후보 번호가 뒤로 갈수록 예산 부족을 느낀다. 한 장짜리 홍보물을 만들다 보니 한 치의 여백도 없이 메시지로 가득하다. 디자인도 조잡하다.
선거공보에서도 빈부 격차가 있다. 선거공보의 사진과 디자인의 품질이 그 정당과 후보의 가치와 일치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 메시지를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그걸 고려하더라도 역시 형식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을 완벽하게 차단하지는 못한다. 그것이 바로 디자인과 형식이 가진 힘이다.

김신_ 홍익대 예술학과에서 미술 이론을 전공하고 <월간 디자인> 기자와 편집장, 대림미술관 부관장으로 일했다. 현재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 등이 있다.